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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파도와 사회의 지구력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칼럼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 전 통일평화연구원장 ​ 저서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국제연대』, (공저) 한울, 2018 『평화를 위한 끝없는 도전』(공저), 북로그컴퍼니, 2018 『소련형 대학의 형성과 해체』(공저), 진인진, 2018 『냉전의 섬 금문도의 재탄생』, (공저), 진인진, 2018 외 다수 ​ 7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이 바이러스의 정체를 알게 된 만큼이나 우리 사회의 속살도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 코로나 제1차 파도와 이에 후속한 소강 국면, 그리고 제2차 파도는 정체불명의 위험에 대응하는 한국 사회의 순발력과 지구력을 차례로 시험하고 있다. 신규 확진자가 하루에 100명 이상 발생하는 기간을 코로나의 파도라고 정의한다면, 제1차 파도는 2월 22일부터 짧게는 3월 14일까지 약 20일간, 길게는 4월 2일까지 약 40일간 지속되었다. 이 제1차 파도는 우리 사회를 빠르게 방역 중심주의로 재편하였다. ​ 국민들은 코로나에 민감하게 반응하였고, 정부도 적절하게 대응하였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순발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최초의 국면을 지배했던 원리는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마스크 착용이었고, 대구와 신천지교회가 관심의 초점이었다. ​ 이후 약 4개월간의 소강 국면이 지속하였다. ‘생활속 거리 두기’라는 생소한 개념이 전면에 등장했고, 코로나 취약 집단에 관한 관심이 커졌다. 제1차 파도에 의해 충격을 받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초유의 재난지원금 제도가 도입되었다. ​ 다른 나라들에 비해 일찍 코로나 유행을 경험하였고, 또 빨리 진정되었기 때문에, 한국은 방역 모범국으로 인정되었고, 일부에서는 K 방역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 마스크는 공공외교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상황에 대한 희망적 낙관적 전망이 ‘포스트 코로나’ 논의를 가능하게 했다. ​ 방역 중심주의에 대한 도전과 일탈 ​ 그러나 광복절 휴가와 함께 제2차 파도가 밀려왔다. 위기 상황에서 자학은 금물이지만, 봄이 온 줄 알고 겨울잠에서 깨어 밖으로 뛰쳐나왔는 데 주변에 찬 기운이 쟁쟁하게 남아있다는 그것을 느끼고 ‘아차’ 하는 개구리 신세라고나 할까. ​ 포스트 코로나가 아니라 당장 코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엄중한 현실 앞에서 정부나 국민 모두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부와 방역 당국은 방역과 경제 사이에서 고육지책으로 2.5단계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8월 16일부터 시작된 제2차 파도에 직면하여 우리는 새로운 도전들에 직면했다. ​ 일부 교회 지도자들은 정부의 방역 중심주의를 공공연하게 비판하고 무시했으며, 여기에 공공의료 확대 정책에 대한 의료계 내부의 반발이 겹쳐지면서 피로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방역에 대한 순발력보다 경제적 어려움과 일상적 지루함을 견뎌낼 수 있는 지구력과 인내심이 더 중요해졌다. ​ 방역당국은 신체적 방역을 넘어 심리적 방역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것은 곧 방역 거버넌스의 지속가능성에 방역 중심주의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사회 집단들을 어떻게 포용하고 이들과 공존할 것인가에 관한 사회철학적 고민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방역 중심적 거버넌스를 효과적으로 유지하려면 다양한 이해관계에 있는 집단들을 방역 질서에 묶어 둘 수 있는 정치적 명분과 경제적 보상체계, 그리고 사회적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 재정적 우려 때문에 정치권은 제2차 재난지원금의 원칙을 선별적 지원으로 하기로 합의하였지만, 전 국민 지원제도와의 논쟁이 남아있고 코로나 방역 현장에서 수고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경제적 유인책도 필요한 것은 아닌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 장기 코로나 시대 ​ 제2차 파도가 정점을 지나기는 했지만, 우리는 아직도 이 파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2차 파 도가 끝나더라도 코로나 시대는 지속할 것이며, 올해 늦가을 또는 초겨울에 제3차 파도가 밀려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 세계 곳곳에서 백신과 치료제 개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것이 완성되려면 적어도 내년을 기다려야 한다 고 한다. 장기 코로나 시대인 것이다. ​ 우리가 코로나와 함께 살게 되고, 나아가 지금 예상하지 못하는 또 다른 위험이 늘 우리를 괴롭힌다면, 많은 사회학자가 관심을 가져왔던 사회의 질에 관한 논의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다. 위기에 그때그때 대처할 수 있는 사회의 탄력적 전환능력이 더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 한국인들은 코로나 문제를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기보다는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성공적 방역 여부는 코로나에 대한 민감성뿐 아니라 사회체제의 지구력에 달려있다. ​ 그것은 경제적 불황과 사회적 스트레스에 오래 견딜 수 있는 능력인데, 그것은 사회구조와 제도 그리고 문화 등 여러 분야를 관통하고 있다. 그것은 공동체 의식과 사회의 구성원들 상호 간의 격려와 배려를 핵심적 덕목으로 하고 있다. ​ 나의 삶이 항상 다른 사람들과 연대 속에서 지속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세상에 비밀이란 없다 - 5편 율기 律己

