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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일자리를 디자인하다 - 도서출판 미세움

당신의 일자리는 행복합니까? 당신에게 일이란 무엇입니까?

당신의 일자리는 행복합니까? 당신에게 일이란 무엇입니까? ​ 마을의 일자리를 디자인하다 - 도서출판 미세움 일자리는 그저 노동을 화폐로 바꾸는 수단쯤이고! 노동인구의 1/3이 적성에 안 맞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 젊은이들은 도시로 빠져나가고 노동인구는 나이 들어 점점 일자리가 줄어들던 섬! ​ 그 지역에 맞고 지역민이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자리! 대를 이을 일자리는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잘 만들 수 있다! ​ 옛날부터 그곳에 있던 삶의 방식, 일하는 방식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중요해질, 도시에는 없는 ‘일하는 형태’를 만들어야 한다. ​ 이 책에는 그 힌트와 증거가 무수히 많다! 마을 만들기를 넘어 지역이 주민의 행복지수를 높일 일자리 만들기를 소개한 책이 묻는 질문이다. 일자리는 그저 노동을 화폐로 바꾸는 수단쯤이고, 노동인구의 1/3이 적성에 안 맞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 젊은이들은 도시로 빠져나가고 노동인구는 나이 들어 점점 일자리가 줄어들던 섬마을 아와지 역시 단순히 인구증가나 수입 증가가 지역 활성화의 성공인가라는 한계에 부딪혔다. ​ 이 섬이 가지고 있는 풍부한 자연환경에도 불구하고 비어가는 섬을 안타까워하던 이들이 ‘아와지 일하는 형태 연구섬’이라는 프로젝트를 만들어 마을다운, 나다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그로 인해 주민들이 삶의 터전에서 행복을 느끼고 있는 현장을 소개한다. ​ 2016 아시아미래포럼에서 “행복은 경제적 지표보다 삶의 터전에서 느낄 수 있어야 한다”라고 주창했듯이, 참여자들은 지역이 건강하려면 지역 사람들이 자부심을 갖도록 해야 하는데, 독창성 있는 지역 상품과 일자리 개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우선, 일자리를 창출하는 플랫폼을 어떻게 디자인했는지 이 프로젝트를 지탱한 수퍼바이저, 지역 어드바이저, 사업추진원, 실천지원원들의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 대도시에서 건축, 기획, 예술, 디자인 등 다양한 일을 하던 사람들이 언뜻 무모해 보이는 프로젝트를 만들어, 행정의 벽을 넘고 밥벌이를 넘어선 나다운 일자리를 원하는 이들과 강의라기보다는 아이디어 회의 같은 만남을 지속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일자리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쓸모없던 천 조각들이 한 땀 한 땀 이어진 바느질로 근사한 조각보가 되어가는 듯 흥미롭다. ​ 상품개발과 광고계획을 하다가 이 프로젝트의 수퍼바이저가 된 에조에는 지역을 건강하게 하려면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독창성을 추구해야 한단다. 강의, 연구회, 상품개발, 이벤트는 결국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길잡이라며, 프로젝트는 끝나더라도 이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은 계속되는 것이기에 새로운 삶의 형태, 행복의 형태를 계속해서 고민해야 한다고 한다. ​ 자극 없는 섬 생활이 싫어 나고 자란 섬을 떠나 대도시에서 공부하고 일하다가 지역 어드바이저가 되어 다시 섬으로 귀향한 야마구치. ​ 그는 기후나 풍부한 식재료 등 살기 좋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 섬에서 살지 않는 개운치 못한 현실에 질문을 한다. 답은 바로 일자리. 섬에 잠들어 있는 무수한 가치가 탄생시킬 일자리라는 답에 이르는 순간, ‘지긋지긋한’ 섬으로 미련 없이 돌아와 프로젝트에 참여해 사람과 사람을 잇고 스스로 자신다운 일자리를 찾도록 돕고 있다. ​ 대도시도 아닌 지역, 게다가 섬에서 취직할 기회는 제한적이다. ‘하고 싶은 생각’을 상품이나 서비스로 만들고 판매하는 창업기술을 지원한 오니모토는 지역 공무원이다. 탁상 행정이 아닌, 현장에 필요한 연수회를 만들어 실제로 수많은 참가자들이 농업의 6차 산업화와 관광과 관련한 비즈니스 기술을 익혀 사업을 키우거나 창업을 해 고용을 창출하였다. ​ 대도시에서 건축설계를 하던 후지사와는 우연히 이 섬에 왔다가 ‘바다가 보이는 비닐하우스 레스토랑’이라는 이벤트에 참가했다. 동네 사람들이 지역에서 수확한 음식 재료를 내고 초대한 요리사가 요리를 만들어 지역 도예가가 만든 그릇에 담아내어 맛보고 즐기는 모습에 반해 무작정 사표를 던지고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 섬 구석구석을 누비며 마을 사람들을 만나 관광투어 상품개발을 맡았던 그는 새로운 고민과 과제를 풀기 위해 여전히 섬을 탐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독특했던 이유는 섬을 브랜딩하고 일자리를 디자인한다는 것이다. ​ 디자인이라는 용어 자체에 거부감을보이던 때부터 디자인의 필요성을 이해시키는 데 한몫을 한 이는 가구 디자인, 그래픽디자인 등 창의적인 예술 활동을 하던 하토리였다. 디자인이 의식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알고, 지역다움이 그 지역의 미래의 씨앗이라는 신념으로 활동하고 있다. ​ 그 외에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강사들이 ‘일하는 형태’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엿볼 수 있다. 고령화·과소화하는 지역에서 설레는 일자리, 보람을 찾는 일자리, 돈벌이가 되는 일자리를 만들고 싶은 열의가 생긴 시점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적기라고 강사들은 입을 모은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희망자들을 모아 연수를 마치기까지 4년.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섬이 안고 있던 과제를 찾아 섬 특유의 상품과 관광 투어를 개발했다. 독특한 부가가치 상품과 관광투어 상품이 섬의 매력을 전하며 널리 퍼지고 있다. ​ 가축의 분뇨와 채소 쓰레기를 처리해서 만든 유기비료인 ‘섬의 흙’은 다시 농장의 흙을 기름지게 만들어 섬 안에서 선순환을 이룬다. 특산물이지만 생산자의 고령화로 생산량이 감소하던 밀감은 유기농으로 재배해 에센셜 오일로 만들어 과실 출하 외에 판로를 넓혀 놀리던 농지를 되살리고 일자리를 만든다. 그 밖에도 조미료 세트, 벌꿀, 빗자루 키트 등 다양한 부가가치 상품들이 만들어진 배경, 진행 과정, 만들어낸 일자리를 자세히 소개하였다. ​ 또 그곳에서만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관광/체험상품을 만들어 외지인들에게 호평을 받고 이주를 결심하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이 상품들은 처음부터 제조자와 사용자가 그 지역의 상황·문제점을 함께 고민하고, 상품명·포장·판로 등은 디자이너나 마케팅 전문가의 손을 거친다는 공통점이 있다. 책에 소개한 부가가치 상품과 관광투어 상품은 단편적이고 구매욕을 자극하지 못하는 우리의 지역 상품이 무엇이 문제인지 되돌아보게 할 기회가 될 것이다. ​ 끝으로 연수에 참가하여 상품을 개발하고 일자리를 만든 주민들의 체험을 생생하게 담았다. 4대째 내려오던 포목점을 물려받아 40년간 운영해 온 니미 히사시는 늦은 나이지만 자신의 ‘일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맞춤 양복을 만들어 브랜드를 시작했다. 웹 숍 등 어렵고 창업하기 두렵기도 했지만 준비하는 내내 주위 사람들에게 들었던 ‘즐거워 보여요’라는 말이 큰 힘이 되었단다. ​ 양계장을 하는 기타사카는 희귀종 닭을 키우는 자부심이 달걀 푸딩이라는 부가가치 상품을 만들어 직판장이나 이벤트에 참가해 소비자와 소통하고 있다. 양계장에서 나온 분뇨를 유기비료로 만들어 지역 농지를 기름지게 하는 등 지산지소를 넓혀가고 있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다양한 상품으로 개발하는 것을 ‘놀이’라고 여기는 그는 자연스럽게 휴일이 없어졌지만, 365일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한다. ​ 젊은 인력이 부족한 시골에서 체력적으로 노인들이 하기에는 어려운 카렌듈라 관상용 절화를 재배하던 히로타는 농약 치는 일도 없어지고 출하작업도 쉬운 무농약 재배로 전환하였다. 그는 망설이던 끝에 지역 농업개량보급센터 지도원의 도움을 받아 생산부터 식용·약용으로 가공까지 하는 6차 산업에 도전하고 있다. ​ 도시에서 자동차 정비회사에서 일하던 시오타는 동일본대지진을 겪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던 끝에 우연히 채소에 매료되어 농사로 전업한 젊은이다. 젊은 층 농가가 줄어들어 버려진 농지와 빈집이 늘고 있는 현실을 보고 ‘젊어서부터 채소를 재배하자’고 마음먹고 섬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 출퇴근하는 동안 시간적·체력적 낭비에 지쳤던 도시 생활과는 달리, 아침에는 산책을 즐기고 일하고 돌아오면 가족과 느긋하게 저녁을 먹는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단순하게 사는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 유기농 재배를 배우고 시행착오도 즐기며 자신이 노력한 만큼 주어지는 것이 농사의 매력이라고 한다. 나중에 농사를 짓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의 롤 모델이 되고 싶다며 농사는 젊었을 때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 그 외에도 손재주가 좋은 아주머니들을 모아 공방을 운영하는 도쿠시게, 섬에 어울리는 크고 작은 일자리와 이벤트를 구상하는 도미타, 나카야마 등 섬사람들이 그들만의 일자리를 만드는 이야기에는 하나같이 설렘이 가득하다. ​ 여전히 동네에는 치킨가게, 피자가게, 슈퍼마켓 등이 연신 문을 열고 닫기를 반복한다. 쉬운 창업만큼 폐업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 인구가 밀집된 도시도 일자리가 줄어 창업자들이 넘치는 마당에 인구도 줄고 노동 연령도 높아진 시골은 마을의 존폐가 걸린 심각한 현실이다. 우리가 지금껏 창업을 바라보았던 시각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반 실시간 안전관리

