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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파싸움, 그칠날은 없을 것인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칼럼

당파싸움, 그칠날은 없을 것인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우석대학교 석좌교수
고산서원 원장
 
 
저서
『다산 정약용 평전』민음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역주), 창비
『다산 산문선』(역주), 창비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한길사
『조선의 의인들』, 한길사 등

 

 

(····)

河山有遷變

朋淫破無日

一夫作射工

衆喙遞傳驛

詖邪旣得志

正直安所宅

산천은 변해 바뀔지라도

당파 짓는 나쁜 버릇 깨부술 날이 없구려

한 사람이 모함하면

뭇 입들이 차례로 전파하네

간사한 사람들이 세력 잡았으니

정직한 사람 어느 곳에 둥지 틀랴

(····)

-「고의(古意)」

 

1800년 정조가 갑자기 승하하고, 당쟁의 불길이 솟아오른 세상을 간파한 다산은 질곡으로 빠져들 자신의 운명을 예견하면서, 당파싸움에 희생을 면하지 못할 불행한 미래에 불안을 떨굴 수 없던 마음을 시로 읊었습니다. 조선시대의 당쟁은 참으로 뿌리가 깊고 세월도 너무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선조(宣祖) 8년은 1575년, 금년으로 445년 전의 일입니다. 다산은 300년의 길고 긴긴 뿌리이자 세월이라고 했습니다.

서쪽에 살던 심의겸(沈義謙)이라는 분과 동쪽에 살던 김효원(金孝元)이라는 분이 견해를 달리하며 일어난 붕

당싸움, 심의겸을 편들던 사람들을 서인이라 부르고 김효원을 편들던 사람을 동인이라 부르면서 동서분당의

서막이 열렸습니다.

권력투쟁과 학문이론까지 파당으로 나뉘며 죽기 아니면 살기의 싸움으로 극한적 대립이 계속됩니다. 숙종시

대에 이르면 살육 작전이 감행되도록 이합집산의 파당 싸움은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다산의 기록에 숙종시대의 공론(公論)은 사라지고 편론(偏論)이 판을 치던 사례 하나가 있습니다.

“숙종 만년의 어느 날 유신(儒臣)들을 불러서 맛있는 술을 하사하고 그들의 취한 모습을 살폈다. 술이 곤드레만

드레 취했을 때, 학사 홍중정(洪重鼎)이 큰소리로 ‘전하! 왜 오시복(吳始復)을 유배에서 풀어주지 않습니까? 의당 바로 방면하십시오’라고 말했는데, 오시복은 남인이었고 홍중정도 남인이었다. 그러자 학사 오도일(吳道一)이 큰소리로 ‘전하! 그의 말을 믿지 마시오. 모두 편파적인 주장입니다.’라고 했으니 그는 서인이었다.”

라는 내용입니다.

그러한 대화가 있던 바로 뒤 숙종임금의 말이 기가 막힙니다.

“이렇게 취했는데도 편론(偏論:편파적인 당론)은 잊지 않으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醉至於此 不忘偏論 可奈何矣)”

라는 탄식입니다. 다산의『혼돈록(餛飩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신하들의 본심을 알아보려던 숙종의 의도는 정확했습니다. 취중진담이라 하듯, 아무리 취해도 그들은 본심을 숨기지 못했고, 찌들도록 마음속에 박힌 당습(黨習)은 버리지 못하고 실토하고 말았다는 내용이니, 당파의 대립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가를 알게 해주는 일화입니다.

식물 국회에서 진저리나던 국민들, 국회가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라는 뜻으로 거대 여당을 만들어 주었건만, 요즘의 국회 돌아가는 모양을 살펴보면, 한 치의 차이 없이 지난번 국회처럼 당파적 논리만 판을 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어떻게 해야 난국에 처한 나라의 문제를 해결하고 질병과 경제로 온갖 불안에 시달리는 국민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것인가요?

벌써부터 다음 정권을 잡는 문제, 국민에게 파당의 논리를 유리하게 알리는 문제에 집착하면서 붕당싸움만 계속하고 있으니, 어쩌란 말인[可奈何矣]가요. 당쟁의 격화 속에서 당파싸움에 시달리던 숙종의 안타까운 심정이 오늘에 더욱 간절하게 여겨짐은 어떤 이유에서일까요. 남북문제, 코로나19 문제, 경제문제, 실업자 문제 등 산적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잠시만이라도 당쟁을 멈추고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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