다산 정약용의 눈높이로 본 한국 지방자치의 현장고백서

정영오 행정학 박사 청렴연수원 청렴교육강사 前)함평군 기획감사실장 세상에 비밀이란 없다 ​ 다산은 “뇌물을 주고받는 행위를 누구나 비밀스럽게 하겠지만, 한밤중에 하는 행위도 아침이면 이미 드러 난다”고 강조하였다. ​ 선생은 위 글에서 “아전들이 수령을 유혹하기를 ‘이 일은 비밀로 하기에 아무도 모릅니다. 소문을 퍼뜨리면 오히려 저에게 해로울 뿐이니 제가 감히 퍼뜨리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한다. ​ 수령은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뇌물을 받게 되지만, 아전은 문을 나서자마자 마구 떠벌려 자기의 경쟁자를 누르고자 하니, 소문은 삽시간에 사방으로 퍼진다. ​ 수령은 깊이 들어앉아 있기 때문에 고립되어 그 소문을 듣지 못하니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설명한다. ​ 목민관이 바르지 못하면 그 고을의 속 사정을 훤히 잘 아는 아전들의 농간에 놀아나는 경우가 많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아전들은 뇌물을 매개로 이권에 개입하여 주무르려 했던 것이다. 아전들 간에 수령에 대한 충성 경쟁도 문제이다. 수령은 눈이 어둡고 귀가 밝지 못했다. 아전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일은 속이거나 제대로 된 정보를 보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백성들은 관원을 ‘낮도둑’이라 하고, 고을의 관아를 ‘낮도둑을 모아 기르는 못자리’라고 했다. 이기李墍의 『송와잡설松窩雜說』에 나오는 이야기다. “조선 초기 함경도는 야인의 땅에 접해 있었기 때문에 그 지역의 크고 작은 수령은 모두 무관으로 뽑아 보내는 것이 관례였다. ​ 게다가 조정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수령들은 거릴 것이 없었다. 형벌이 가혹했고, 세금을 마구 뜯어냈다. 백성들은 관원을 ‘주적晝賊(낮도둑)’이라고 했고, 관청을 ‘취회주적장앙聚會晝賊長秧(낮도둑을 모아 기르는 못자리)’라고 불렀다. 비록 지나친 말이지만, 이 말을 듣는 목민관들은 응당 부끄럽게 여겨야 할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있다. ​ 지방자치 시대에 있어서 지방 권력의 부패는 선거의 폐단이 원인이라고 본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금품과 향응의 살포가 큰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유권자의 규모가 작은 선거일수록 금품에 의한 부정선거가 될 소지가 높다. 유권자 수가 적으면 유권자들의 지지 성향을 일일이 분석할 수 있다. 그 분석 결과에 따라 당선 가능한 예상 득표수를 계산하여 자신의 지지가 확실한 유권자를 대상으로 이른바 매표[買票]하여 당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 1)『 牧民心書(목민심서)』 제2부 律己編(율기편) 제2조 淸心(청심, 깨끗한 마음)에서 “貨賂之行(화뢰지행), 誰不秘密(수불비밀), 中夜所行(중야소행), 朝已昌矣 (조이창의)”라 쓰고 있다. 2) 이기李墍, 조선 명종 때 부제학과 이조판서를 지냈다. 3) “四知(사지), 天知神知我知子知(천지신지아지자지)”라는 글이다. 출처 대한민국 국회(공공누리 저작물) 이처럼 불법 금품 선거운동은 엄청나게 많은 선거자금이 소요될 것이다. 특히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이러한 금품 살포로 당선될 경우 그 비용은 누가 감당할 것인가. 그 피해는 고스란히 그 지역의 주민과 공무원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 간혹 이러한 폐단들이 적발되어 언론 매체를 장식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발주하는 각종 공사와 용역 부정, 직원의 사무관 승진인사와 채용을 미끼로 한 비리, 각종 보조금 특혜 지원 등이 그것이다. 주민들은 이러한 부패는 불법 선거운동에 들어간 경비를 충당하고 다음 선거 경비를 마련하기 위한 행위라고 인식한다. ​ 선거로 취임하는 자치단체장들의 이러한 부패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선거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금품과 향응에 의한 선거운동을 철저히 배격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유권자들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확대하여 상시 선거운동을 대폭 허용하여야 한다. ​ 현재 공직선거법은 사전 선거운동을 엄격히 금지하기 때문에 입지자들은 선거 기간 외에는 전혀 활동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유권자들은 입후보하고자 하는 입지자들의 능력과 자질을 파악할 수 없다. ​ 이러한 검증 없이 정해진 짧은 선거 기간 중에 잠시 출연하여 자신을 알리고, 그것으로는 부족하고 불안하니까 금품과 향응 제공이라는 편법을 써서라도 당선되고 보자는 식으로 덤비게 되는 것이다. ​ 만약 선거 경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부정과 부패를저지르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낮도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그 자치단체는 낮도둑을 모아 기르는 못자리이자 도둑놈 소굴이라고 폄하한들 할 말이 없을 것이다. ​ 중국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아무리 비밀스런 거래라도 이미 ‘하늘과 땅이 알고, 나와 네가 안다’는 경구는 예나 지금이나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 최소한 금품 선거와 부패는 없애야 하지 않겠는가 ​

공직자의 기본적인 의무는 청렴 - 4편 율기律己

다산 정약용의 눈높이로 본 한국 지방자치의 현장 고백서!

정영오 행정학 박사 청렴연수원 청렴교육강사 前)함평군 기획감사실장 공직자의 기본적인 의무는 청렴 ​ “청렴이란 목민관이 지켜야 할 근본적인 의무이다. 모든 선의 원천이자 모든 덕의 뿌리이다. 청렴하지 않고는 목민관의 역할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는 다산이 늘 강조했던 사항이다. ​ 선생이 황해도 곡산부사로 있을 때 쓴 행담 기록인『상산록象山錄』에서 “청렴에는 세 등급이 있다”고 하고 있다. “최상의 등급은 봉급 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먹고 남은 것이 있어도 가져가지 않으며, 벼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도 말 한필로 조촐하게 가는 자이니, 이는 아주 옛날의 청렴한 관리이다”라고 한다. ​ “그 다음 등급은 봉급 외에도 명분이 바른 것은 먹고 바르지 않은 것은 먹지 않으며, 먹고 남은 것은 집으로 보내는 자이니, 이는 중고시대의 청렴한 관리이다.” 그러면서 당시 관리들의 청렴 등급이 최하위인 세태에 대해서 한탄 한다. “최하의 등급은 이미 관례가 된 것은 비록 명분이 바르지 않더라도 먹으며, 그러한 관례가 없더라도 죄가 되지 않고, 향임의 자리를 팔지 않거나, 재감災減(재해를 입은 전답의 세금을 감면해 주는 것)을 훔치지 않으며, 송사와 옥사를 팔지 않으며, 세금을 과다하게 부과하여 착복하지 않는 것은 먹는다고 말한다. 이것이 이른바 오늘날의 청렴한 관리이다”고 비통해하고 있다. ​ 다산 선생은 이러한 현실에 대하여 옛날 같으면 최하에 속하는 관리는 반드시 끓는 물에 삶아 죽이는 형벌에 처했을 것이라고 한탄하면서 선을 좋아하고 악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 우리나라도 현대적 의미의 공무원제도가 수립된 1949년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청렴을 공무원의 의무로 정하여 운영해 오고 있다. 현행 국가공무원법 제61조와 지방공무원법 제53조에서도 청렴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 즉 “공무원은 직무와 관련하여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사례謝禮·증여贈與 또는 향응饗應을 주거나 받을 수 없다. 공무원은 직무상의 관계가 있든 없든 그 소속 상관에게 증여하거나 소속 공무원으로부터 증여를 받아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 牧民心書(목민심서)』 제2부 律己編(율기편) 제2조 淸心(청심, 깨끗한 마음)에 나오는 글이다. 茶山은 위 글 첫머리에서 “廉者(염자), 牧之本務(목지본무), 萬善之源(만선지원), 諸德之根(제덕지근), 不廉而能牧者(불염이능목자), 未之有也(미지유야)”라고 강조하고 있다. ​ 출처 대한민국 국회(공공누리 저작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청렴문화 정착과 부정·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수많은 제도들이 운영되고 있다.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을 비롯하여, 2016년 9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각 공공기관마다 제정·운영하고 있는 ‘공직자 행동 강령’, ‘공익신고자 보호법’, 2020년 1월부터 시행된 ‘공공재정부정청구 금지 및 부정이익 환수 등에 관한 법률’, 공공기관에 대한 ‘청렴도 측정 공표’, ‘부패영향평가’ 등의 제도가 그것이다. ​ 청렴이 우리 사회에 완전하게 뿌리내릴 수만 있다면 제도의 수가 문제이겠는가. 국회심의 중 청탁금지법에서는 제외되었던 ‘이해충돌방지법’도 21대 국회에 들어 정부가 다시 발의하였으니 곧 제정될 것으로 보인다. ​ 다산 선생은 “염자廉者(청렴한 자)는 청렴함을 편안히 여기고, 지자知者(지식이 많고 사리에 밝은 자)는 청렴함을 이롭게 여긴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사람들은 보통 재물을 크게 욕심내지만, 재물보다 더 큰 것을 욕심내는 경우에는 재물을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재물을 욕심내다가 관직을 박탈당하고 귀양 가서 등용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혜가 높고 사려가 깊은 사람은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을 바라게 됨으로 청렴하게 되는 것이니, 생각이 여기에 미친 염자나 지자라면 청렴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대통령이 국무위원 등 행정부의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때 국회의 검증 절차를 거치게 함으로써 행정부를 견제하는 제도인 국회 인사청문회와 대통령,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등 선거직 공직후보자에 대한 검증 과정을 살펴보면 다산의 지적이 가슴에 와 닿는다. ​ 주로 쟁점이 되는 사항을 보면 부동산 투기나 학군 배정을 위한 위장전입, 부동산 다운 계약, 논문 표절, 본인 또는 아들의 병역 특혜, 부인이나 자녀 취업 특혜, 세금 탈루 등 대부분이 청렴성 및 도덕성과 관련된 사항들임을 알 수 있다. 지혜가 짧고 사려가 얕은 사람은 눈앞의 욕심만 생각하고 멀리 있는 이익은 보지 못하는 격이 아닐 수 없다.