AI기반의 최적화된 대국민 안전서비스

서경대학교 융합대학 정희정 교수 수도권 및 광역도시를 중심으로 노후 공공 시설물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화재, 붕괴 등 각종 산업재해의 안전취약성에 노출되어 국민의 불안감이 증대되고 있다. ​ 이에 사회 취약계층시설, 다중이용시설, 공공시설을 중심으로 디지털트윈 기반 재난예측과 안전관리 통합플랫폼 실증으로 AI기반의 최적화된 대국민 안전서비스가 필요하다. 기술의 변화 SW 新기술 기반 디지털 환경은 5G의 초고속·초연결·초저지연이 결합한 초(超)시대에 도래하여 산업 생태계에 새로운 기회 및 변혁을 촉진하고 있다. 5G 디지털트윈 기반 재난예측은 AI기반의 최적화된 대국민 안전서비스로 구조물 이상상황 예지정비, 안전 대피 시간 최소화로 정부와의 협업을 통한 전국단위 지자체 건물에 확대 적용, 나아가 표준화를 통한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을 도모할 수 있다. ​ 사회의 변화 ​ 노후 시설물의 지속적 증가로 인해 시설의 화재·붕괴 등 안전취약성이 증가하고 있어 시설물 안전에 대한 국민 불안감이 증대하고 있다. 국토교통부의 건축물 현황통계에 따르면 준공 후 30년 이상된 노후 시설물은 2016년 36% , 2017년 36.5%, 2018년 37.1%로 지속적 증가로 시설의 화재·붕괴 등 안전취약성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어 시설물 안전에 대한 시민 불안감이 증대하고 있다. ​ 초(超)시대 SW 新기술로 보다 나은 국민생활 인프라 구축 ​ 현재 시민의 안전보장과 골든타임 확보를 위해 5G, SW 新기술 기반 국가 주요 공공시설물 안전관리 방식 선진화 등 정부차원의 투자가 진행되고 있으며, 지역 사회 안전 환경 조성과 新비즈니스 기회 창출을 위해 5G 기반 디지털트윈 기술 적용의 실시간 안전관리 체계 마련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이러한 노력은 사회적 측면으로는 안전한 공공 서비스 및 국민생활의 인프라를 제공하고, 경제적 측면으로는 5G기반 융합서비스 발굴을 통한 新시장 창출로 이어질 수 있으며, 기술적 측면으로는 5G, SW 新기술 확산·발전을 통한 글로벌 선도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 시설물 안전관리분야에 5G와 SW 新기술 기반의 혁신이 이루어지면, ​ 첫째, 육안검사 의존 안전 관리는 데이터 기반의 안전관리로 변화되어 산업구조를 혁신하고, ​ 둘째, 지금까지 각각 구축되고 관리되던 안전관리가 민관협업 산업 혁신 및 미래 먹거리 창출로 협업을 통한 소비자 중심의 가치 창출을 하게 되며, ​ 셋째, 그동안 예측을 위한 단순히 데이터를 수집하여 활용하던 것들이 AI·IOT·BigData·Digital Twin 등 SW신기술과 5G로 융화되어 5G기반 SW 新기술의 고도화를 이루게 된다. ​ 수도권 광역시 디지털트윈 구축 시나리오 예시 ​ 올해 상반기에 서경대학교와 수도권 광역시 5곳이 공통의 디지털트윈 구축에 관한 시나리오를 제안한 내용 을 바탕으로 어떻게 토폴로지를 구성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각 지자체의 안전관리에 대한 니즈는 다양하 였으며 이에 따른 시설물도 다양하였다. ​ 의정부시는 도시 공공 시설물의 안전관리에 중점을 두어 의정부역 지하도 상가를 중심으로, 구리시는 젊은 시민인구 유입을 위한 스마트 기술도시 구현으로 도서관 등을 중심으로 니즈가 있었다. ​ 광명시의 경우는 노후화 시설에 대한 안전관리를 중심으로 시민회관 등의 시설물이 선정되었다. 안양시는 노인시설 맞춤형 재난안전 서비스에 대한 니즈로 노인 복지 회관 등의 시설물이 선정되었다. 오산시의 경우는 문화예술시설에 대한 니즈가 높아서 시립 미술관 등이 선정되었다. ​ 이러한 각 지자체 와의 협업을 통하여 총 38개 시설물이 선정되었다. 본 사업 시나리오에서는 디지털 트윈 구축에 관한 최종 산출물 목표를 다음과 같이 정하였다. ​ - 5G기반 클라우드 IoT Platform Service 개발 ​ - 디지털트윈 기반 건물안전 통합관리 및 실시간 관제 Service (각 시설용도별/테마별 구분) ​ - 건물안전 환경지표·센서·시설물통합 관리를 통해 데이터기반의 재난 사전예측 ​ - 재난 발생시 피해 최소화를 위한 S/W 플랫폼기반 지능형 시뮬레이션으로 최적 대피로 안내 ​ - 시뮬레이션을 통해 시민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형 혁신활동을 지속적으로 운영 ​ ​ 디지털 트윈 구축에 대한 추진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 5개 지자체의 다용도 시설, 시민이 많이 활용하는 시설을 안전과 재난 중심으로 총 38개 건물을 지자체와 여러 차례 회의를 통하여 시설물의 우선순위를 정하여 최종 선정하였다. ​ - 각 건물에서 측정할 데이터를 지자체와 안전 및 센서 등 관련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 정하였다. 그래서 온습도, 진동, 미세먼지, 공기의 질, 전기 미 화재, 설비에 대한 것을 측정하기로 하고 해당 기능의 센서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이번 사업 시나리오에서는 38개 건물 총 1400개로 가정하였다. 물론 각 건물의 크기와 층수에 따라서 센서의 개수는 증감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 - 각 측정 요인별 센서에서 데이터가 수집되면 이 데이터는 Lora 망으로 연결하여 5G 게이트웨이를 통하여 건물 안전관리용 IoT 융합 플랫폼에 들어오게 하였다. 그리고 IoT 융합플랫폼에 집적된 데이터 내용은 건물안전 관리용 3D 디지털 트윈 플랫폼에서 구현되도록 하였다. ​ - 디지털 트윈 통합관제는 서경대 통합센터와 각 지자체의 통합전산센터에서 관리하도록 구성하였다. 또한 각 건물의 지능형 CCTV와 바이오센서로 얻어진 데이터도 3D 디지털 트윈 플랫폼에서 디지털 트윈화할 수 있도록 방법을 열어 두었다. 모든 시스템의 구현은 공공용 G클라우드 플랫폼 상에 구축이 되어 일반 클라우드 환경과는 다르게 안전하게 관리될 수 있도록 하였다. ​ - 통합관제센터에서는 출입관리 서비스로 현재 직원이나 출입인원이 파악되고, CCTV를 통한 현재 인원 파악으로 각 층의 인원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 가능하다. ​ - 각 층의 센서로 화재 및 붕괴에 대한 감지를 할 수 있어서 건물의 진동, 기울기, 화재 위험도, 연기 농도를 실시간 파악이 가능하다. ​ - 각 층의 환경 요인인 온도, 습도, 미세먼지 농도, 이산화탄소 농도를통합관제센터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 - 이러한 센서 데이터와 CCTV, 출입관리가 한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어서 사전 예방이 가능하다. ​ - 한 시설물의 화재가 발생한 경우 통합관제센터에서 즉시 확인이 되며, 사전에 정의한 행동요령(SOP)에 따라서 관련 건물과 각 층에 있는 인원을 파악하고 피난경로를 알려 주어 사전에 대형 재난을 막을 수 있도록 설계 되었다. ​ 스마트 공공건물 관리 통합관제센터 예시 - 디지털 트윈 전문기업 셔블 제공 스마트 공공건물 관리 통합관제센터 예시 - 디지털 트윈 전문기업 셔블 제공 ​ 앞으로의 스마트시티는 도시 운영의 효율화, 도시민의 삶의 질 제고뿐만 아니라 스마트시티 산업 생태계 조성을 또 하나의 목표로 설정해야 할 것이다. ​ 이는 도시 운영의 효율화를 위하여 기술개발을 통해 인프라 고도화와 운영을 지원하고, 각 지자체간 관리시스템 통합하고 연계운영관리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 시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각 지자체의 인프라와 데이터 축적에 대해 적절한 개방을 통해 민간 서비스 발굴 등의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용 출처 ​ 5G기반 디지털트윈 시설물 관리, Public Design Journal 7월호 , 2020.07 ​ 수도권 광역도시 180만시민의 5G디지털트윈 기반 안전관리 및 재난예측 통합플랫폼 실증 및 구축, 서경대학교 외 , 2020.04 ​ 디지털 트윈 3D통합관제센터, 셔블, 2020 ​ ​

5G 기반 디지털 트윈과 시설물 관리

600만 5G 가입자 시대와 스마트시티, 시설물 관리와 디지털 트윈

서경대학교 산업협력단장 이 석 형 교수 SW신기술 기반 디지털 환경은 5G와 결합하여 산업 생태계에 새로운 기회를 마련하였고 ​ 이러한 5G기술이 디지털트윈과 융합하여 전통산업의 디지털 혁신 및 융합형 신서비스 창출 등 산업 성장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는 2019년부터 국가 R&D 사업으로 디지털 트윈 기술 개발 및 시범 도시 적용 등을 추진하고 있다. 2020년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5G+전략(공공선도투자)의 일환으로 ‘5G기반 디지털트윈 공공선도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총 300억 원을 투입, 디지털정부혁신은 물론 민간의 혁신성장을 이뤄낸다는 계획이다. ​ 600만 5G 가입자 시대와 스마트시티 ​ 지난 6월 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4월말 기준 국내 5G 가입자가 633만 9917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 3일 처음 5G 서비스를 시작한 지 1년여 만의 기록으로 3월 588만 1177명보다 7.8% 증가했다. ​ 이러한 5G 서비스 증가를 바탕으로 스마트시티 분야는 ’24년까지 5G 기반 스마트시티 공공서비스 15종을 도입하고 도시안전·사고예방 등 핵심분야 5G 서비스 실증 및 국가시범도시의 5G 테스트베드화를 위한 단계적 실증 지원을 추진하며 2020년까지는 무선 CCTV 기반 도로안전, 5G 드론 기반 구조물 안전, 5G 정밀측위 기반 화재 예방 서비스 등 공공 수요 창출을 위해 도시안전, 사고예방 등 핵심 분야 스마트 시티 서비스를 발굴하고 실증한다. ​ 2023년까지는 항만(부산, 인천)·산단(시흥, 평택)·고속철도 역사(서울, 대구) 등 도시내 주요 인프라 대상으로 5G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공공서비스 발굴 및 실증으로 도시내 인프라(항만, 역사 등) 안전진단 및 사고예방에 5G 기반 지능화기술을 적용하는「5G+스마트 SOC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나아가 2024년까지는 ‘지자체(수요자)+ICT 기업(공급자)’가 제안하는 스마트시티 5G 공공서비스 발굴 및 대규모 확산을 위해 지자체를 대상 챌린지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 ​ 시설물 관리와 디지털 트윈 ​ 국토교통부의 건축물 현황통계에 따르면 준공 후 30년 이상 된 노후 시설물은 2016년 36%, 2017년 36.5%, 2018년 37.1%로 지속적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한 시설의 화재·붕괴 등 안전취약성이 증가하고 있어 시설물 안전에 대한 국민 불안감이 증대하고 있다. ​ 건설된 지 30년 이상 된 고령화 시설은 1종 603개(7.1%), 2종 2,716개(3.9%)로 특정관리대상시설 중 위험등급 시설은 중앙부처 302개(0.5%), 지자체 724개(0.7%)로 전체 위험등급 시설 중 지자체 비중은 70%를 차지한다. 이에 국민의 안전보장과 골든타임 확보를 위해 5G, SW 新기술 기반 국가 주요 공공시설물 안전관리 방식 선진화 등 정부차원의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 정부는 5G+전략의 중점과제 공공 선도투자로 5G와 디지털 트윈 기술을 접목한 주요 시설물 안전관리로 공공의 선도적 수요창출을 하고자 한다. ※ 인용 https://www.yna.co.kr/view/GYH20190821000600044 현재 우리나라의 시설물 관리는 시설물안전법상 국가 주요 시설물은 규모와 중요도에 따라 1종 및 2종 시설물로 구분되고, 안전점검이 시행된다. 안전점검은 안전등급 등에 따라 정기점검, 정밀점검 및 긴급점검으로 구분되며, 안전점검 결과에 따라 필요시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한다. ​ 안전점검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정기점검은 그 결과에 따라 긴급점검 또는 정밀안전진단을 실시하게 되는데 현행 정기점검은 경험과 기술을 갖춘 전문가의 육안관찰을 통한 외관조사 수준에 머물러 있어, 점검결과에 대한 신뢰도가 낮을 뿐만 아니라 급격히 늘어나는 시설물을 모두 점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디지털트윈 기술을 시설물 관리에 활용하게 되면 미리 재난이나 사고를 예측하여 대응할 수 있다. 디지털트윈 기술은 원격지에서 실시간으로 현장관리를 할 수 있고 현장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화재나 긴급재난 등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사고 발생 시 재난 당국과 실시간 상황 공유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 디지털 트윈으로 시설물을 관리하게 되면 ​ 첫째, 통합된 하나의 뷰(view)로 쉽고 직관적인 3D 기반의 통합관제를 할 수 있으며, 날씨나 밤이나 낮 등 환경요인에 관계없이 실시간으로 전체적인 공간 관제(Special)를 통한 종합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 둘째, 기존의 각각의 네트워크, CCTV, IoT 등 데이터를 통합하여 실시간 데이터 연동이 가능하다. ​ 셋째, 각 업무의 표준 업무 절차(SOP)를 디지털 트윈에 적용하면 그 절차에 따라 자동적으로 업무가 진행된다. ​ 넷째, 실시간 위치기반 서비스로 디지털화된 Thing의 정확한 위치와 업무를 연동시킬 수 있다. ​ 예를 들어 복지관 시설 3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면, 근처의 CCTV와 통합관제가 연동되어 있고 화재에 대한 SOP(표준업무절차)를 구현하였으므로 비상탈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 1. 특정 지역에 화재 발생 - 지역 파악 – 비상구 안내(디지털트윈 전문기업 ㈜셔블 제공) 2. CCTV 데이터와 SOP로 화재 발생 지역으로부터 대피–비상탈출구 알림(디지털트윈 전문기업 ㈜셔블 제공 ​ 만일 시설물 관리를 디지털 트윈으로 구현하면 시설의 순찰을 가상 순찰도 구현이 가능하다. 순찰할 건물 층을 선택하고 순찰 경로를 시스템 상에서 지정하면 SOP에 따라서 정해놓은 시간에 실시간으로 순찰을 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1. 복지관 3층에 순찰 경로 지정 – 순찰 경로 정의 함(디지털트윈 전문기업 ㈜셔블 제공) 2. 설정한 시간에 복지관 3층 순찰 하고 순찰 결과 저장 됨(디지털트윈 전문기업 ㈜셔블 제공) 디지털 트윈으로 시설물을 관리하는 과정은 먼저 사업 기획 및 컨설팅을 수행하여 사업의 범위와 목표를 명확히 하고, 플랫폼 구축단계에서 시설물에 대한 센서 연결성을 확보하고 플랫폼을 구축하게 된다. 이후 플랫폼 고도화 단계에서는 Open API로 신규산업 및 벤처 육성으로 Eco 산업으로 육성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존의 다양한 IoT 장비로부터 받은 데이터를 어떻게 디지털 트윈으로 변환할 수 있을까? 디지털 트윈 기술로 Single View 통합관제로 운영하기 위한 기술적 과정 Build–Design–Mapping–Single View 단계로 진행된다. 이렇듯 5G IoT 기반의 디지털 트윈 시설물 관리는 시설물 안전에 대한 국민 불안감을 해소하고, 공공 시설물 통합 관제 모니터링을 통하여 예측 분석할 수 있게 하며, 이로 인한 대국민 서비스 질이 향상되고, 시설물 관리 Open 플랫폼을 통한 신규 산업과 벤처를 육성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인용 출처 ​ 5G+ 전략실행계획안, 5G전략위원회 , 2019.06 5G 서비스 1년만에 가입자 600만명 돌파, 조선비즈, 2020.06 국가 주요 시설물 안전점검 현황 및 향후과제, 국회입법조사처, 2018 국가 주요 시설물 안전점검 현황 및 향후 과제, 국회입법조사처, 이슈와 논점 제1412호, 2018 혁신성장 DNA BIG3 , 기획재정부, 2019 디지털트윈 공간정보 프로세스, 셔블, 2020

[로컬에서 온 편지] 지방에서 돈 벌고 싶은 당신에게

박명호 공장공장 대표(목포)