다산의 두 아들 (학연, 학유) 이야기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칼럼

오래전의 이야기입니다. 어떤 중등학교 학생이 제게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학교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어보았다면서, 글이 어려워 알아볼 수 없는 내용이 많았지만, 다산이 두 아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가 많았고, 책을 많이 읽으라하며, 어떤 책을 읽고 어떻게 읽으라는 글이 있었다면서, 그런 편지를 받아 읽으면서 자란 두 아들은 뒤에 어떤 사람으로 성장했는가를 알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들들의 답장은 전해지지 않아, 일방적인 아버지의 편지만 열거된 책이어서, 그런 궁금증을 지님은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그런 편지에 답장을 줄 겨를을 얻지 못해, 그냥 오랜 세월이 흐르고 말았습니다. 2004년 마침내『다산정약용평전』쓰기를 마쳤는데, 다산의 후예들이 어떻게 성장했으며, 어떤 인품의 인물이었는가를 기록하는 부분에서, 간단한 답을 했습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자신의 집안이 폐족이 되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언제까지 우리 가문이 폐족으로 남아 있어야 하냐면서, 폐족이 폐족에서 벗어나는 길이 딱 하나 있으니, 그것은 폐족이라도 무한정하게 독서를 하다보면 반드시 폐족에서 벗어날 길이 있노라고 확신한다며, 두 아들에게 그렇게도 간절하게 독서를 권장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어길 수 없던 효자 두 아들은 참으로 많은 독서를 했습니다. 다산 집안이 국가로부터 폐족에서 벗어났다는 명확한 징표로, 다산의 큰아들 학연(學淵)에게 벼슬이 내려졌습니다. 정학연이 아버지의 제자이자 자신의 친구인 강진의 황상(黃裳)에게 보낸 편지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1852년 8월 4일자의 편지이니 다산이 세상을 떠난 16년 뒤의 일입니다. 나는 나라의 은혜를 입어 6월에 감역(監役:종9품 벼슬)에 제수되었소. 음직으로 벼슬을 받아 집안이 마치 고목에 봄이 든것만 같구려. 안방에서도 감축하고 원근에서 모두 축하해주니 옛날의 구슬퍼하는 감회를 더욱 누르기가 어렵네. 『( 다산정약용평전』)이라는 내용에서 그때의 사정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비록 하급의 벼슬이지만 학자에게 내리는 감역이라는 벼슬은 직급이야 낮지만 귀하게 취급받는 벼슬입니다. 글을 하는 선비라면 가장 명예로운 호칭이 학문과 덕행, 절의가 뛰어나 조정으로부터 부름을 받는 징사(徵士)가 된 것이니까요. 뒷날에 정학연은 벼슬이 올라 사옹원주부(主簿:종6품)의 위계에도 올랐습니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분원(分院)의 초등학교 교정에는「주부정학연선정 비(主簿丁學淵善政碑)」라는 비들이 서있는 것을 보면 고향 집에서 가까운 분원의 주부 벼슬을 역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정학유는 세상에 전해지는 「농가월령가」라는 유명한 글의 저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얼마나 박식하고 글솜씨가 뛰났는지를 보여주는 글입니다. 시를 잘 짓고 글 잘하는 선비로 대접 받았던 사실은 여러 곳에서 증명됩니다. 추사 김정희와 정학유는 동갑내기 친구로 막역한 사이였습니다. 자신보다 1년 먼저 세상을 떠난 정학유의 부음을 알리는 추사의 편지가 전합니다. 서로 함께 친했던 강진의 황상에게 보낸 추사의 편지에, “운포(정학유)가 중병으로 설 전부터 위독하다더니, 마침내 이달(2월) 초하룻날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말았네, 이런 막된 세상에 이러한 사람을 어디서 다시 보겠는가?” (如此末俗 如此人 何處更見耶) (『완당전집』중「여황생상與黃生裳」)이라는 글입니다. 추사 같은 높은 안목으로 까다롭게 인물과 글을 평하던 분이 그런 평가를 내렸다면 정학유의 인품은 넉넉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당대의 문사 해거재 홍현주(정조의 부마)는 “두 형제 모두 박학한 선비인데다 시에도 뛰어났다. (博學·工詩)”라고 표현했으니, 위의 내용들은『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고 저에게 질문한 학생의 편지에 답장으로 충분하리라 믿어집니다.