[로컬에서 온 편지] 지방에서 돈 벌고 싶은 당신에게 ​ 박 명 호 공장공장 대표(목포) 사진 공장공장 - 지방에서 왔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서울만 있나’ 싶을 정도로 인구는 물론 모든 자원이 수도권에 쏠려있는 요즘, 다시 지역이 화두다. 복잡해지는 사회문제를 풀 수 있는 새로운 사회혁신 전략지가 ‘지역’이 될 수 있다는 이유다. ​ 구체적인 삶의 문제가 존재하는 곳, 로컬은 희망의 근거지가 될 수 있을까? 로컬에서 활동하며 로컬에서 작은 희망을 찾아가는 이들에게서 그 답을 찾고자 한다. 사진 공장공장 - 단체사진 서울을 떠나 지방(전라남도 목포)에서 살면서 스타트업을 만들고 운영한 지 3년이 지났다. 서울을 떠나 조금 더 여유를 찾고 돈을 서울과 비슷하거나 더 벌고 싶었다. 기회가 되면 엑싯(투자 회수)도 하고 싶었다. 지방에서 기회를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고 역량만 있으면 돈과 무관하게 일을 하는 지역은 의미 없는 시대가 오고 있다고 믿었다. ​ 전라남도 목포에서 지내는 3년 사이 우울증과 함께 지하철만 보면 가슴이 뛰고 한강만 보면 끌어당기는 것 같은 마음은 사라지고 여유를 찾았다. 아쉽게도 돈은 갈 길이 멀다. ​ 시작하고 거의 반년을 받지 못 하던 월급을 다시 반년 간 월 30만 원을 받았고 다시 월 70만 원 받다가 이제는 생활은 가능하게 받고 있다. 2명으로 시작해서 고향이 전라남도 목포가 아닌 친구들로만 10명을 더 정규직으로 채용해서 일을 함께 하고 있다. 한 번도 월급이 밀린 적은 없다. 그렇게 지방 소도시 전라남도 목포에서 지내는 사이, 지방에서 기회를 모색하는 사람들이 전국적으로 늘었다. ​ ▲강릉 ▲속초 ▲양양 ▲원주 ▲평창 ▲춘천 ▲울릉 ▲진주 ▲창원▲통영 ▲거제 ▲군산 ▲순창 ▲전주 ▲부여 ▲음성 ▲순천 ▲여수▲남해 ▲제주 등 거의 소도시 대부분에 지역성을 갖추면서도 역량도 갖춘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다. ​ 다만 아직까지 지방 소도시에서 기억할만큼 또렷하게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목표에서 동시에 두각을 낸 스타트업을 거의 보지 못 했다. ​ 지방에 자리잡은 개인 또는 기업 일부는 스스로를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의외로 스스로 스타트업으로 부르는 곳은 많지 않다. 그런 이유에선지 아직까지는 투자를 받는 것도, 사회적인 변화를 주도하는 것도 서울과 그 주위 수도권이 여전히 무대다. 서울과 수도권 밖을 벗어나면 돈에서 멀어지고 관심에서도 멀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싶지 않아도 매일 알게 된다. 사진 공장공장 - 섬 인문학 여행 엽서 '인구 50% 집중된 서울(수도권) 공화국은 사회적 문제' ​ 김대중 전 대통령 고향은 신안 하의도, 바둑 기사 이세돌 9단 고향은 신안 비금도이고 삼성은 대구에서 삼성상회를 개업한 게 시초였다. 20년 전 골목마다 북적이던 시절 “어깨를 부딪쳐야 지나갈 수 있었다.” 같은 무용담들은 이곳 목포를 포함해 이제 지방 소도시 어디를 가나 들을 수 있는 추억이 됐다. ​ 그 추억들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나이를 꽤 먹은 각 지방 기반 기업들도 많고 그 규모가 작지만은 않다. 그런데 과연 최근 몇 년 사이에 제대로 지방을 기반으로 태어나고 성장해서 주목 받은 스타트업이 몇 개나 될까. 쏘카(제주)를 포함하는 손에 꼽을만큼이다. ​ 왜 20년 전에는 그렇게 많은 지방 기반 기업이 생겨나고 성장해서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는데, 최근에는 그 움직임이 거의 보이지 않을까. 그 이유는 어쩌면 서울이 아니면 안 되고, 서울이면 무엇이든 되는 ‘서울 만능 주의’가 만들어낸 ‘서울 공화국’의 현실과 맞닿아 있다. ​ 인재는 서울로 끌어 당기고 비어버린 빈집과 늙어버린 도시는 책임지지 않고 서울에서 보낸 여행자들이나 장사꾼들만 받아서 나날이 껍데기만 남는 게 현재 지방 소도시들 현실이다. 서울에 집도 사무실도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살지도 않는 곳이 더 성장하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다. ​ 이 사실을 증명하는 것처럼 전국적으로 빈집은 10년 사이 3배가 늘었고, 전국 229개 기초지방자치단체 중 39%가 소멸 위험 에 처했다. 그럼에도 나날이 인구는 서울에 집중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1월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인구 증가폭은 역대 최저인데 반면 수도권 인구는 전체 인구의 50%를 넘어섰다. ​ 사진 공장공장 - 괜찮아마을 주민 단체 사진 '지방에서 제대로 돈 벌 수 있어야' ​ 지방에서 사람들이 떠난 이유는 단순하다. 더 나은 일자리, 더 좋은 교육을 찾아서 떠났다. 좋은 일자리는 서울에는 있고 지방에는 드물다. 지방에 공장, 농장은 있어도 소셜 스타트업들이 자리잡은 성수동이나 IT 스타트업들이 자리잡은 판교, 테헤란로 같은 곳은 드물다. ​ 지방 정부는 산업단지 조성과 케이블카, 흔들다리 같은 관광 기반 조성에는 열을 올리면서 지식 기반 산업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만을 쫓기 때문이다. ​ 지방에서 ‘제대로’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는 건 단지 높은 임금으로 대변되는 건 아니다. 20대에서 30대 실력 있는 예비 취업자들이 원하는 일자리에서 원하는 경제 활동을 지방에서 할 수 있어야 한다. 말도 안 되는 일만 하는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유례 없이 큰 규모로모여서 살면 하나의 생태계가 된다. ​ 그것이 곧 도시이며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되는 게 지방에서 가능하지 않으리란 법 없다. 어느 단 하나의 지방이라도 약 1,000명 내외 스타트업 종사자가 동시간대에 모여 살면서 활동할 때 그 지역은 변화하고 사회적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고 믿는다. ​ 현재 ‘괜찮아마을’은 실험주의자를 양성해서 괜찮아마을을 조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그 규모의 경제 목표를 세울 때도 1,000명을 기준으로 했다. ​ ‘지방에서는 돈 벌면 안 되는 걸까?’ ​ 지방에서 돈을 버는 건 죄가 아니다. 전라남도 목포에서 일을 하면서 사람들이 “지방에서는 돈을 벌 수 없다.”거나 “돈을 덜 벌어도 괜찮다.”로 쉽게 평가하는 걸 목격했다. ​ 이런 인식을 일부분 이해하지만 도리어 그런 이야기를 듣게 될 때마다 보다 적극적으로 ‘괜찮아마을’을 통해 돈을 벌 것이고, 서울을 포함해 해외에 진출해도 손색이 없는 비즈니스를 키워내고 싶다고 말한다. ​ 지방에서 자리를 잡고 제대로 성장하고 다시 확장을 할 수 있어야 더 많은 지방 소도시에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스타트업들이 자리 잡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 생각도 계획도 목표 어디에도 주체성은 없고 어딘가를 따라하기만 하는 정체를 모를 지방 정부들이 70년대 방식, 80년대 디자인, 90년대 커뮤니케이션으로 개발만을 거듭해 지방을 망치는 걸 2000년대식 사고방식으로 ‘어쩔 수 없다’면서 지켜만 볼 수는 없다. ​ 사진 공장공장 - 괜찮아마을 주민사진 지방에서 제대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늘고 그 사람들이 의식 있고 주도적으로 변화를 만들 때, 지방이 무너지는 걸 막을 수 있다. 전라남도 목포에서 ‘괜찮아마을’ 이름으로 조금씩 관심을 얻고 다른 지방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발견한 이상한 부분은 그 누구도 적극적으로 “돈을 벌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 서울에서 홍보, 여행, 커뮤니티, IT 관련 일을 할 때는 누구를 만나도 당연하게 얼마나 투자해서 어떤 수익을 얻고 기회가 되면 엑싯(투자 회수)하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묻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 지방에서 제대로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을 또렷하게 벌면서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킨 스타트업이 지방에서 나타나야 한다. 사회적 가치나 지방에서 일을 하는 자체만으로 도전 정신을 높게 평가하는 게 아니라 ‘숫자’로 더 평가 받는 스타트업을 지방이 발굴하고 육성해야 한다. ​ 지방 정부는 스스로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욕심을 버리고 더 나은 지방 기반 스타트업들이 생겨날 수 있도록 자원을 내어 놓고 아낌 없는 관심과 투자를 보내야 ‘소멸 위험’에 대해 그 누구보다 선도적으로 대응하고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스타트업들이 지방으로 가지 않을 이유가 없도록, 그들이 돈을 지방에서 벌도록 해야 한다. ​ 지방에서 돈을 벌고 싶은 사람들은 아직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당신, 아직 지방이 가진 기회를 발굴하고 제대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드문 지금, 지금이 곧기회이니 움직여라. 단, 지방에서 돈을 벌고 싶은 당신은, 서울에서도 돈을 벌 수 있는 당신이어야 한다. 지방 사람들 생계를 뒤흔들고 기회를 빼앗는 게 아니라, 스스로 기회를 발굴하고 개척해서 어차피 할 일 제대로 하자. 지방에서 돈을 벌고 이 외롭고 혼란한 시기에 지방춘추전국시대를 함께 열자. *본 기사는 박명호 공장공장 대표(목포)가 이로운넷에 게재한 [로컬에서 온 편지] 10. 지방에서 돈 벌고 싶은 당신에게의 내용입니다. ​

탐방취재 - 김민수 작가의 문화예술공간 몬딱을 찾아서 II

시즌-2 문화예술 콘텐츠를 만들다

김민수 작가의 문화예술공간 몬딱을 찾아서 시즌-2 문화예술 콘텐츠를 만들다. ​ 공공디자인저널편집부 정희정 편집인 ​ 지난호의 시즌-1 감귤창고를 개조하여 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김민수 작가의 시즌-2를 찾아간다. ​ 도시재생 뉴딜사업 어촌뉴딜 농산어촌지역개발사업등 관[官] 주도의 정책과 행정의 제도권 밖에서 결과를 이루어낸 민간전문가! ​ 김민수 작가와 문화예술공간 몬딱! ​ 문화예술공간 몬딱과 김민수 작가! ​ 그의 제주살이 행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지향하는 다양한 사업의 하드웨어[H/W]+소프트웨어[S/W]+휴먼 웨어[HnW]의 전과정을 아우르는 실천적 선례이다! 이미지 문화예술공간 몬딱 서귀포 안덕면 감산리 210-4 번지의 폐감귤창고는 ‘문화예술공간 몬딱’의 이름을 가지고 재탄생되었다. ​ 70평의 넓은 공간은 갤러리, 피아노가 있는 소무대, 강의시설인 빔 프로젝트, 컴퓨터가 연결 된 대형 TV 등을 갖춘 다양한 복합문화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 2019년 시즌2에서는 몬딱의 실내외 공간이 더욱 좋아졌다. 던&에드워드 페인트 회사의 후원으로 몬딱 외관과 실내가 감귤 창고의 감귤색인 노랑색으로 페인트 마감이 잘 되었다. 아울러 욕심을 부려 함께 채광이 잘 들어 올 수 있는 대형 유리문도 별도로 제작하였다. 또한 옛날 경운기트럭, 폐목선을 창고에 디스플레이하고, 실내에서 단체 강의가 가능한 테이블을 만들었다. ​ 이미지 문화예술공간 몬딱 다음은 이 공간을 활용 할 수 있는 문화예술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스마트폰 사진작가로서 많이 알려져 있고, ‘스마트폰 사진 잘 찍는 법’ 강의도 하고 있다. ​ 2018년 첫 번째로 내가 이주해 온 감산마을 이장, 부녀회장을 통하여 재능나눔으로 스마트폰사진 강좌를 열고, 팝아트, 커피 전문가와 함께 문화예술 강의를 함께 진행하였다. 그렇게 열린 강좌는 감귤농가인 감산리 마을에 색다른 문화예술체험의 기회를 제공하였고,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소통의 공간이 되어 갔다. ​ 그리고 주변에 다양한 재주를 가진 문화예술가들을 섭외했다. 바리스타, 스노클링, 목공, 작곡가, 가수, 팝아티스트, 서양화, 한국화, 공예가 등이 모였다. 우리는 이 공간에서 문화예술 아트클래스를 만들어 서로의 재능을 나누기로 했다. 이미지 문화예술공간 몬딱 소 무대공간에서는 작은 음악회, 성악클래스, 각종공연, 한식요리가의 요리강좌 등을 열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갔다. 서귀포 서남부 지역은 서귀포시와 지역적으로 거리가 멀어 문화예술 향유의 기회가 상대적으로 낮아서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 그러나 시작했을 때의 의욕과는 달리 지속적인 강좌가 힘들어졌다. 상대적으로 작은 수강료는 강의를 하는 작가들에게 고충이었고, 또 하나의 큰 문제는 넓고 높은 창고라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웠다. 이 공간의 냉온방 시설 설치는 전업작가인 나로서는 아직도 해결이 안 되는 문제이다. ​ 뜨거운 여름, 추운 겨울이면 강좌는 중단되고, 가을이면 1년마다 하는 나의 개인전 준비로 시간이 부족하여 강좌의 지속이 더욱 어려워졌다. 역시 한 개인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문화예술공간은 힘에 벅참을 느꼈다. 이미지 문화예술공간 몬딱 2018년 7월에는 ‘문화예술공간 몬딱’에서 만난 다양한 전문 재능인, 지역주민, 제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몬딱나누미 재능나눔 봉사단’을 발족하였다. 몬딱나누미의 슬로건은 ‘즐거울 락(樂), 도울 비(毘), 함께 공(共)’이다. ​ 럭비공처럼 통통 튀며 즐겁게 재능을 나누고 서로 도와 가며 함께 제주를 살아가자는 취지에서 만들었으며, 매월 1~2회 제주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로 하였다. ​ 어르신들 장수사진도 찍고, 마을 요양원 공연 봉사, 요리봉사, 보수정비 봉사 등 우리가 가진 다양한 재능을 나누고 있다. 또한 매년 몬딱나누미 단체전을 기획 전시하여 수익금은 소외된 이웃에게 전달하며, 2020년 1월 현재 약 40여 명의 재능나눔 봉사회원이 함께 하고 있다. 이미지 문화예술공간 몬딱 현재는 ‘동희동행’이라는 프로젝트로 집에서 사용 안하는 동전을 한 컵씩 모아 소외된 이웃에게 전달하는 나눔 봉사를 진행 중이다.