당파싸움, 그칠날은 없을 것인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칼럼

당파싸움, 그칠날은 없을 것인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우석대학교 석좌교수 고산서원 원장 저서 『다산 정약용 평전』민음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역주), 창비 『다산 산문선』(역주), 창비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한길사 『조선의 의인들』, 한길사 등 (····) 河山有遷變 朋淫破無日 一夫作射工 衆喙遞傳驛 詖邪旣得志 正直安所宅 ​ 산천은 변해 바뀔지라도 당파 짓는 나쁜 버릇 깨부술 날이 없구려 한 사람이 모함하면 뭇 입들이 차례로 전파하네 간사한 사람들이 세력 잡았으니 정직한 사람 어느 곳에 둥지 틀랴 (····) -「고의(古意)」 1800년 정조가 갑자기 승하하고, 당쟁의 불길이 솟아오른 세상을 간파한 다산은 질곡으로 빠져들 자신의 운명을 예견하면서, 당파싸움에 희생을 면하지 못할 불행한 미래에 불안을 떨굴 수 없던 마음을 시로 읊었습니다. 조선시대의 당쟁은 참으로 뿌리가 깊고 세월도 너무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선조(宣祖) 8년은 1575년, 금년으로 445년 전의 일입니다. 다산은 300년의 길고 긴긴 뿌리이자 세월이라고 했습니다. ​ 서쪽에 살던 심의겸(沈義謙)이라는 분과 동쪽에 살던 김효원(金孝元)이라는 분이 견해를 달리하며 일어난 붕 당싸움, 심의겸을 편들던 사람들을 서인이라 부르고 김효원을 편들던 사람을 동인이라 부르면서 동서분당의 서막이 열렸습니다. ​ 권력투쟁과 학문이론까지 파당으로 나뉘며 죽기 아니면 살기의 싸움으로 극한적 대립이 계속됩니다. 숙종시 대에 이르면 살육 작전이 감행되도록 이합집산의 파당 싸움은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 다산의 기록에 숙종시대의 공론(公論)은 사라지고 편론(偏論)이 판을 치던 사례 하나가 있습니다. ​ “숙종 만년의 어느 날 유신(儒臣)들을 불러서 맛있는 술을 하사하고 그들의 취한 모습을 살폈다. 술이 곤드레만 드레 취했을 때, 학사 홍중정(洪重鼎)이 큰소리로 ‘전하! 왜 오시복(吳始復)을 유배에서 풀어주지 않습니까? 의당 바로 방면하십시오’라고 말했는데, 오시복은 남인이었고 홍중정도 남인이었다. 그러자 학사 오도일(吳道一)이 큰소리로 ‘전하! 그의 말을 믿지 마시오. 모두 편파적인 주장입니다.’라고 했으니 그는 서인이었다.” ​ 라는 내용입니다. ​ 그러한 대화가 있던 바로 뒤 숙종임금의 말이 기가 막힙니다. ​ “이렇게 취했는데도 편론(偏論:편파적인 당론)은 잊지 않으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醉至於此 不忘偏論 可奈何矣)” ​ 라는 탄식입니다. 다산의『혼돈록(餛飩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 신하들의 본심을 알아보려던 숙종의 의도는 정확했습니다. 취중진담이라 하듯, 아무리 취해도 그들은 본심을 숨기지 못했고, 찌들도록 마음속에 박힌 당습(黨習)은 버리지 못하고 실토하고 말았다는 내용이니, 당파의 대립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가를 알게 해주는 일화입니다. ​ 식물 국회에서 진저리나던 국민들, 국회가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라는 뜻으로 거대 여당을 만들어 주었건만, 요즘의 국회 돌아가는 모양을 살펴보면, 한 치의 차이 없이 지난번 국회처럼 당파적 논리만 판을 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어떻게 해야 난국에 처한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고 질병과 경제로 온갖 불안에 시달리는 국민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것인가요? ​ 벌써부터 다음 정권을 잡는 문제, 국민에게 파당의 논리를 유리하게 알리는 문제에 집착하면서 붕당싸움만 계속하고 있으니, 어쩌란 말인[可奈何矣]가요. 당쟁의 격화 속에서 당파싸움에 시달리던 숙종의 안타까운 심정이 오늘에 더욱 간절하게 여겨짐은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남북문제, 코로나19 문제, 경제문제, 실업자 문제 등 산적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잠시만이라도 당쟁을 멈추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주색잡기酒色雜技와 무사안일 - 3편-율기律己

다산 정약용의 눈높이로 본 한국 지방자치의 현장고백서

정영오 행정학 박사 청렴연수원 청렴교육강사 前)함평군 기획감사실장 주색잡기[酒色雜技]와 무사안일 ​ 다산 선생은 평생을 책과 함께한 책벌레 샌님이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주색잡기酒色雜技와는 거리가 먼 모범적인 생활을 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요즘 같으면 선출직이나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 나갈 것을 미리 예견했던 사람처럼 자기관리를 철저히 했던 것 같다. ​ 정치·행정 지도자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지도자들도 다산 선생께서 말씀하셨던 ‘목민관은 술을 근절하고 여색을 멀리해야지 놀이의 굴레에 빠져 즐기면, 이는 거칠고 일탈하는 짓이다’ 1)라는 경구를 일상에서 실천하였으면 좋겠다. ​ 정약용 선생이 황해도 곡산부사로 있을 때 쓴 행담 기록인『상산록象山錄』(상산은 곡산谷山의 별칭)에는 “술을 좋아하는 것은 모두 객기客氣(객쩍게 부리는 혈기)이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맑은 취미로 생각하는데, 술 마시는 버릇이 오래가면 게걸스러운 미치광이가 되어 끊으려 해도 끊지 못하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라며 술을 경계하라고 지적하고 있다. ​ 또한『다산필담茶山筆談』(다산의 저술로 보이나 발견되지 않음)에서는 “해마다 12월과 6월에 시행하는 관원들의 도목정都目政(근무성적평정서)을 보면 ‘마땅히 주도를 경계하라’, ‘어찌 이다지도 술을 좋아하는가’, ‘술에 취하지 않은 날이 없다’”는 등의 기록이 있어 관리를 등용함에 있어 술버릇이 인사 자료로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 다산 선생은 “백성의 수령이 된 자는 결코 천한 기생과 가까이 친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2) “ ​ 기생을 한번 가까이하게 되면 정사 한 가지나 명령 하나도 의심과 헐뜯음을 받아 아무리 공정하고 바르게 할지라도 모두가 여색의 청탁에서 나왔다고 의심받게 된다. 이 어찌 딱하지 않은가. 대개 물정에 어둡고 소박하며 바깥출입이 없던 선비가 기생과 처음 친하게 되면, 여색에 빠져서 현혹됨이 더욱 심하여 이부자리 속에서 소곤거리는 말을 금석같이 믿게 된다. ​ 기생은 사람마다 정을 주어서 인간성이 없어지고, 따로 정부情夫가 있어 누설하지 않는 말이 없다. 밤중에 소곤거리는 말이 아침이면 온 성내에 퍼지고, 저녁이면 온 고을에 자자하게 되는 것이다. 평생 단정했던 선비가 하루아침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만다. 어찌 애석하지 않은가. 무릇 기생이란 요염한 물건이니 응당 눈짓도 주고받지 말 일이다” ​ 라고 강조하고 있다. ​ 다산 선생은 아울러 “노래와 풍악은 백성의 원망을 재촉하는 풀무이다” 3)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 마음이 즐겁더라도 읍내 사람들과 온 고을 만민의 마음이 다 즐거울 수 없다. 그중에 한사람이라도 춥고 배고파서 고달프거나 세상 살아갈 즐거움이 없는 자가 있으니, 풍악 소리를 들으면 이맛살을 찌푸리고 눈을 부릅뜨며 길바닥에다 욕을 퍼붓고 하늘을 저주할 자가 있을 것이다”라며 향락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을 지적하고 있다. ​ 또한 “수령이 부모 생신을 맞아 풍악을 베푸는 경우가 있는데, 자신은 이를 효도라고 생각하겠지만 백성들은 이를 저주한다. 만약 백성들이 자기 부모를 저주하도록 한다면 이는 불효인 것이다. 오히려 수령이 부모님 생신날에 고을의 모든 노인을 위로하는 잔치를 겸해서 한다면 백성들이 저주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 미국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성추문 고발 운동인 ‘미투(Me Too)’ 태풍이 2018년 초 대한민국에 상륙하여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를 흔들어 놓았다. 정치·법조·행정·교육·문화·연예계 등을 막론하고 커다란 쓰나미를 일으켰다. 잦아드나 싶던 ‘미투’운동이 2019년 정초 쇼트트랙 심석희 선수의 성폭행 자백으로 재폭발했다. 최근 잇따라 발생하는 선출직 고위공직자들의 성추행 범죄들은 국민들을 혼란 상태로 빠져들게 한다. ​ 요즘은 덜하지만 필자가 젊었을 때 공직사회에는 객기[客氣]에 찬 술버릇이 만연했다. 폭탄주, 충성주, 다모토리주, 성화봉송주, 꽃부리주 등등 희한한 음주 관습이 만들어져 공직사회에 횡횡했던 적이 있었다. 술을 잘 다루는 사람이 일도 잘 한다는 근거 없는 말들이 공직사회에 퍼져 있었다. 과한 음주로 인해 패가망신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 2018년 말경 음주운전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어 음주운전에 대하여 처벌을 강화하는 소위 ‘윤창호법’이 제정되었고, 2019년에는 단속과 처벌 기준이 강화되기에 이른다. 음주운전은 처벌을 강화하여야 맞다. ​ 음주로 인하여 책임 능력이 결여되거나 미약한 상태에서 운전함으로써 사고를 유발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의 음주운전은 경계해야 할 대상 1호가 아닐 수 없으며 한 번 실수로 평생의 신세를 망친다는 것을 명시해야 한다. 음주량의 많고 적음을 떠나 술을 입에 댔다면 핸들을 잡아서는 안 될 것이다. ​ 오늘날은 부패의 개념이 크게 확대 해석되고 있다. 전통적인 부패의 개념은 뇌물수수, 배임·횡령, 예산낭비 등 주로 금전적이고 물질적인 측면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부패에 대한 국제적 기준이 강화되고 국민의 기대 수준이 높아 가고 있다. 물질적인 측면에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측면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불공정, 불투명, 공익 침해, 이해 충돌, 온정·연고주의, 복지부동, 무책임성 등까지도 부패의 범주에 포함하여 확대 해석하는 추세이다. ​ 따라서 다산 선생께서 말씀하셨던 ‘목민관은 술을 근절하고 여색을 멀리해야지 놀이의 굴레에 빠져 즐기면, 이는 거칠고 일탈하는 짓이다’라는 경구는 오늘날 부패의 개념을 윤리적·도덕적으로 확대 해석하는 관점을 강조한 것과 맥을 같이하는 부분으로 볼 수 있다. 1)『牧民心書(목민심서)』제2부 律己編(율기편) 제1조 飭躬(칙궁, 바른 몸가짐) 중에는 “斷酒絶色(단주절색), 罔敢游豫(망감유예), 以荒以逸(이황이일)”이라는 글이 있다. 이른바 금주, 금색, 금황일의 三禁論(삼금론)이다. 2) “爲民牧者(위민목자), 決不可狎昵娼妓(결불가압닐창기)”라는 글이다. 3) “聲樂者(성악자), 民怨之鼓鞴也(민원지고비야)”라고 쓰고 있다.