탐방취재 - 김민수 작가의 문화예술공간 몬딱을 찾아서

시즌-1 제주 감귤창고가 '문화예술공간몬딱'이 되다

김민수 작가의 문화예술공간 몬딱을 찾아서 시즌-1 제주 감귤창고가 ‘문화예술공간몬딱’이 되다 ​ 공공디자인저널편집부 정희정 편집인 ​ 귀한 것은 스스로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과연 그럴까? 그랬다! 김민수 그는 제주 흑우의 기운을 늘 믿고 있었다. 흑우의 눈은 그에게 말한다고 한다. ​ 관[官] 주도의 정책과 행정의 제도권 밖에서 결과를 이루어낸 민간전문가! 김민수 작가와 문화예술공간 몬딱! 문화예술공간 몬딱과 김민수 작가! 그의 제주살이 행보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지향하는 다양한 사업의 하드웨어[H/W]+소프트웨어[S/W]+휴먼웨어[HnW]의 전과정을 아우르는 실천적 선례이다!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 제주 감귤창고가 ‘문화예술공간몬딱’이 되다 제주를 찾아온 전업 작가의 꿈 ​ 2016년 12월 1일, 서귀포 이중섭창작스튜디오에 입주 작가 8기(1년)로 선정되어 제주에 왔다. 그동안 작업했던 제주 흑우의 울음소리에 운명적으로 이끌려 온 것 같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했다. ​ 그전까지만 해도 제주도는 나에게 여행지이거나 사진 작업 차 잠시 들르는 곳일 뿐이었다. 오래 머무를 수도 없고 이주는 더욱이나 경제적으로 허락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저 잠깐, 남들처럼 동경만 하다 마는 곳이었다. ​ 어느새 작업실 입주 8개월째로 접어들면서 내게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꿈꾸기 시작했다. 제주에 정착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 것이다. 그러자면 우선 다양한 예술 작업이 가능한 주거 공간이 필요했다. ​ 2017년 11월 31일로 1년간의 입주 계약 기간이 만료되는 ‘이중섭창작스튜디오’를 나와 제주에서 작업과 주거, 둘이 동시에 가능한 공간을 마련과 경제적 현실을 고려해 오래된 감귤 창고를 하나 구해보기로 했다. 사진 김민수작가/제주흑우 사진 김민수작가/제주흑우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하지만 창고 찾기는 너무나 순진한 꿈이었다. 제주의 많은 창고는 이미 다양하게 개발이 되어 있고, 지난 2~3년간 폭등한 제주의 부동산 가격은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문제가 되어 있었다. 사실 전업 작가를 선언한 지금, 제주에서의 자립도 문제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 우연히 제주 흑우 사진을 찍으면서 운명적으로 제주도에 발붙인 지금, 그동안 먼 날의 목표로 두었던 그림 작업에 매진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일반 주택보다는 넓은 작업 공간이 필요하다. 그림을 그리고, 제주 흑우 갤러리도 겸하면서, 그곳을 많은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키워나가기를 소망한다. ​ 제주 지인들이 종종 그랬다. “일부러 찾지 마세요. 귀하게 찾는 것은 언젠가는 스스로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과연 그럴까? 반신반의하며 6개월을 제주도에서 꿈만 그리고 있었다. 난 제주 흑우 사진을 찍으며 제주 흑우의 기운을 늘 믿고 있다. ​ 작업실에 걸려있는 흑우의 눈이 내게 말한다. ‘우보천리(牛步千里), 우직한 소걸음으로 천 리를 가라.’ 흑우의 기운이 미쳤음일까? ​ 어느 날 내가 바라는 그런 창고가 찾아왔다! 서귀포 안덕면 감산마을에서 감귤 창고로 사용하던 것인데,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제법 큰 창고이다. 일주도로와 근접하고 있으나 일대가 움푹이 낮게 자리 잡아 사람들 눈에는 금방 안 들어올 형세다.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총 대지는 350평에 창고는 70평으로 넓은 실내에다 천장도 높고, 외부 주차 공간도 넉넉하다. ​ 한때 감귤 창고로, 최근에는 건축자재 창고로 사용한 공간에는 잡다한 집기와 자재 따위가 남아 있다. 천장이 높고 내부가 넓어서 환기는 좋겠지만, 겨울 추위는 어떨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꿈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 2019년 12월 '문화예술공간몬딱' ​ 2019년 현재 감귤창고는 지속된 작업 속에 새롭게 업사이클링되어 이제는 문화예술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전업 작가의 개인 작업실이 아닌 모두가 함께하는 문화예술공간을 만들어 가는 게 또 하나의 나의 꿈이다. 하지만 전업 작가인 개인이 만들어가는 문화예술공간은 결코 쉽지 않았다. 지금부터 지난 2년간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문화예술공간몬딱’ 이름을 짓다 ​ 이름을 지었다. ‘몬딱’은 제주어로서 표준어 ‘몽땅’이라는 말과 같다. 서서히 제주어에 익숙해지면서 흔하게 듣는 이 단어가 궁금해서 제주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 하지만 표준말인 ‘몽땅’과는 같으면서도 다른 하나의 차이점이 있었다. ‘몽땅’은 대상이나 사물을 가리킬 때 쓰지만 ‘몬딱’은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을 때에도 사용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제주어로서 ‘여기 우리 몬딱 모였쪄!’ 이렇게 사용된다. 나는 이 공간이 나의 작업실을 떠나, 모두 함께하자는 의미에서 이 제주어를 바탕으로 ‘문화예술공간몬딱’으로 이름을 지었다. 그리고 ‘잇다_나누다_즐기다’의 슬로건으로 사람과 사람을 잇고, 지식과 재능을 나누고, 문화와 예술을 즐기다 라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고자 했다. ​ 창고에 ‘문화예술공간몬딱’ 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이제 이곳을 만들어 가야 한다. 70 평이나 되는 공간의 안팎에 전 임차인들이 남기고 간 쓸모없는 건축자재와 쓰레기 따위가 널브러져 있다. 결코 쉽지 않은 대 공사가 시작되었지만 문제들이 차츰차츰 해결되기 시작했다. ​ 제주에 홀로 온 나는 사람들과 관계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점차 사람들은 친구가 되고 형님이 되고, 동생이 되면서 전업 작가인 나를 여러모로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 경제적 여유가 없는 나에게 청소를 도와주고, 냉장고를 갖다주고, 사용하지 않는 장작 난로 및 필요한 물품들을 가져다주고, 때로는 중고물품을 구입하고 아이디어를 내면서 감귤창고를 업사이클링하여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이미지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창고 시멘트 바닥은 직접 에폭시 작업도 하고, 천장에 조명과 벽면에 갤러리 레일 작업을 하여 작품을 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제주살이하면서 생전 처음 해보는 작업이 많았다. 바닥 에폭시 작업도 결코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하여 우여곡절 속에 ‘문화예술공간 몬딱’은 2018년 시즌 1로 완성이 되었다. ​ 1월에는 던&에드워드 페인트 회사 대표가 지인의 소개로 몬딱을 방문하여 건물 지붕 및 내, 외벽에 페인트 도색작업을 선뜻 후원해 주기로 했다. 새해부터 너무나 큰 감사한 선물이었다. ​ 외벽은 감귤창고를 연상시키는 노란색으로, 실내는 갤러리이므로 흰색으로 도색하는 작업을 2개월에 걸쳐 마무리했다. 그렇게 색부터 단장된 ‘몬딱 시즌 2’가 시작되었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2018년 문화예술공간몬딱 - 시즌1

가나아트센터

볼륨과 면의 기하학적 단순미

글 사진 동양미래대학교 건축과 이정미 교수 ​ 볼륨과 면의 기하학적 단순미 장-미쉘 빌모트 Jean-Michel Wilmotte 이질 재료의 구성과 통합, 볼륨의 비례와 구성, 면의 막힘과 트임으로 구성된 기하학적 단순미가 돋보이는 외관 2000년대 이후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국내 활동이 늘어가고 있다. 2002년 프랑스 건축가 뱅상 코르뉘Vincent Cornu가 설계한 <대림미술관>을 시작으로, 2004년 마리오 보타Mario Botta, 장누벨Jean Nouvel, 렘 콜하스Rem Koolhaas가 설계한 <리움미술관>, 2005년 렘 콜하스의 <서울대학교미술관>, 2008년 도미니크 페로Dominique Perrault의 <이화캠퍼스복합단지>, 2012년 안도 다다오Ando Tadao의 <본태박물관>, 2013년 안도 다다오의 <뮤지엄산>, 2014년 자하 하디드Zaha Hadid의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2018년 데이비드 치퍼필드 David Chipperfield의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그리고 이화캠퍼스복합단지를 설계한 도미니크 페로의 설계 안으로 결정된 코엑스 건너편 한전부지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 개발까지, 미술관 등의 전시공간뿐 아니라 주택 및 기업 사옥을 비롯하여 대규모 도시개발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행보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이 지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부상되면서 국내 건축문화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카페 피아노 여기서는 단발성으로 그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국내에서 꾸준한 활동을 펼쳐온 프랑스 건축가이자 실내디자이너인 장-미쉘 빌모트Jean-Michel Wilmotte가 설계한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공간을 살펴보기로 한다. ​ 1983년에 국내 최초의 민간 화랑으로 문을 연 이호재 서울 옥션 회장의 ‘가나화랑’이 1988년 9월 평창동에 현재의 <가나아트센터>로 준공되었다. 이후 2018년 <가나아트한남>이 용산 사운즈 한남 복합문화공간에 개관하여 한남동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 가나아트센터는 연면적 850평, 지상 3층, 지하 2층 규모로 전시장 3개와 야외 공연장, 레스토랑과 세미나실로 구성된다. 제1전시장은 기념관 성격으로 작가의 작품을 상설전시하고 있으며, 제2, 3전시장은 기획전 위주로 운영된다. ​ 카페 피아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맞은편 붉은 벽돌 복층건물은 필자가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설계사무실이 있던 곳이다. 현재는 카페로 변했고 주변에는 군데군데 화랑과 카페들이 옛 모습과 다르게 군집해있다. ​ 88 올림픽 준비로 호텔과 백화점 설계가 한창이던 시기에 그곳에서 필자는 처음으로 롯데월드 쇼핑몰 설계에 합류하였다. 일본의 노무라 설계가 주관사였고 그 밑에서 수십 장의 손 도면을 그리며 일했던, 열정 하나로 순수했던 시절이 떠오른다. ​ 공간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길에 둘러본 평창동 주택가의 북악산 중턱에서 우연히 발견한 카페 ‘더 피아노’에서는 자연의 요소들이 실내로 끌어들인 신선한 바람으로, 폭포로, 암벽으로, 초록으로, 푸른 하늘로, 산 아래 원경으로, 그리고 내부를 구성하는 실내구조의 오브제화로 압권을 이루고 있었다. ​ 가나아트센터를 설계한 장-미쉘 빌모트는 도시건축뿐만 아니라 실내디자인, 가구, 조명디자인을 아우르는 총체적 디자이너로 알려져 있다. 백색 건축의 거장으로 불리는 미국 건축가 리차드 마이어Richard Meier는 그를 현대에 살고 있는 르네상스 인이라 부른다. 장르와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새로운 창의적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융합형 창작자라는 의미일 것이다. ​ 프랑스에서는 루브르 박물관 내부와 샹젤리제 거리의 도시 디자인 등을 작업한 다방면의 건축가이며, 국내에서는 <가나아트센터>를 비롯하여 그 아래 나란히 강한 대비를 이루며 자리한 <서울옥션하우스>, <인사아트센터>, 2014년 완공한 <대전예술가의 집> 등을 작업하였다. ​ 또한 인천국제공항의 실내디자인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2006년에는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초대학장으로 활동하며 한국과 프랑스의 건축 가교 역할을 하였다. 빌모트는 1948년 프랑스 북쪽 가장 오래된 도시중 하나에 해당하는 피카르디시 근교에서 태어나 에콜 카몽도 대학에서 실내건축을 전공하였다. ​ 미테랑 대통령 침실, 워싱턴의 프랑스 대사관 등을 디자인하면서 그의 디자인적 역량을 펼쳤으며 루브르 박물관의 실내디자인을 통해 유명해졌다. 1993년 건축학학위를 받으면서 방송국이나 오페라 극장, 시청사 등의 큰 규모 작업을 시작하여 이후 빌모트 & 어소시에이츠로 디자인 사무소를 꾸리면서 전세계를 무대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 프랑스 디자인은 아르데코의 전통과 도제의 전승 두 흐름을 지니는데, 아르데코 정신은 구상적인 형태에 기하학적 요소를 더해 직선을 강조하는 장식적 효과와 재료에 가치를 부여하여 장엄한 형태를 탈피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르데코의 새로운 기술과 기법을 거부하고 전통에 머무르려는 방어적 모습으로 인해 예술가와 디자이너가 중심이 되어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예술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 이후 프랑스에 전파된 유럽의 기능주의는 쇠퇴하나 점점 도시화 되고 대체 에너지에 대한 관심 고조로 디자인은 국제화되어 간다. 다품종 대량생산의 경향이 나타났고 아방가르드의 재활성화에 의해 조형예술의 부활과 수공예에 대한 가치가 재발견되어 실내디자인이 크게 대두되었다. ​ 빌모트는 고전 건축을 개수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과거와 현대를 접목하는 자신만의 디자인을 발전시키며 20세기 초 건축가 찰스 레니 매킨토시Charles Rennie Macki ntosh와 요제프 호프만Josef Hoffmann 그리고 카를로 스카르파Carlo Scarpa에게 영향을 받는다. ​ 스코틀랜드의 매킨토시는 가구부터 실내디자인을 비롯하여 건축에 이르는 전천후 디자이너 겸 건축가로 고전적인 축을 결합한 장식을 배제한 공간을 선보였다. 미술공예운동과 역사주의, 자연의 형태, 일본문화 등의 영향을 받아 기하학적인 아르누보의 특성을 지니는 공간에서 수평선을 강조하면서 장식 없는 담백한 공간과 단순한 디테일을 통해 새로운 비례 체계를 완성하였다. ​ 또한 수평과 수직을 통한 기하학적인 시스템으로 마감과 구조를 일하고 직선 요소와 곡선 요소의 대비로 상승작용을 취하는 작업을 하였다. ​ 사진 이정미 요제프 호프만은 비엔나 국립미술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이탈리아 여행을 계기로 자유롭고 새로운 형태를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매킨토시의 영향을 받은 건축가이기도 한 호프만은 윤곽선을 통해 세심하게 건축물을 장식하면서 육중한 매스 덩어리가 아닌 면으로 구성된 건축으로 인식되도록 디자인한다. ​ 기하학적인 구성과 축의 설정 그리고 단순미가 돋보이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이외에도 이탈리아 건축가 중 카를로 스카르파의 영향으로 디테일과 공간에 빛의 사용에 대한 영향을 받았다. 장-미쉘 빌모트는 이질 재료의 구성과 통합을 통해 접합부를 강조하는 장식적 디테일과 빛의 양을 풍부하게 받아 들여 부드럽게 확산시키는 모서리 창, 이중 파사드 등의 공간 조형 언어를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 빌모트는 건축의 모습이 실내공간을 결정짓는다고 말하는데, 이는 19세기 건축이념이 현대에도 이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와 현재의 교류를 영원한 주제로 여기며, 공간의 맥락성을 표현하려 하였기 때문에 기존의 흔적을 존중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가미해 나간다. 과거의 것과 현대의 것의 강렬한 대조를 통해 상반된 시간의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하였다. ​ 가나아트센터 사무동 외관의 수평의 목재는 시간의 흔적을 느끼게 하고 매끄러운 백색의 수평 외장재와 질감의 대비를 통해 건축물에 포인트를 주었다. 또한 서울옥션하우스의 청동재 마감과도 대비를 느끼게 하였다. ​ 북한산 자락 경사지에 위치한 가나아트센터는 석회석 계열의 환한 아이보리색이 칠해져 아침 햇빛을 받아 명암의 대조를 부드럽게 보이며 그 자태가 마치 직각 버전의 백자를 보는 듯 하다. ​ 오르막 진입 시에는 두 개의 벽면과 지붕을 메인 매스에서 떨어뜨리고 그 사이를 어둡게 유리로 처리하여 면들은 가볍게 움직이는 듯 하고 건축물 매스는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부각된다. ​ 반면 내리막 길에는 이중 외피로 인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느낌으로 흡사 벽면과 지붕 면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형상을 보인다. 그리드를 이루는 외벽 석회석 타일은 백색의 부정형 재료이며 겹겹이 층을 이루는 흰색 패널들이 빛과 움직임에 응답하며 역동적 구성을 만들어낸다. ​ 사진 이정미 석회석 계열 아이보리 외벽을 메인으로 수평의 어두운 목재 루버를 요소요소에 적용하고 금속과 유리를 재료로 하여 절묘하게 처리했다. 금속은 지붕 루버로, 창틀로, 계단실 오브제들로 나타난다. ​ 미술관 진입은 2차선 도로지만 차량 통행이 적어 보행로로 느껴질 정도로 한적한 메인 도로에서 목재로 된 계단식 기단을 거쳐 바로 들어가거나, 언덕 쪽으로 미술관을 지나 야외 공연장의 대형 계단을 내려와 뒷마당을 통과하여 진입할 수 있다. ​ 경사지에 위치한 지형의 특성을 살려 한국전통의 마당 같기도하고 서양의 오디토리엄과도 같은 야외 공연장이 미술관에 빛의 양을 풍부하게 하는 역할과 함께 완충 공간의 역할을 한다. 외부 공연장에서는 퍼포먼스 등의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조각들은 공연장 위쪽 실외에 배치되어 있다. 사진 이정미 후면 외부 벽면에는 계단의 구조를 표현한 디자인으로 빌모트의 건축 특성 중 하나인 계단을 통한 오브제화를 표현하고 있는 외부 계단이 있다. ​ 공간 구성은 중정을 중심으로 전시, 판매, 업무 공간으로 나누어 옥외 계단과 나란히 뻗어있는 브리지로 공간을 연결하고 분절하는 한편, 전면의 일부 벽과 특히 마당 쪽 벽을 모두 창문 벽으로 처리하여 각각의 내부 공간마다 자연의 빛을 은은하게 또는 가득 채우며 공간에 활기를 제공한다. ​ 또한 벽과 지붕에 적용한 다양한 비율의 목재와 금속 루버 그리고 창문의 프레임을 통해 수직 수평의 대비를 보여주고 있다. 후면으로 진입하면 뒷마당에서는 석탑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시대를 아우르는 조각품들이 있다. 사진 이정미 이 중에서 지용호의 ‘버팔로 돌연변이’가 강렬하게 시선을 끈다. ​ 후면 마당을 통한 진입은 내려다보며 공간을 관장하는 느낌이다. 넓고 밝은 곳에서 은은한 빛이 유입되는 실내로 진입하는 느낌이다. ​ 메인 전시를 보기 전 미술관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는 항상 즐겁다. 메인 도로 쪽 주출입구는 짧은 진입 유도 동선이지만, 계단을 올라 로비 진입을 유도하는 계단식 기단 위에 올라서면, 굵직한 집성목 목재바닥으로 된 넓지 않은 매개 공간이 발코니로 연결되며 금속루버로 된 떠 있는 지붕과 돌출된 매스가 만드는 지붕이 마치 전통한옥의 대문 앞에 서있는 느낌을 만든다. ​ 안내데스크가 있는 로비는 좌우가 창문벽인데 들어서면 맞은편 마당 쪽에서 비추는 아침의 빛이 로비에 스며들면서 그림자를 통해 공간에 시간성을 부여한다. 투명한 전면창 너머로 마당을 향해 공간은 확장된다. 가나아트센터는 아침에 방문하는 것을 권한다. ​ 아침의 서측 진입부 창에는 블라인드를 모두 내려 빛이 주는 극적 효과가 잘 구현되도록 하고 로비는 강한 직사광선이 만드는 창틀의 그림자가 공간에 활기를 불어 넣는다. 그 결과 백색 실내에 아주 다양한 톤의 변화가 나타나 부드럽고 감각적인 특질이 결합된 명료한 시야를 구축한다. ​ 제1전시실은 안내데스크 뒤로 몇 계단 아래에, 외부에서 보았을 때 뒤쪽 매스 부분에 위치한다. 전시장 내부는 비교적 낮고 아담한 규모다. 창문이 없지만 안쪽 깊숙한 곳에서 뒤돌아 보면 입구에서는 마당 쪽에서 들어오는 아침의 빛이 은은하게 투입되고 있다. 전시장 내부에 있는 계단을 통해 수직으로 위에 있는 2층의 제2전시장으로 연결된다. ​ 사진 이정미 방문했을 때는 세 개의 전시장 모두에서 한국 추상 초기 대표 작가 이응로 작가의 ‘군상’ 시리즈가 시대별로 전시되고 있었다. ​ “화가의 무기는 그림입니다. 예부터 예술가들은 권력자에 봉사하고, 권력의 노예가 되어 왔지요. 그러나 현대의 진정한 예술가라면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굳게 지키며 민중들 편에 서야 합니다.” ​ “나는 그림의 제목을 모두 ‘평화’라고 붙이고 싶다. 서로 손잡고 같은 율동으로 공생공존을 말하는 그림 아닌가, 그런 민중의 삶이 곧 평화라 본다. 이 사람들이 바로 민중의 소리이고 마음인 것이다.” ​ 라고 말하는 이응로 화가의 말처럼 예술이 민중들 편이 되고, 민중들이 함께 공생공존하는 평화를 기원해 본다. 사진 이정미 동백림 사건으로 옥중에서 밥알을 매일 조금씩 모아서 헌 신문지에 개어서 조각품을 만들었던 군상 시리즈의 모티베이션이 된 옥중조각 두 점이 함께 전시되고 있었다. ​ 제1, 2, 3전시장은 각각 1층에 제1전시장, 그리고 제1전시장 내부계단을 통해 2층에 오르면 제2전시장이 있고, 로비홀 상단으로 직교하는 외부의 계단과 수평을 이루는 브리지를 통해 제3전시장으로 연결되는 구성이다. 브리지 공간은 제3전시실로 들어가는 전실 역할을 하며 엘리베이터나 계단이 아래층과 레스토랑과 전시실을 3층으로 연결한다. ​ 공간은 압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경사지 지형의 특성을 이용한다. 제1전시실은 로비로부터 몇 계단 내려가 있고, 수직으로 위에 있는 제2전시장을 나서면 길고 환한 브리지로 된 갤러리 공간이 펼쳐지며 이 공간의 양측에서 자연광이 들어온다. 사진 이정미 이어지는 제3전시장은 입구 좌측에 있는 엘리베이터실 매스 하나가 공간에 강력한 역할을 하게 된다. 암실처럼 차분한 장방형 우측 전시실 벽을 따라 작품을 감상하며 진행하다 보면 검은색 패널 하나가 서 있다. 그 뒤 넘어에서는 은은하게 좌측에서 빛이 번져 들어온다. ​ 제3전시장의 막다른 곳에서 좌측으로 꺾어지면 공연 마당이 보이는 광경을 틀짖는 창문벽이 있다. 그 창을 통해 자연의 빛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것이다. 엘리베이터실 공간과 사이에 난 이 창문벽을 통해서 외부 계단실에서 사무동으로 연결되는 복도 공간을 너머 창문벽과 복도의 갤러리 천장으로 걸러진 빛이 복도에서 들어온다. ​ 그 뒤에는 마당과 대형계단 그리고 전통적 수목인 소나무가 식재되어 동양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또한 깊이 들어온 이곳 실내에서는 대형계단과 소나무가 시야를 막아주기 때문에 하늘이 보일 때의 눈부심은 줄어든다. 사진 이정미 이응노 화가의 말년작에는 색이 사라지고 춤추는 듯한 군상들만이 점점 더 늘어난다. 전시장 실내를 이루는 색상은 제2전시장에서 보이던 갈색마저도 사라지고 흙색과 백색으로만 정리되어 있다. 거기에 자연의 빛만이 시시각각 변하며 다양성을 드러내고 있다. 다시 돌아 나온 갤러리홀에는 3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이 흰색으로 이어진다. ​ 난간 패널, 강철기둥의 I빔 등은 서양의 클래식한 디테일로 정교함을 보여주며 금속의 오브제처럼 가구식으로 짜여져 직선으로 자리한다. 3층 또한 외부의 계단과 수직을 이루는 브리지를 통해 연결된다. 3층에는 브리지를 중심으로 대칭을 이루는 오픈된 실내공간과 외부 데크가 정면과 좌측, 양쪽에 배치되어 있고 브리지 공간 양쪽의 창을 통해 공간은 외부로 확장되며 도시로 확장 된다. ​ 자연광으로 환하게 밝혀져 있다. 양측의 데크 모두 높은 지형에 위치한 미술관의 특성으로 인해 평창동 일대의 아름다운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이 데크들이 주는 광경을 놓치지 말길 바란다. ​ 사진 이정미 74년생 젊은 조각가 이환권의 ‘늘어진 소녀상’이 깜짝 놀라게 한다. ​ 소녀상도 깜짝 놀란 표정을 하고 있다. 위트있는 즐거운 경험이랄까. 3층 발코니를 나가면 평창동 전경을 틀짖는 발코니 난간과 내밀어진 지붕이 그늘을 제공하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 1층에는 미슐랭 가이드에 오른 한국 전통음식점이 있다. ​ 이 음식점에는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을 예찬하는 이왈종 화가의 작품이 함께하고 있다. 일상에 쫓기는 삶이지만 언젠가 휴일 아침 일찍 미술관을 찾아 작품들과 함께 한적한 여유를 즐기는 기회가 있기를 기원해 본다. 사무동 화장실에 있는 착시효과를 이용한 독특한 간접조명 창은 재미를 더해준다.