한국형 방역과 새로운 표준

김항섭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칼럼

한국형 방역과 새로운 표준 ​ 김항섭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사)우리신학연구소이사장 천주교개혁연대 대표 ​ 저서 및 논문 『생태학의 도전과그리스도교』일과 놀이, 2000 『신자유주의시대라틴아메리카 시민사회의 대응과 문화변동』오름, 2005(공저) 『세계화, 종교변동 그리고 가톨릭교회: 페루의 사례』이베로아메리카, 2009 『탈식민담론과 한국그리스도교 신학』종교문화연구, 2014 『브라질 가톨릭운동과 해방신학의 기원』신학사상, 2019 출처 - 다산연구소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도, 몇 달 동안 지속된 칩거도, 상황이 마무리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 속에서 버텼는데, 비록 상황이 진정되더라도 이전 생활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여기저기서 코로나 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삶의 기준에 대해 이야기한다. ​ 이전에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표준이 있었고, 그 표준에 맞추는 것이 국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이라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는데, 이제 우리는 새로운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 글로벌 스탠더드와 제국 ​ 전 세계에 보편적인 척도로 자리하던 글로벌 스탠더드는 사실 미국이나 서구의 특수한 이해를 반영한 것이고, 특수성이 보편성을 참칭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전 세계에 강요되었고, 수많은 나라들이 그 보편성을 의심하기는커녕 흉내내고 따라잡는데 골몰했다. ​ 그 표준은 경제 정책 차원을 넘어, 사회 전반에, 우리 삶의 곳곳에 내면화되었다. 독립국인데도 외국 군대가 버젓이 주둔하고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강요 또는 내면화가 훨씬 더 심각했다. 그러나 감염병의 재앙 앞에서 글로벌 스탠더드는 하릴없이 폐기 수순을 밟는다. 시장도 작동하지 않았다. G2도 코로나 앞에서 무기력하고 무책임했다. ​ 민주주의의 본고장이라고 자처하던 유럽도 지역봉쇄를 비롯한 각종 강제 조치로 허둥댔다. 이런 식으로 서구의 특수한 이해를 보편적인 것으로 포장하여, 판을 짜고 기준을 만들어 나머지 나라들에 강요되었던 글로벌 스탠더드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있다. ​ 새로운 표준과 탈중심, 탈식민 ​ 기존의 모든 잣대들이 무력해진 상황에서, 한국의 방역은 새로운 표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방역도 성공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돋보인 것은 그 대응 방식이었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 지역 봉쇄, 활동 금지 또는 제한 등 강압적인 조치들이 주를 이뤄졌지만,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들의 동의나 협력을 구하는 민주적인 방식을 채택하였다. 이러한 한국형 방역은 G2, 일본, 유럽 국가들의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대응과 대조를 이루면서, 국제사회에 하나의 표준으로 부각된다. ​ 이제 분명한 것은 더 이상 미국이나 서구 또는 일본의 기준에 매일 필요없이, 우리 스스로 기준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G0의 시대이다. 이제 중심은 없다. 대국 중심에서 벗어나, 우리 안의 식민성을 아픔으로 도려내야 한다. 물론 서구든 다른 대국이든 그 긍정적이고 앞선 측면은 기꺼이 받아들이되, 그들의 특수성을 보편화하고 더 나아가 신화화하는 어리석음은 이제 우리 자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대체해도 좋을 듯 싶다. 한글 창제 이후 중화사상, 일제의 탄압, 그리고 해방 이후 또 다른 사대주의, 그리고 오늘날 이러한 사대주의를 내면화한 대중매체나 대중문화로 인해 괄시당하고 왜곡당하는 우리의 말과 글에서부터 시작해도 좋다. 쉴 새 없이 서구 학문과 이론만을 퍼 나르는 학자들, 이른바 ‘학문의 보따리상’도 이제 우리의 삶에 발을 내렸으면 좋겠다. 국사학이나 국문학 교수를 뽑는 데 영어로 강의를 시키거나, 스페인어 교수를 뽑는데 영어로 인터뷰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 그리고 새로운 표준을 이야기할 때, 우리의 특수한 경험 또는 기준을 보편적인 것인양 내세워서도 안 된다. 우리의 기준에서는 제국을 빼자. 70년대 근대화, 새마을운동의 깃발 아래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나 신념들, 그리고 공동체 문화를 무자비하게 소외시키고 폐기했던 어리석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명, 근대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미명 아래 무시되고 방치되었던, 적어도 조선 후기 실학에서 동학을 거쳐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는 우리의 학문과 사상을 자부심으로 끌어안을 때이다. “오스카는 로컬이잖아.”라고 말한 봉준호 감독의 담담함을 닮을 때이다. ​