한국의 크리스마스 씰

대한결핵협회, 크리스마스 씰의 역사

자료제공 대한결핵협회 기획취재 공공디자인저널 인턴기자 정가람솔 ​ ​ 어린시절 성탄종소리가 울릴 때쯤이면 학교에서 샀던 알록달록 크리스마스 씰과 우체국에 달려가 크리스마스 씰시리즈와 씰첩을 사던 일이 떠오른다. 결핵 퇴치기금을 모으기 위해 크리스마스 전후에 발행하는 크리스마스 씰의 기원을 찾아 본다. 척박한 한국의 의료환경을 바꾼 푸른 눈의 의료선교사 셔우드 홀(Sherwood Hall) ​ 100여 년 전 누구 하나 눈길 주지 않던 동방의 작은 나라에 찾아와 열악한 의료환경 개선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던진 푸른 눈의 선교사들에게 당시 우리나라가 해줄 수 있었던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 그들은 기본적인 인격체 취급받지도 못하던 당시의 여성들을 위해 힘썼고 폐결핵을 악귀에게 받는 벌이라 생각하던 무지한 한국인을 위해 힘썼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힘썼던 것처럼 그들의 노력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도록, 겹겹이 쌓이는 역사의 층속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그들을 기억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 덴마크 코펜하겐의 작은 마을 우체국장이었던 아이날 홀벨은 결핵으로 목숨을 잃어가는 아이들을 도울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연말이면 홍수처럼 쏟아지는 우편물에 붙여 기금을 모으는 씰(seal)에 착안하였고, 1904년 국왕의 허락을 받아 세계 최초의 크리 스마스 씰을 발행했습니다. ​ 그 후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크리스마스 씰 모금 운동은 전 세계적인 결핵퇴치 운동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 우리나라에서는 1932년 캐나다인 선교사 셔우드 홀에 의해 최초의 씰이 발행되었고, 1953년 대한 결핵협회의 창립과 함께 결핵퇴치 기금을 모으는 모금 운동으로 정착되었습니다. ​ 대한결핵협회는 매년 10월부터 2월까지 5개월간 크리스마스 씰 집중 모금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인 성금은 결핵퇴치사업을 위해 협회가 수행하는 각종 사업에 투입되어 소중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 특히 노숙인 결핵지원사업, 학생 행복나눔지원사업, 결핵시설 지원사업 등 결핵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결핵치료 및 생활지원을 위해 값지게 사용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결핵을 퇴치하기 위한 각종 홍보 사업, 결핵조기발견을 위한 검진사업, 결핵균 검사 및 연구사업 등의 주요 재원이 됩니다. ​ 지난 해 메르스 사태를 통해 우리는 값진 경험을 얻었습니다. 전염병 관리의 중요성과 위기 상황 대처의 중요성을 보았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있어왔던 질병이기 때문에 사회적 관심에 서 멀어진 결핵, 지금이 위기라는 마음으로 철저하게 관리하고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 결핵으로부터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대한결핵 협회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 대한결핵협회장 경만호 크리스마스 씰의 유래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 세계 최초의 씰 발행자 아이날 홀벨 산업혁명 이후 결핵이 전 유럽에 만연했던 19세기 말, 덴마크도 예외가 아니었다. 천성이 착하고 어린이를 좋아했던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우체국 직원 아이날홀벨(Einar Hollbelle)은 당시 많은 어린이들이 결핵으로 죽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 그러던 중 연말에 쌓이는 크리스마스 우편물과 소포를 정리하면서 동전 한 닢짜리‘씰’을 우편물에 붙여 보내도록 한다면 판매되는 동전을 모아 많은 결핵기금을 마련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 국왕인 ‘크리스찬 9세’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마침내 1904년 12월 10일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게 되었다. 그의 소박한 발상이 많은 덴마크인들의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냄으로 써, 크리스마스 씰 운동은 빛을 발하게 되었다. 1953년 ​ 한국전쟁으로 결핵이 급격히 만연하자 1953년 11월 6일 뜻있는 선각자들에 의해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었다. 창립과 함께 대한결핵협회에서는 그 해 12월 보건부의 승인을 얻어 첫 씰을 발행 하였다. 소재는 색동저고리를 입은 소녀로, 우표 도안가였던 강춘환 씨가 도안했다. ​ 색동저고리는 설빔으로 새해를 축하하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의 남존여비, 남아선호 사상을 매우 싫어했던 셔우드 홀의 뜻에 따라 문창모 박사가 적극 추천하여 이 도안이 채택되었다고 한다. ​ 씰 전지 구성은 특이하게 18×10(180매)이며, 유럽과 미주지역에서 실시하여 성과를 거두고 있던 우편모금 방법을 채택하여 학교와 교회를 중심으로 보건소, 의원, 단체 등에 크리스마스 씰 모금 취지문과 함께 발송하였는데 국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씰이 전혀 인식되지 않은 상태여서 상당수가 봉투를 개봉도 하지 않은 채 반송되었다. ​ ​ ​ 미국의 크리스마스 씰 운동 미국에서 최초로 씰을 발행한 에밀리 비셀 덴마크에서 발행된 크리스마스 씰이 붙은 편지가 대서양을 넘어 미국 신대륙으로 건너갔다. 덴마크계 미국인 작가 자콥 리이스(Jacob Riis)는 고향에서 보내온 편지에 크리스마스 씰이 붙여진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그는 누구보다도 결핵의 비극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형제 중 6명이 결핵으로 죽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핵 기금 마련을 위해 씰 운동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던 활동적이고 인정이 많은 델라웨어(Delaware) 의 에밀리 비셀(Emily bissel)과 함께 결핵환자를 입원 치료하던 한 병원의 운영비를 마련하고자 씰 모금운동에 나서기로 결심하였다. 씰 도안은 자신이 하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1907년 윌밍톤(Wilmington) 우체국에서부터 씰 판매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씰 운동에 대한 호응도가 낮아 잘 판매되지 않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의 신문사를 찾아가 간곡히 설명하였고 열의에 찬 그녀의 의지에 감동한 편집장은 마침내 크리스마스 씰에 관한 이야기를 기사화하였다. 지역사회 언론의 역할로 메시지가 전달되면서 미국의 대 통령, 대법원장, 국회의장이 모두 씰 모금에 앞장섰으며 시민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씰 운동의 확산 ​ 1904년 발행된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 덴마크와 미국으로 크리스마스 씰 운동이 성공적으로 추진되자 곧 스웨덴, 독일 및 노르웨이 등 주변국이 뒤따르고 1915년엔 루마니아에까지 전파되었다. 동양권에서는 1910년 필리핀에서 처음으로 씰이 발행되었으며 이어 일본에서는 1925년 12월에 자연요 양사(自然療養社)라는 민간 잡지사가 처음으로 씰을 발행하였고 1926년부터 결핵예방회에서 본격적으로 씰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 세계 여러 곳에서 씰 운동이 성공을 거두자 1925년 이후로는 프랑스, 벨기에, 폴란드, 이태리 등 유럽국가와 칠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중남미국가 및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등 중동지역으로 확산되었고 많은 나라에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함으 로써 사랑과 나눔의 실천운동은 세계로 퍼져나갔다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 운동 셔우드 홀 박사 우리나라에서는 1932년 12월 일제 치하에서 캐나다의 선교의사인 셔우드 홀(Sherwood Hall)이 처음으로 씰 운동을 시작하였다. 셔우드 홀은 감리교 부부 선교의사 윌리엄 제임스 홀 (William James Hall)과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사이에서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가난한 결핵환자들과 일반 서민들을 돌보고 깨우치려는 숭고한 사명감으로 캐나다에서 의학공부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1926년부터 해주구세병원에서 일하다가 1928년 해주구세요양원을 설립하였다. 문창모 박사 셔우드 홀은 1932년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면서 발행동기를 “첫째, 한국사람들에게 결핵을 올바르게 인식시키고, 둘째, 만인을 항결핵 운동에 참여시키는 것, 즉 씰 값을 싸게 하여 부자 나 가난한 사람이 모두 사도록 하고, 셋째는 재정적 뒷받침을 필요로 하는 결핵퇴치사업의 기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라고 회상하였다. 당시 셔우드 홀과 함께 일하던 문창모 박사와 크리스마스 씰 위원회 집행위원이던 김병서 선생도 씰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32년 이후 1940년까지 9차례에 걸쳐 씰이 발행되었지만 태평양전쟁 발발 직전 셔우드 홀이 스파이의 누명을 쓰고 일본 헌병대에 의하여 강제로 추방, 정든 한국 땅을 떠나게 됨으로써 씰 발행도 중단되었다. 그의 헌신적인 노 력에도 불구하고 씰에 대한 당시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 당시 씰 운동이 얼마나 어려웠던가에 대한 한 가지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있다. ​ 결핵을 앓던 어떤 여인이 씰을 가슴에 붙이고 셔우드 홀을 찾아와 “선생님, 저는 씰을 이렇게 가슴에 붙였는데도 낫지 않습니다”라고 호소하였던 이야기는 씰 초창기의 일화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 셔우드 홀은 1991년 4월 5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98세로 타계하였으며, 유언에 따라 부모가 묻혀 있는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해 9월 19일 부인 메리안홀(Marian Hall)도 같은 장소에 안장되었다. ​ ​ 8.15 이후의 크리스마스 씰 운동 김병서 선생 8·15 해방 후에는 1949년 과거 해주에서 셔우드 홀을 도왔던 문창모 박사가 주도하여 한국복십자회에서 씰을 발행하였고 1952년에 한국기독의사회에서 씰을 발행하였으나 크리스마스 씰 운동이 범국민적인 성금 운동으로 착수된 것은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면서부터였다. 그 후 대한결핵협회는 매년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였으며, 이승만 초대 대통령 때부터 매년 대통령을 비롯한 삼부요인은 물론 각계각층 인사와 학생 등 온 국민이 씰 모금운동에 기꺼이 참여함으로써 점차 결핵퇴치기금 모금운동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초창기에는 미8군 장병도 씰 운동에 동참하였다. 이와 같이 사회적인 씰의 인식도가 제고되면서 크리스마스 씰 이외에 1963 년에는 극장모금이, 1964년에는 고궁 입장료 첨가모금이 시행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고궁모금은 1971년, 극장모금은 1973년에 각각 중단되었다. 남해바다의 신비 1995년 씰 20종 1974년에는 행정개혁위원회의 건의로 크리스마스 씰 모금 허가 액수가 대폭 감액되고, 대신 체신부 주관으로 우표 첨가모금이 실시되었으나 한 번으로 끝났다. ​ 1980년부터 씰 모금허가액이 다시 증가되면서 이에 따른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씰 운동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게 되었다. 임금님 행차하셨네 2000년 씰 20종 1983년 대한결핵협회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크리스마스 씰첩’을 발행하여 비매품으로 공급하는 한편 씰 수집에 열의를 가졌던 분들을 위해서 씰 수집 경진대회도 개최하였다. ​ 1984년에는 우리나라 우표 100주년을 맞아 체신부가 10월 22일부터 10월 31 일까지 개최하는 국제 우표전시회에서도 과년도 씰을 일반에게 판매하여 씰 수집가의 수입열에 부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 1988년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11월 3일부터 11월 8일까지 세계 크리스마스 씰 전시회를 개최하였으며 과년도 씰을 수집가에게 판매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한국 조폐공사에서는 화폐박물관 개관 때 크리스마스 씰 상설 전시대를 마련하여 한국 씰 역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과 우주과학기술 2008년 씰 뽀로로 친구들이 함께하는 겨울 스포츠 2011년 씰 ​ 1989년에는 크리스마스 씰 모금의 주 대상인 학생들이 친근하게 부를 수 있도록 크리스마스 씰의 노래를 시인 구상 씨가 작사하고 길옥윤 씨가 작곡하여 1993년 창립 40주년 기념행사장에서 조선일보 소년소녀 합창단이 노래를 불러 갈채를 받기도 하였다. 1990년에는 지난해에 발행된 세계의 크리스마스 씰 영문판을 발간하여 IUATLD(국제항결핵 및 폐질환연맹) 회원국에 배포하였으며 일부는 IUATLD에 기금 확보를 위하여 기증하였다. ​ 1993년에는「한국의 크리스마스 씰」도감을 발행하여 국내외 수집가 들의 수집욕구와 씰 수집에 대한 관심을 높였으며, 1999년에는 그동안 누락된 자료와 새로운 씰들을 보완하여 2판을 발행하였다. 또한 2003년에는 창립 50주년을 맞아「한국의 크리스마스 씰」3판을 발행 하였으며, 2010년에는 씰 도감을 구하고자 하는 수집가들의 요청이 이어져 네 번째로「한국의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게 되었다. ​ 매년 IUATLD 연차회의 때 실시하는 크리스마스 씰 콘테스트에서 우리나라는 1988년, 1989년, 1990년, 1992년, 1993년, 1995년, 1996년 총 7회에 걸쳐 1위 입상을 하였고, 1987년과 2000년도에는 2위 입상, 1985년도에는 3위에 입상하여 다른 회원국들로부터 한국은 씰 콘테스트에 참가하지 말라는 권유를 받을 정도로 디자인과 인쇄기술의 우수성을 보여주었다. 출처 발행인 회장 : 경 만 호 발행일 : 2016. 3. 발행처 : 대한결핵협회 주소 : 서울시 서초구 바우뫼로 6길 57 전화 : 02-2633-9461 홈페이지 : www.knta.or.kr / loveseal.knta.or.kr SNS 페이스북 - facebook.com/kntapr 블로그 - blog.naver.com/knta_pr 이 책은 협회 역사 자료를 비롯해 여러 씰 수집가 분들의 원고, 자료들을 참조하여 제작되었습니다. 도움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장욱진 미술관

양주에서 감상하는 자연과 건축과 예술의 만남. 동심과 풍류,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는 시간

글 사진 동양미래대학교 건축과 이정미 교수 양주에서 감상하는 자연과 건축과 예술의 만남 동심과 풍류,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는 시간 -최-페레이라 Chae-Pereira Architects 2014년 탄생 100주년을 맞은 고독의 화가이자 자연과 가족을 주제로 작품을 그렸던 소년 같은 감성으로 살아간 화가 장욱진의 미술관을 다녀왔다. 나들이 하기에 좋은 계절이니 계곡의 정취를 느끼며 산바람과 함께 장욱진 화가의 소탈한 서정을 즐기는 호사를 누려보자. 경기도 양주로 떠난다. 화가 장욱진은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과 함께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2세대 서양화가다. 1917년 말띠 해 겨울, 충남 연기에서 태어나 1990년 겨울, 용인 마북리에서 74세로 생을 마감한 자연 같은 화가다. 그는 유영국 등과 함께 ‘신사실파’를 결성하고 ‘사실을 새롭게 보자’라는 주제 의식을 가지고 사물에 내재되어 있는 근원적, 정신적 본질을 추구하여 단순하면서도 대담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나는 심플하다.”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평생 자연 속에서 심플한 삶을 살면서 그림을 통해 동화적이고 이상적인 내면을 표현하였다. 양정고등학교와 무사시노 미술대학 서양학과를 졸업한 후 국립박물관 학예과에 근무하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재직한 뒤 사직 후 작품 활동에 전념하였다. 그의 작품 세계는 작업실이 있던 곳을 기준으로 초기와 덕소 시기, 명륜동 시기, 수안보 시기, 용인 시기로 나뉜다. 장욱진은 4형제 중 차남으로 대지주의 손자로 충남 연기군에서 출생하여 6세 때 서울로 이사하였다. 중학교에서 미술부 활동을 시작하였지만, 고등학교 시절에는 일본인 역사 교사의 공정치 못한 처사에 항의하다 퇴학을 당하기도 하였다. ​ 풍류가와 같은 면모는 이 시기, 즉 편입 전까지 학교의 틀에서 벗어나 생활한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체육특기생으로 편입한 양정고 시절에는 전국학생미전에서 ‘공기놀이’로 최고상을 받았다. 이때 상금 100원을 받아 고모에게 비단 옷감을 선물해 이후로는 가족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 ‘공기놀이’는 서울에서 함께 기거하던 화가 가족의 하인들을 그린 것이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구성은 화가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인 평면화하고 추상화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는데, 이후의 작품들에서도 이 구성 방법을 계속 사용하게 된다. 공기놀이, 1937 23세에 유학을 시작하여 이듬해 세 살 아래의 이순경 여사와 결혼하였다. 미대를 졸업하고 국립중앙박물관에 근무하면서 ‘신사실파’를 결성하였고, 1949년 33세때 ‘신사실파 동인전’에 유화를 출품하며 작가로서 최초의 전시회를 갖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6.25 시기에는 부산 용두동으로 피난하여 비극의 상황을 술에 의지하며 폭주를 시작하였다. 이 시기 작품에는 ‘자화상’이 있다. 서울대학교 교수직 이후에는 ‘2.9 동인회’를 조직하여 동인전에 ‘야조도’와 ‘산수’ 등 을 출품 전시하였다. 63년 47세의 장욱진은 가족을 뒤로 하고 남양주시 삼폐동에 슬라브 양옥을 짓고 혼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덕소 시기라 하며, 이 시기 48세에 ‘장욱진 개인전’을 열었다. 54세 정초에 명륜동 집에 머물던 중 불공을 드리는 부인의 모습에 감명받아 바로 덕소에 돌아가 일주일 간 식음을 전폐하며 아내의 첫 번째 초상화를 그리게 되는데, 이 그림의 제목이 아내의 법명을 딴 ‘진진묘’다. 진진묘는 불교를 소재로 한 최초의 작품이자 직접 제목을 붙인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다. 이 작품에 몰두한 뒤 두세 달을 앓아 작가를 염려한 아내가 작품을 판매하자 자신의 대표작이라 생각해 아까워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 작품은 30여 년간 한 명의 소장가에 의해 소장되다가 2014년 6억 2,500만 원에 경매되었다. ​ 진진묘, 1970 부인이 주말에는 버스를 타고 작업실인 덕소를 자녀들과 함께 방문했는데, 화가는 안주도 없이 술을 마시기 시작하여 끝없이 마시는 폭주 습관을 갖고 있어 가족들이 힘들어 했다고 한다. 경운박물관 관장인 장녀 장경수는 그토록 술에 집착했던 것은 친구가 없고 제자 몇 명을 빼고는 가족뿐인 화가의 삶의 테두리가 지극히 좁았던 성품에서 온 것 같다고 했다. 폭주 후 화가의 뒷모습이 고독하고 슬퍼보였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하니 술을 친구로 여겨 작품을 통해 근원적인 것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장녀와는 ‘서로 간이 잘 맞는다’ 라고 하며 소통하며 아꼈고, 이러한 성품의 영향으로 작품 주제 또한 가족이나 집, 나무, 새 등으로 그림에서는 단순하면서도 따뜻함이 베어 나온다. 딸은 결국 예술에 매진하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보답했다. 개발 바람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용인 시기 집을 등록문화재로 지정받아서 보존하여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장욱진 재단과 미술관을 설립해 작가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게 된 것이다. 장욱진 미술관이 양주군에 위치하게 된 것도 덕소 시기 12년의 인연에서라 하겠다. 유족들이 양주시에 작품을 기증하고 <양주시립 장욱진 미술관>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 용인 시기의 장욱진 고택, 조선시대 59세되는 1975년, 덕소 생활을 청산하고 명륜동으로 옮겨와 양옥 옆에 한옥을 사서 화실을 꾸몄는데, 서양식 교육을 받았으나 향토색이 느껴지는 화풍에서 보이듯 집도 한옥과 양옥이 언제나 같이 있었다고 한다. ​ 집 짓는 것을 좋아해 명륜동에도 양옥과 한옥이 있었고, 덕소에도 슬라브 건물 옆에 나중에 아내를 위해 한 칸짜리 한옥을 지었다. 명륜동 시기에는 기고하던 글들을 모아 산문집 ‘강가의 아틀리에’를 발간하기도 하였고, 1979년에는 ‘장욱진 화집 발간전’을 열었으며, 그 해 겨울 수안보 온천 동네 뒤 탑동 마을에 농가를 구입하였다. ​ 1980년 64세 봄, 수안보 온천 농가를 화실로 리뉴얼하여 부인과 함께 생활하면서 수안보 시기를 시작한다. 이때 먹그림을 애칭 판화로 옮긴 그림전과 판화전을개인전으로 개최하였다. ​ 1985년 여름, 다시 서울로 이주한 후 1986년 70세에 유화와 먹그림 개인전을 열었다. 그 해 봄, 자녀들이 가까이 있기를 희망하여 용인의 마북리에 낡은 한옥을 구입하여 리뉴얼하여 지내던 중 그해 가을 중앙일보가 제정한 예술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용인의 ‘장욱진 고택’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ㅁ자형 한옥과 정자, 그리고 나중에 장욱진이 설계해 지은 양옥 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 1987년 개인전을 마친 후 1989년 73세에 마북리 한옥 옆에 양옥을 지어 입주하면서 용인 시기 거주가 시작되었고, 그 해 가을에는 뉴저지 주 ‘버겐 예술 과학박물관’이 개최한 한국유화전에 유화 8점을 출품한다. ​ 이듬 해인 1990년 12월 27일 오후 4시, 향년 74세로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작가의 생애를 살피다 보니 대한민국의 근대를 살아낸 느낌이다. 유학, 전쟁, 교수, 화가로서의 치열했을 1인 주거의 삶이 생생하다. ​ <장욱진 미술관> 건축에 대해 알아보자. 양주시 장흥면에 위치하고 지명설계공모를 통해 내노라하는 건축가들 사이에서 최-페레이라 건축사무소의 설계안이 당선되었다. ​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건축물로, 중정과 각각의 방들로 구성된, 집이 확장된 듯한 아담해 보이는 백색의 미술관이다. 크고 작은 각각의 방들로 계획된 점은 화가의 작품들이 비교적 작은 사이즈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그러나 미술관 전체 실제 면적은 그리 작지만은 않다. ​ 대지 6,204제곱미터로 1,900평, 건축면적 671제곱미터, 연면적1,852제곱미터 규모이다. 2014년 4월 개관하여 2015년 김수근 건축상을 수상한 건축물로, 4월이라는 개관 시기와 자연을 좋아했던 화가에 걸맞게 개관전에는 청보릿길이 전시관 내부에 길게 조성되어 있었다. ​ <장욱진 미술관> 을 설계한 최-페레이라Chae-Pereira Architects 건축사무소는 건축가 최성희와 로랑 페레이라Raurent Pereira 두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다. 2005년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계획으로 알려졌던 서울공연예술센터를 위한 국제아이디어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최-페레이라 건축사무소는 시작되었다. ​ 이후 다수의 건축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고 있는 건축가들이다. 최성희는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실내디자인과와 파리 라빌레뜨 건축대학을 졸업한 프랑스 건축사이다. 로랑 페레이라는 벨기에 브뤼셀 출생으로 생 뤽 건축대학을 졸업하고 <리움미술관>을 공동설계했던 빛의 건축가로 알려진 세계적 건축가 장누벨 사무소에서 실무를 하였다. 한양대, 숭실대, 고려대 건축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한 바 있다. 사진 이정미 건물 외관의 첫인상은 장욱진 화가의 그림 안에서 포근하고 아늑하게 느껴지던 집이 현대화되어 나타난 듯하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소박하고 친근한 느낌의 내외부는 모두 백색으로 마감되었다. 2층 높이 스케일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삼각지붕의 각도가 완만하고 낮기 때문에 친근감과 소박함으로 다가온다. 반면 내부 공간의 형태와 크기는 다양한 각도와 폭과 높이로 연결되는 구성으로, 각각 다른 크기로 설정된 방의 모서리에서 열림과 닫힘의 방법을 통해 내부 공간에서 보는 시각적 관통과 신비스러운 빛을 연출시켜 형태와 규모의 다양성을 느끼게 한다. ​ <장욱진 미술관>의 대지는 산과 강이 있는 위치에서 북측 능선 끝자락에 깊게 자리하여 남서측으로는 공릉천 계류가 합해져 흐르고, 그 천 남측에는 야외 조각공원이 위치하고 있다. ​ 미술관 진입은 몇 가지 장치들로 드라마틱한 효과를 만들고 있는데, 경사지의 특성에서 온 주차장 경계를 이루는 노출 콘크리트 흙막이 벽과 넓게 비운 잔디정원, 그리고 직선으로 뻗은 길이 그것이다. 미술관이 부지 전체에서 안으로 깊게 자리하고 경사지 위에 있기 때문에 주차장 경계벽을 콘크리트 흙막이 벽으로 높게 세워서 단차를 두고 시선을 우선 한번 차단하는 형식을 취했다. ​ 관람객은 낮은 곳에서부터 우측의 콘크리트 흙막이벽을 끼고 돌아 완만한 경사로를 빠르게 걸어 직선로로 접어들게 되는데, 건물은 넓게 비운 잔디정원 너머 멀리에 서 있는 상태로 나타난다. ​ 직선으로 곧게 뻗은 보도 우측에 넓게 비워 둔 잔디정원은 허공에 서 있는 느낌을 갖게 한다. 직선으로 쭉 뻗은채 살짝 우측으로 자리하고 서 있는 미술관을 향해 평평한 잔디정원을 가로지르는 직선의 진입로는 미술관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로 연결되는 전이 공간이 된다. 진입로는 정면을 향하지만 시선은 잔디광장 너머 우측 미술관 쪽을 향하고 있다. 장욱진 미술관에는 전이 공간이 매표소 다음 또 한번 나타난다. 사진 이정미 건물 진입은 평지에 난 긴 직선로를 걷다 보면 우측부터 건물 한 채가 마치 초가처럼 서 있고, 그 왼쪽에 실루엣으로 또 한 채가 보이는 형식으로 마치 화가의 삶에서 양옥과 한옥 거주가 공존했던 것처럼 살아온 다양한 거주를 은유하는 듯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마치 장욱진 그림에서 보이는 길을 걸어 가는 느낌이기도 한데, 비워진 평지에 조성된 잔디정원이 허공을 횡단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으로 보인다. ​ 건물이 아담하게 느껴져 화가의 작업실에라도 방문하는 듯한 느낌이다. 일반적인 미술관에서 보여주는 무게감과 중압감으로 인한 접근의 부담감을 덜기 위해 건물은 밝고 경쾌한 이미지의 흰색 폴리카보네이트를 외장재로 사용하고 있다. ​ 흰색의 현대화된 초가집처럼 보이는 미술관은 녹색의 신록과 조화로운 대조를 이룬다. 미술관을 흡족히 즐긴 뒤 걸어나오는 길에 뒤돌아 보면 장욱진의 그림이 바로 거기에 한 점 있는 듯하다. 사진 이정미 사진 이정미 ' 사진 이정미 미술관 전체는 두 줄기 공간이 다양한 각도와 폭과 높이로 겹치는 구성을 이루면서 마당과 중정을 형성하고, 방과 관람객의 움직임을 개념으로 각각 다른 크기로 설정된 방을 마주하는 방향을 달리해 배치하고, 이들을 이어주는 동선을 확장해 전시 공간을 형성했다. ​ 자연을 향해 제각기 뻗어나간 동선의 끝을 창으로 처리해 풍경을 건물로 끌어들이고 있다. 각각의 모서리에서 열림과 닫힘의 방법을 통해 내부 공간에서 보는 시각적 관통과 신비스러운 빛을 연출시켜 형태와 규모의 다양성을 느끼게 한다. 사진 이정미 사진 이정미 주출입구는 진입로에서 보이던 건물로 진입하고, 들어가는 입구 맞은편에 넓은 벽창문이 있다. 창문 밖으로 마당이 배치되어 아담한 규모의 홀을 외부로 확장시키며 자연의 빛이 환하게 유입된다. ​ 주출입구를 통해 실내로 들어서면 매표소와 카페, 숍이 있는 별개의 공간이 있다. 각기 다른 방을 연결하는 콘셉트의 건축물인만큼 공간들은 출입문들을 통해 띠처럼 연결된다. ​ 매표소 공간 또한 일반적인 미술관 규모에서 보이는 모뉴멘탈한 스케일의 공간과는 거리가 먼 아담한 부정형의 다각형 공간이다. 작은 카페 같은 규모이지만 반투명 폴리카보네이트 패널의 은은한 수직패턴과 백색도장 공간에 목재가구로 이루어진 공간은 심플하고 다채롭다. 전시 공간으로의 여정은 매표소에서 폭이 좁아지는 방향에 난 문을 통과한 다음 나타나는좌우가 벽창으로 된 통로와도 같은 전이 공간을 지나면서 이어진다. 이 통로 공간은 공간폭은 동일한 가운데 진입부 벽과 맞은편 벽 그리고 천장면이 이루는 각도가 독특하게 구성되어 있다. ​ 통로 공간과도 같은 이 매개 공간은 매표소 쪽에서 문을 열고 들어서면 관람객을 중심으로 실제적으로 정면벽이 벽창으로 구성된 상태로 외부를 보여준다. 관람객을 기준으로 거의 평각에 가까운 좌우벽 그리고 정면의 개방된 유리벽과 맞닥뜨리게 된 가운데 전진을 위해 좌측으로 방향을 진행하면 막상 좌우가 전면창으로 된 벽이 되는 것이다. 뒤 돌아보면 우측 모서리가 저 멀리 멀어져 있는 독특함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 경사진 천장과 예각의 맞은편 투명한 창으로 된 벽 내부 공간은 좌측과 우측이 외부로 확장된다. 우측 유리벽 멀리 산까지 경치가 펼쳐지고, 좌측 벽면 또한 투명한 유리벽으로 개방되어 마당을 너머 낮아지는 자연경관이 저 멀리까지 드러난다.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사라지고 앞뜰과 뒷뜰이 한눈에 보이며 실내 공간은 외부로 확장되며 연결된다. 사진 이정미 사다리꼴 평면 모서리에서 이 공간에 진입하면 사실상 정면에 해당되는 벽 전체가 개방된다. 직진 방향으로는 상대적으로 폭이 좁아져 깊은 공간감을 느낄 수 있고 뒤쪽으로도 사선으로 깊어지며 연장된다. 좌우를 넓게 외부로 확장시키고 전후방으로 좁고 긴 깊이감으로 방향의 대비가 있는 공간에 천장은 좌측으로 낮아지는 지형을 따라 낮아지는 경사를 이루고 있다. ​ 양 벽의 개방감을 극대화시켜 산능선과 공릉천을 시각적으로 연계시키며 투명성과 깊이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공간에 서면 우측 산과 좌측 마당을 지나 멀리 공릉천까지 공간이 연결되어, 외부와 외부 사이에 서 있는 듯하다. 사진 이정미 사진 이정미 지붕만 있는 공간에 서 있는 듯한 공간감이다. 인간은 경험의 반복으로부터 익숙해진다. 그 익숙한 것들과 다른 어떤 것에서 일상적인 것이 아닌 새로움을 느끼게 된다. 이 공간은 그 차이의 공간이다. 최-페레이라 팀은 전시실과 일상의 공간을 경계짓는 전이공간으로서의 역할 이상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 1층에 위치한 ‘전시실 1’은 안내데스크가 있는 계단실을 지나 진입하여 두 줄기 공간이 중정을 감싸는 위치에 있다. 그 내부는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공간들이 높이와 폭이 다른 구조를 따라 중정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계단실과 전시실을 포함한 모든 실내 공간은 백색도장으로 마감되어 형태만으로 공간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사진 이정미 사진 이정미 말년의 작품들 계단실은 두 줄기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시작되고, 뻗어나간 막다른 동선 끝에는 창을 배치하여 풍경을 건물로 끌어들인다. 계단실은 공간의 폭과 각도의 변화 그리고 삼각 천장의 형태가 실내에 또 다른 집이 있는 형상을 보여준다. 계단실 사이 마당 한쪽 벽은 각도를 열어 안내데스크가 위치하게 하였다. ​ 1층 ‘전시실 1’ 내부는 목재를 이용하여 주제를 구분하여 ‘사람, 집, 나무, 하늘’ 등의 테마로 공간을 나눠 전시가 진행된다. 장욱진 화가의 작품 속에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아이들, 둥근 지붕 집, 처마를 높게 휜 지붕의 집, 둥글둥글한 나무들이 주제가 되어 모두 평면화되고 추상화된 화풍을 확인할 수 있는데, 친근하고 편안한 느낌의 그림들이다. ​ 1층 ‘전시실 1’ 끝자락 뻗어나간 막다른 곳에는 장욱진 화가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청보릿길이 길게 조성되어 있다. 2층의 ‘전시장 2~5’는여전히 백색 공간으로 1층 ‘전시장 1’의 소규모로 구획한 공간들과 다르게 넓은 전시홀로 계획되어있다. 전시실은 어둡게 명암의 변화로 계획되었고 먹을 재료로 한 먹그림들과 말년 작들이 이어진다. ​ 이 비교적 넓은 ‘전시장 2, 3’을 지나 순환 동선 중간 지점에는 1층까지 수직으로 개방된 공간이 위치한다. 수평으로 연결되던 전시 동선에 공간의 변화를 제공하여 관람객들은 천천히 다음 공간에 도달한다. 이 전이 공간 다음 뻗어나간 막다른 곳에 오디오룸이 집속의 집처럼 위치하고 있다. 사진 이정미 콤펙트한 오디오룸은 계단형 좌석의 경사가 급격한데 맨위 계단석 천장의 높이는 사람의 키보다 낮다. 수평으로만 연결되는 콘셉트의 전시관을 거쳐온 관람객에게 수직적 공간 경험을 부여했다. 뿐만 아니라 공간볼륨의 대조를 느끼게 하는 밀도있는 공간이다. 삼각의 맞배천장은 집 안에 들어온 분위기를 만든다. ​ 천장이 만나는 사이에 간접조명을 설치하여 지붕의 형태를 강조하고 공간의 폐쇄감을 상쇄시킨다. 이 오디오룸은 어둡고 넓은 2층 전시홀을 관람하는 동선 중간지점에 배치되어 비교적 작고 밝은 공간의 폐쇄성에서 또 다른 아늑함과 반전을 경험하게 한다. 사진 이정미 사진 이정미 이 오디오룸의 계단식 상승과 삼각의 맞배천장에 위치한 빛은 장욱진 화가의 연대별 작품 내용과 관계되는데, 1층에서부터 초기작을 시작으로 2층 전시관에는 화가가 세상을 뜨기전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오디오룸은 아마도 생을 마감하고 천상을 향해 가는 의미를 담고 있는 공간으로 해석된다. ​ 그런 시각으로 다시 전시관 외부 계단의 형태를 되돌아보면 장욱진 화가의 다채로웠던 삶의 길을 다양한 은유로 스토리텔링한 공간인 듯 보인다. 백색은 동심 같았던 화가의 심성을, 삶에 대한 다양한 은유가 베어 있는 공간인 듯도하다. 사랑받았던 딸이 아버지를 향한 존경심의 오마주로 보이는 부분이다. ​ 전시장을 나서면 환하게 밝은 공용 공간에 아래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이 조형미를 보이며 나타난다. 유일하게 색채가 쓰인 화장실 공간도 연결된다.부정형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지각되는 넓이와 각도의 변화, 천장면의 뒤틀림, 빛의 교차, 그리고 창을 통한 외부 풍경의 변화 등 다시각, 다시점의 4차원적 왜곡된 원근화법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 공간의 프로그램들은 기획전과 상설전, 교육프로그램, 미술 창작스튜디오로 구성되었다. 신진 및 중견 작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양주시립미술 창작스튜디오를 운영하고 회화, 사진, 복합매체 작가들을 위한 ‘777 레지던스’와 조각가들을 위한 ‘장흥 조각 레지던스’를 운영하고 있다. 집의 형상을 닮은 단순하지만 힘이 있는 백색의 비정형 미술관은 장욱진의 호랑이 그림 ‘호작도’와 집의 개념을 모티브로 설계되었다. 주변 풍경을 충분히 끌어들인 공간이면서 넓이와 높이 그리고 형태에 있어서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된 미술관에서 즐거운 문화적 호사를 누리는 탐색의 시간이었다. ​ 한국의 전통성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의미있고 아름다운 건축공간이다. <장욱진 미술관>에서의 시간은 공간으로 인한 다양한 조형미와 작품에서 오는 온화함에 감사한 시간이었다.