공인公人의 언행 - 2편 율기律己

다산 정약용의 눈높이로 본 한국 지방자치의 현장고백서

정영오 ​ 행정학 박사 청렴연수원 청렴교육강사 前)함평군 기획감사실장 공인公人의 언행 ​ 지도자들의 언행이 어떤 파급력을 갖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바르지 못한 말로 시끄러움을 유발하는 일들을 수없이 경험하기 때문이다. 다산은 “목민관은 말을 많이 하지 말고, 조급히 화를 내지 말라”고 가르친다.1) 스스로 감정관리(mind control)를 잘해야 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선생은 “백성들은 목민관의 언행을 세세히 살피고 의심쩍게 탐색하여 온 고을에 퍼뜨린다. 군자는 집 안에서도 말을 삼가야 하거늘, 벼슬살이할 때는 더 강조할 필요가 있겠는가. ​ 비록 시중드는 아이나 종이 어리고 어리석다 해도 여러 해를 관청에 있으면 백번 단련된 쇠와 같고, 기민하고 영리하여 엿보고 살피는 것이 귀신과 같다. 관아의 문을 나서면 세세한 것까지 누설하고 소문을 낸다. 이는 내가 귀양살이하면서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 목민관이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고 강조하지 않았던가. ​ 말을 많이 하면 실수하기 마련이다. 필자는 공직 생활 동안 수많은 상관을 접하면서 바르지 못한 말로 시끄러움을 유발한 일들을 수없이 경험하였다. 발 없는 말이 천 리(千里)를 가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언행은 주민들에게 관심의 대상이다. ​ 특히 자기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거나 깊은 생각 없이 뱉은 말은 회귀 본능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화가 되어 돌아온다. 자신의 실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퍼뜨린 사람이나 전달한 사람만 찾는 데 열을 올리는 경우가 많다. 남을 탓하기 이전에 자신의 언행을 되짚어 봐야할 것이다.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 다산의 무다언(毋多言)의 경구를 되새김해 보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 다산은 ​"벼슬살이에 임하는 자는 조급히 성내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특히 수령은 형벌의 권한을 쥐고 있으므로 무릇 그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한다. 그의 조급한 노여움에 따라 급히 형벌을 시행하게 되면 온당치 못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다산은 조급히 성내는 병통이 있는 자는 평소에 ‘노즉수(怒則囚)’ 석 자를 가슴에 새겨 두라고 말한다. ‘성이 나거든 그것을 가슴에 가두어 두라’는 의미이다. 그렇게 하면 문득 성이 날 때도 스스로 깊이 깨우쳐 억제할 수 있고, 하룻밤 혹은 사흘을 두고 생각하면 기꺼이 이치에 따라서 온당하게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다산이 지적한 조급하게 성내지 말라는 무폭노(毋暴怒)의 의미는 직장인이나 사회인 모두에게 교훈일 것이다. 필자가 근무할 때 다혈질에 냄비 근성인 상사 한 분이 있었다. 잘못 걸리면 벼락 총소리가 난다. ​ 그분의 책상 위에는 ‘일소일소一笑一少, 일노일노一怒一老’라는 큼직한 글이 쓰여 있었다. ‘한 번 웃으면 더 젊어지고, 한 번 성내면 더 늙는다’는 의미이다. 자신의 성질을 잘 알기 때문에 책상 위에 붙여 놓았을 것이다. ​ 성났을 때의 언어는 체면을 차리지 못하게 되니, 성이 가라앉은 연후에 생각해 보면 자신의 비루하고 좁은 속을 온통 드러내보인 꼴이라고 후회하기도 했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풀어지는 것도 으레 빠르다. 회오리바람은 아침 내내 불지 않고 소낙비는 종일 내리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성격은 불같았지만 그렇다고 경솔하거나 즉흥적이지 않은 진중하고 훌륭한 지도자였다. ​ 다산은 수령이 아전과 하인을 대할 때에는 ​ "마땅히 장중하고 엄숙하며, 화평하고, 대쪽같이 바르고, 과묵해야 한다”고 하였다.2) “아전과 하인을 경솔하게 대하여 체모를 손상해서는 안 되며, 뽐내고 잘난 체해서도 안 된다. 장중하고 화평하면 될 것이니, 오직 묵묵히 말하지 않는 것이 최상의 묘법이다." ​ 라고 덧붙인다. 예나 지금이나 공무원은 공무를 집행함에 있어서 ‘평정심平靜心’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성격에 치우친 곳은 없는지를 찾아 바로잡아야 한다. 유약함은 강하게 고치고, 게으름은 부지런하도록 고치고, 지나치게 굳센 것은 관대하도록 고치고, 지나치게 흐트러진 것은 위엄 있게 고쳐야 한다. ​ 다산의 이러한 가르침을 모든 공직자가 칙궁(飭躬:몸소 경계해야 할 바른 몸가짐)으로 삼아 솔선 실천함으로써 시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았으면 좋겠다. 1) 『牧民心書(목민심서)』제2부 律己(율기, 자기관리)편 제1조 飭躬(칙궁, 바른 몸가짐)에 “毋多言(무다언), 毋暴怒(무폭노)”라는 글이다. ​ 2) 원문을 보면 “宜莊和簡默(의장화간묵)”이라 쓰고 있다.

도시디자인이 사람의 도시를 만든다 - 6편 도시디자인의 현대적 전망

조용준 조선대학교 명예교수 칼럼

[COLUMN] 도시디자인이 '사람의 도시'를 만든다 6편 - 도시디자인의 현대적 전망 ​ 조 용 준 조선대학교 명예교수 ​ 前)광주광역시도시공사 사장 前)한국주거학회장 前)한국도시설계학회 부회장 前)중앙도시계획위원 ​ ​ ​ ​도시디자인의 현대적 전망 축소 지향형 도시 실현으로써 도시디자인 ​ 도시는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성장·변화한다. 처음에는 도시가 형성되는 도시화 단계를 갖는다. 이 단계에서는 도시적 모듬살이가 형성되고, 행정, 업무, 상업 등 활동이 집약적으로 일어나는 도심이 생겨난다. ​ 인구가 더 늘어나면, 도시는 외곽지역으로 확장한다. 이 과정에서 도심성이 배제되고 확장성이 큰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인구감소가 심화되면, 무거주지역의 출현과 함께 재집중화 단계에 이른다. ​ 이 과정에서 도심기능의 회복 문제가 일어나는데, 우리 도시들의 대부분은 이 단계에 와있다. 특히 인구감소는 생산가능 인구 감소와 함께 재정 약화로 이어지면서 도로나 공원 등 도시기반시설을 비롯한 도시공간의 유지 관리가 힘겨워진다. 또 확산형 도시를 지지하던 자동차가 내뿜는 탄소 배출량 감소 문제도 있다. ​ 거기에 1인 가족이 보편화되면서 나타나는 절연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한 공동체 도시의 요구도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도시구조를 축소지향형으로 재편과 함께 이의 거점으로써 도심 기능 강화가 필요하다. OECD가 2000년 일본 도시정책에 대해 “인구감소를 고려하지 않고, 도시확장을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그간의 도시 성장 매니지먼트로부터 컴팩트한 기능을 갖는 도시 만들기로 변화가 필요하다.”는 권고도 이와 맥을 함께 한다. 이것이 앞으로 도시디자인의 역할이다. 이미지 뉴욕 가번트지구 어반 가든 타운 매니지먼트 프로젝트(출처, 도시재생 현장에 답이 있다, P194 이운용) 도심 공간구조 재편의 공공정책으로써 도시디자인 ​ 도시는 도심과 기성 시가지, 그리고 이를 담벽처럼 둘러싸고있는 신시가지로 형성되어 있다. 이같은 확산형 도시구조를 축소지향형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도심기능이 강화되는 도심공간 구조 재편이 필요하다. ​ 그러나 도심은 이미 형성된 공간구조와 소유자. 문화가 있기 때문에 백지상태의 외곽지역에서 행해진 도시디자인과는 다른 역할을 한다. ​ 미국 등에서 현대 도시디자인은 1950년대부터 1960년대에 걸쳐 심화된 도시황폐가 출발점이었다. 특히 도시활동의 구심점 상실과 도심 슬럼화와 공동화에 대한 대응에서 시작되었는데, 뉴욕시립대 교수였던 조나단 바넷이 주도한 뉴욕의 보르드웨어 재생은 이를 잘 보여 준다. 도심재편을 위해서는 먼저 특질적 자원의 재평가와 함께, 공공정책으로써 도심 비전 제시가 있어야 한다. ​ 아울러 분명한 목표설정과 계획수립, 개발이나 형태 규제나 인센티브 방안제시도 있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건축과 토목, 교통, 조경 등 도시구성 요소의 융합적 결합은 물론, 공간과 시간의 결합도 있어야 한다. 특히 보행자 중심의 공공공간 개선은 물론, 상업 등의 민간활동을 유도하고 제어하는 수법도 있어야 한다. ​ 도심 공간 재편에서 민간영역을 소홀히 하고, 공공성만을 강조하면 실현성을 갖기가 어렵다. 따라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각양 각색의 협의적 도시디자인을 통한 공공성과 시장성이 균형을 갖도록 하는 관점도 있어야 한다. 도시디자인이 물리적 영역에서 비물리적 영역까지로의 확대를 의미한다. 그래야 축소지향형의 도시가 된다. ​ 와세다 대학의 고또우 하루히꼬 교수가 도시가 합리주의에 기반한 ‘행정적 공공성’을 가치로 하는 도(都)와 시장주의에 기반한‘시장적 공공성’을 가치로 하는 시(市)의 밸런스는 물론, 실용주의에 기반한 ‘시민적 공공성’ 가치가 추가되는 사람(人)까지 도시인(都市人)의 3가지 밸런스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도시인” 을 만드는 것이 도시디자인 역할이다. 이미지 요코하마의 도시디자인 (근대 산업을 지지하던 철로 흔적 보존과 아까 랭가 재생) 기성 시가지 재생의 매니지먼트로써 도시디자인 ​ 도시는 개인의 부 창출 이외에도 다양한 사회적 활동이 일어나는 장이다. 사회적 활동을 지지하는 가로공간이나 상점가는 물론 주택지가 쇠퇴하면, 경제적 사회적 활동이 열악해지고,지역 안전은 위협받고, 지역문제에 대한 자율적 처리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 도시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결국 공간과 시간, 인간이라는 자산의 재편성과 함께 다양한 사회 활동이 일어나는 장소를 만들어 도시공간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이다. 특히 사람이 쾌적하게 삶, 문화를 영위할 수 있도록 쾌적한 공공성 확보하는 것이다. 차도를 줄여서 인도를 만들고, 연등형 건축물에 공공성을 부여하는 등 건축과 도시공간이 연동하는 것도 그러하다. 그래야 도시공간이 사람의 공간이 되고, 활력적 도시공간이 될 수 있다. ​ 기성 시가지를 지지하는 단독주택지는 주택들을 묶는 골목길 활력이 중요하다. 골목길은 보행의 시작점으로써, 이웃사촌 관계를 만들고, 긴 세월동안 이어져온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삶, 문화가 모자이크처럼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이웃관계를 이어주는 사회적 접촉공간이자 도시 정체성이다. 골목길이 살아야 사람, 토지, 마을의 관계성도 회복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평등성이 보호받고 활력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도시 디자인 역할이다. ​ 콜롬비아 보고타 시장인 엘리커 페놀로사는 인간을 존중하는 도시만이 시민들에게 존중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인만큼 부유한 생활을 누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시민들이 존엄성을 보호받고 풍요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더 행복한 도시를 디자인 할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이 도시디자인 역할이다. 이미지 축소하는 도쿄 (출처-도쿄 2050, 축소하는 도쿄를 위한 도시디자인 전략, 오노 히데요시 도쿄대 교수) ​ 공동체 도시의 실현으로써 도시디자인 도시특질존속과 공동성 확보로써 도시디자인 ​ 도심과 이를 지지하는 기성 시가지에는 도시특질인 도시정체성과 생활 친밀형의 문화가 있다. 도시특질이란 다른 도시와 차별화 할 수 있는 특별한 기질이나 성질로써, 도시정체성을 만드는 도시잠재력이자, 도시자원으로써 경제적 번영에 공헌한다. ​ 1998년 유럽공동체는 21세기 도시지향 목표로 정한 10개 중의 하나가 도시특질의 존속이었다. 도시학자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낡은 건물을 부수고, 번쩍거리는 대형 건물을 짓는 방식의 도시개발은 오히려 도시를 죽게 한다. 이것은 도시재건이 아니라 도시를 약탈하는 행위이다.”라고 한 것도 도시특질 보존의 중요성 강조다. 대부분의 도심은 도시의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도시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적 자산 등이 만든 도시특질이 있고, 기성시가지에는 동네가 만드는 생활 친밀형의 특질이 있다. 이들 특질을 창조적으로 보존하여 사람들이 공유하는 것이 도시디자인 역할이다. 특히 역사적 환경이나 문화예술, 지형이나 자연, 도시적 문맥 등을 바탕으로 시간과 공간을 결합을 통하여 누적적 다양성의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서로 공감하고, 공동체 일원이라는 생각은 물론, 도시에 대한 자부심도 갖게 된다. 건축 도시공간 연구소 염철호 박사는 공공성을 생활공간적 공공성, 사회적 공공성, 문화적 공공성으로 규정했다. 생활공간에서 시작된 공공성은 사회적 공공성으로 확대되고, 궁극적으로는 문화로 발전되고 교류되고 진전될 수 있다고 했다. 공공성은 공공공간을 매체로 하여 공동성을 만든다. 그래서 공공공간은 중요하다. ​ 그러나 도시는 지가가 비싸기 때문에 민간과 협력하여 소규모 공공공간의 창출이나 개선, 가로경관 개선, 다양한 공개공지확보(연속벽면후퇴, 길모퉁이 광장, 통과형 공개공지, 둘러쌓인 광장)는 물론, 개개 건축과 인접하는 공공공간의 일체적설계(보도교각, 계단과 건축물의 일체적 설계, 고가도로와 건축물의 일체적 설계, 철도와 건축물의 일체적설계, 수변공간과 건축물의 일체적설계 등)도 있어야 한다. 그라운드와 건물의 퍼사드가 만나는 표층, 공공스페이스와 민간 스페이스의 결합도 매우 중요하다. 이처럼 지역이 갖고 있는 특질 존속과 공공공간의 결합을 통하여 사람의 도시가 하는 것이 도시디자인 역할이다. ​ 공공공간 재생으로써 도시디자인 ​ 도시에는 이미 만들어진 거리나 광장 등의 공공공간 중에는 이용되지 못하고 활성화되지 못한 경우가 매 우 많다. 행정의 공공성이 시민의 공공성이 되지 못한 결과이다. 따라서 저이용의 공공공간이 활력있는 시민의 공간이 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 야마구치 대학 송준환 교수에 의하면 일본에서는 에리어 매니지먼트(타운 매니지먼트)를 통하여 지역민이 주도로 공공공간을 활용하여 지역활성화를 유도하고, 각종 수익사업을 실시하여 그 수익금으로 미화활동, 방범, 방재활동은 물론 지역과제 해결을 위한 각종제반비용으로 재투자하는 시스템을 지향하고 있다. ​ 삿포로시의 아카프라 광장(2016년 완공)의 경우 도청사 건물 앞도로 공간의 차량 통행을 막고, 광장화하여,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하였는데, 조례 등을 근거로 지역의 타운 매니지먼트 조직이 광장의 운영 및 관리를 전담하고 있다. ​ 이 조직은 각종 이벤트 주최자들에게 광장 공간을 제공하고 광장 면적에 따른 이용료를 받아서, 질 높은 광장 관리와 함께 지역의 공적 활동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 이미지 1-5 도시디자인이 만든 요코하마의 MM21스카이라인, 요코하마의 상징적 모습이다. ​ 이외에도 지하상가 내 광장 및 가로 공간 등을 활용한 이벤트 사업 및 광고 사업 등을 실시하고 있는데, 주말에는 여기저기에서 음악회 등 각종 볼거리가 제공되면서 지역전체의 활성화로 이어지고 있다.(도시재생 현장에 답이 있다 p192) ​ 이제 분리와 개별성의 도시계획이 만든 물리적 공간을 통합이나 융합의 도시디자인을 통한 사회적 공간으로 바꾸는 일을 해야 한다. 특히 공공공간을 비즈니스 모델로 활용을 통하여 사람의 장소가 되도록 하는 일을 해야 한다. ​ 도시디자인, 사람의 도시를 만드는 매체이다 ​ 앞으로 도시디자인은 인구감소와 함께 보편화되고있는 소자녀 초고령 사회에 대응은 물론, 환경부하를 경감하는 축소지향의 공동체 도시를 만드는 것에 역할이 부여된다. ​ 특히 도시공간의 재디자인을 통하여 빈부의 격차해소는 물론, 이웃과 평등한 삶이 가능한 쾌적하고 안전한 도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역할이 된다. ​ 이는 확산형 도시에서 재생형 도시로, 에너지 소비도시에서 저탄소 도시로, 평등도시에서 정체성 도시로 변화를 통하여 실현한다. 아울러 그간 땅을 관리하던 도시계획 중심에서 벗어나서 건축군을 관리하는 도시디자인 중심으로 변화를 의미한다. ​ 이미지 2050년 에너지 시스템(출처-도쿄 2050, 축소하는 도쿄를 위한 도시디자인 전략, 오노 히데요시 도쿄대 교수) 앞으로 도시는 사람(Human), 역사(History), 문화(Culture), 자연(Nature), 기술(Technology)을 바탕으로 창조적 (Creative)이고, 즐거운(Enjoyable) 도시가 되어야 한다. ​ 이를 위해서 도시디자인은 협의적 관계를 통하여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에 보다 더 큰 역할이 부여된다. ​ 그래야 인간관계가 강화되는 사람의 도시가 된다. 앞으로 도시디자인에 그런 역할을 기대한다. *그동안 본지에 기고해 주신 조용준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인

포스트 코로나, 세가지 쟁점

우리에게 포스트 코로나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 전 통일평화연구원장 ​ 저서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국제연대』, 공저, 한울, 2018 『평화를 위한 끝없는 도전』공저, 북로그컴퍼니, 2018 『소련형 대학의 형성과 해체』공저, 진인진, 2018 『냉전의 섬 금문도의 재탄생』, 공저, 진인진, 2016 외 다수 출처 - 다산연구소 코로나 19의 세계적인 대유행이 시작된 지 석 달째로 접어들면서, 우리 사회는 이제 범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고 생활방역으로 조금씩 전환하고 있다. 비록 관중 입장은 허용되지 않지만 프로 야구가 무관중 경기로 개막되었고, 세계의 여러 나라들이 이를 중계하고 있다. ​ 고3 수험생들부터 학교 수업을 정상화할 것을 결정하였다. 아직 그럴 때가 아니라고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안이 시급하다는 것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대통령은 담화를 통해 전 국민 고용보험제도의 도입을 약속했다. ​ 과연 우리에게 포스트 코로나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 ​ 방심하다가는 큰 낭패 ​ 세계적인 대유행의 상황을 분석해보면, 중국에서 코로나 19가 유행하던 시기에 상대적으로 느긋하게 생각했던 선진국들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되었다.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이탈리아와 스페인보다 늦게 대유행을 겪고 있는 영국이 최대 피해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근대의 문명이 허물어지고 있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복지국가 모델의 실패를 거론하기도 한다. ​ 아시아에서도 방역 모범국으로 간주되다가 상황이 완전히 역전된 싱가폴은 우리를 곤혹스럽게 한다. 싱가폴에서는 시민권을 가진 자국민 방역은 성공했으나 기숙사에서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관리가 소홀했기 때문에 낭패를 보고 있다. ​ 많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아시아 아프리카 개발도상국들의 상황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것은 자신들에게 충분한 의료역량이 없음을 인정하고 일찍부터 높은 수준의 통제를 실시한 덕분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지난 주말 서울의 교통 사정은 코로나 사태가 있기 전의 ‘불금’처럼 몹시 혼잡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 달만에 이태원 클럽이 새로운 집단감염의 현장이 되었고, 소수자 혐오를 동반한 고질적 인권침해가 논란이 되었다. ​ 범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지 한주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다시 켜진 경고등이다. 외국의 언론들은 방역 모범국인 한국이 경제 재개와 바이러스 차단 사이에서 그리고 인권과의 균형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논평했다. ​ 재난 책임 ​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이 자연재해인가 아닌가를 둘러싸고 국제적인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한국인들은 대체로 이것을 자연재해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지만, 세계 최대 피해국인 미국은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의 원천을 중국으로 지목하고 나아가 세계적인 대유행의 책임을 지속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영국도 이에 동조하고 있고, 세계보건기구가 중국에 경도되었다는 비판에는 독일도 동조하고 나섰다. ​ 중국은 오히려 많은 나라들에 대한 지원 공세를 취하고 있어서 세계적인 협력보다는 국제적인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농후하다. 이런 중국 책임론의 끝은 어디일까? 코로나의 역설은 치료 약 개발을 위한 전쟁뿐 아니라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을 제고시키고 있다. 우리는 미·중간 헤게모니 경쟁에서 의연해야 할 뿐 아니라 가장 취약한 고리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국지적 분쟁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 새로운 표준 ​ 코로나 바이러스 피해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세계는 이제 코로나 이전(BC)와 코로나 이후(AC)로 나뉠 것이라는 예측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코로나 확산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서 그런 비유가 상당히 과장된 것이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과거로 회귀하는 경향이 확연해지고 있다. ​ 하루라도 빨리 정상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은 경제주의적 관점에 바탕을 두고 있는 데 비해, 코로나 시대를 맞아 새롭게 부상하는 뉴 노멀(New Normal)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세계관으로는 반복되는 대규모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 뉴 노멀이 과연 생태주의일지 새로운 공동체주의일지 알 수 없지만, 앞으로의 세계가 기존의 정상과 새로운 정상 간의 사회철학적 투쟁의 장이 될 것은 틀림없다. 우리는 이런 쟁점에 대해 충분히 숙고하고 있는가? 세계는 한국이 가는 길을 주시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