통의동 보안여관

장소의 기억을 보존한 곳,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재생된 문인들의 예술혼

현 현대미술 갤러리 <통의동 보안여관[우]>과 브리지로 연결되어 신축된 4층 건물 ‘보안 1942’와 ‘서점’ [좌] 장소의 기억을 보존한 곳 보갑문화예술 공간으로 재생된 문인들의 예술혼 - 건축가 미상, 민현식 Min Hyun Sik 세상에 없던 새로운 건축물을 짓는 것이 많은 건축가들의 꿈일 수 있겠지만, 이미 존재하지만 의미 없어진 공간에 새생명을 불어넣는 것 또한 공간 디자이너로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경복궁 옆 서촌에는 갤러리이자 복합문화공간인 <통의동 보안여관>이 있다. 갤러리 <통의동 보안여관> 2층 객실이었던 창에서 보이는 경복궁 영추문 ​ 시대의 변화 속에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유휴시설에 생명을 불어넣어 복합문화예술 공간으로 재생시킨 프로젝트인 <통의동 보안여관>이 청와대 가는길 경복궁 서편 영추문 맞은편에 현대미술 갤러리가 되어 구식의 붉은 벽돌 건물과 그 옆 반듯한 모습의 건물 한 동으로 나란히 서있다. ​ 1936년 시인 서정주와 한 방에 기거하던 함형수를 비롯한 12명의 동인은 각자 10원씩을 내어 순수 서정성을 바탕으로 모더니즘을 비판하던 문예동인지인 ‘시인부락’ 제1집 200부를 발행하였다. 이 시인부락의 기획과 편집을 맡았던 서정주 시인이 묵고 있던 곳이 바로 ‘통의동 3번지 보안[保安] 여관’이었다. ​ 이상, 이중섭, 구본웅 등의 문인과 화가들이 모여 일탈과 예술 혼을 키웠던 장소이자, 인근 청와대와 옛 공보처 공무원들뿐만 아니라 철거된 경복궁 안 조선총독부와 또 그 총독부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던 시기 학예사들이 숙박계를 남긴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인근에 숙박시설은 이곳이 유일했으니 청와대 경비병들의 면회 가족이나 연인들의 기억 또한 이곳에 함께 쌓여 있을 것이다. ​ 2004년 폐업한 보안여관을 주변 주택 두 채와 함께 부산을 근거지로 한 일맥문화재단의 최성우 대표가 2007년에 매입하고 신축을 계획한다. 보안여관 천장을 수리하던 중 2층 천장에서 ‘상량식 소화 17년 [1942년]’이란 목판을 발견한다. 이 목판의 발견으로 70년이 넘는 건물의 역사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에 근대 생활사를 보여주는 이 건물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 신축이나 보수로 원형을 훼손하기보다 본래의 모습을 최대한 있던 그대로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옆 부지에는 민현식 건축가의 설계로 4층 건물을 신축하고 <보안 1942>로 명명하여 보안여관 현대 버전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 2018.6.10-7.8 유쾌한 뭉툭 展 ​ 1936년 이전 일본인이 문을 열었고 2004년 폐업한 보안여관은, 2010년 원형을 보존한 상태의 갤러리로 재생되어 현대 예술작가들의 작품전과 예술 관련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다. 필자가 취재차 방문했을 때는 김정헌, 주재환의 민중미술 ‘유쾌한 뭉툭 전’의 전시 흔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다음 전시의 준비작업이 한창이었다. 통의동 보안여관의 장소가 갖는 특수성으로 인해 작가의 특성과 맞는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 이전 전시 ‘유쾌한 뭉툭’의 주재환은 안내서에서 “세계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한 줌의 소수에게는 진보로, 압도적인 다수에게는 야만으로 다가올 공산이 크다.”라는 영국의 고고학자 클라이브 폰팅의 저서 ‘진보와 야만’을 인용하고 있었다. ​ 갤러리 <보안여관>으로의 탄생에는 복잡한 과정이 있었다고 한다. 숙박시설이었던 <보안여관>이 박제화된 유물로 남지 않고 살아있는 문화의 일부로 활용되기 위한 노력은 적산가옥이라는 보안 여관의 현실이 일재 잔재라는 인식과 문화재로서의 보존에 대한 이해의 차이로 수많은 설계 변경과 건축허가를 두고 실랑이가 있었다고 한다. 갤러 리가 된 <보안여관>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보안1942>의 역할을 기대해 본다. ​ 2층 규모의 갤러리 <보안여관>의 진입은 경복궁 옆 영추문 맞은편 대로변에서 바로 이루어진다. 입구에 들어서면 숙박등록을 했을 작은 창문과 바로 옆 거울이 붙어 있고 안쪽 직선으로 길게 난 복도를 사이에 두고 작은 방들이 좌우에 배치되어 있다. ​ 두 사람이 눕기에도 비좁아 보이는 고만고만한 크기의 방문에는 1, 2, 3 … 번호만 붙어있고 작은 불투명 유리창으로 빛이 들어온다. 나무 골조가 띠를 이루고 벽에는 색바랜 벽지가 그리고 벽체가 여기저기 뜯겨져 나갔다. 전선을 연결하여 불을 밝히던 흰색 사기 애자가 천장에 시간을 연결하고 향수를 돋게 하며 노출되어 있다. ​ 비교적 개방감을 드러낸 2층 전시 공간 낡고 허물어지기도 해 골조가 드러난 방들에는 주제환의 민중미술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낡은 목재 문짝과 옛 전 구의 스위치 그리고 노출된 전선 등이 작품의 진보적인 화풍과 하나가 되어 있다. ​ 이거 뭐지, 퀘퀘한 냄새도 나는 것 같다. 안쪽에는 바닥에 사각으로 뚫린 구멍을 화장실로 사용하던 공간 그대로가 유지되고 있다. 2층 복도 안쪽 끝에 난 창을 통해 서촌의 한옥 전경이 정겹다. ​ 목재계단을 통해 연결된 2층 갤러리 공간에는 벽을 철거해 방의 구조를 그대로 드러낸 목재골조만을 남겨 복도와 맞은편 방까지 공간을 개방한 구성의 공간이 있다. 2층 복도 끝에 난 창을 통해서는 경복궁 영추문의 미려함이 그대로 들어온다. ​ <보안여관>이 갤러리 공간으로 사용되는 단순한 프로그램이라면 민현식 원로 건축가 설계의 <보안 1942>의 프로그램은 카페, 책방, 전시장, 게스트하우스로 구성되어 1930년대 보안여관의 현대버전을 보여주고 있다. ​ 한국의 전통사상에서 기인한 비움의 구축이라는 대표적 건축 이념으로 건축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민현식건축가는 <보안 1942> 건축물을 <보안여관>에 비해 3미터를 뒤로 앉히고 지하 2층부터 외부 썬큰sunken 을 이용한비움의 공간을 통해 자연의 요소를 지하까지 끌어들이는 공간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 4면의 적재적소에 창을 두어 서쪽의 서촌 마을 한옥의 정취와 동쪽의 경복궁 그리고 북쪽의 외부마당을 향한 개구부를 통해 북악산과 청와대까지를 전망하게 하여 현대적인 공간에서 우리의 전통을 느낄 수있는 공간으로 구성하였다. ​ '한 권 서점'에서 보이는 경복궁 담장 영추문이 한눈에 들어오는 <보안1942> / 한국 식문화공간 '일상다반사' <보안 1942> 1층 ‘일상다반사’는 한국적인 차와 다과를 즐길 수 있는 최근 서촌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 식문화 공간이다. ​ 2층 ‘B BRIDGE’에는 <보안여관> 전시장과 구름다리가 연결되어 있고, 보안 책방 ‘한 권 서점’에는 식물과 정원, 도시와 삶, 건축 등의 그곳과 이곳, 음악과 미술, 그리고 영화와 디자인 관련 소리와 이미지, 일기와 독백, 대화와 비평 등의 인물과 시선을 카테고리로 한 책들이 전시 판매되고 있다. ​ 이곳에서는 수요일 저녁 7시 독서모임이 진행된다. 수요일에는 원로 건축가 민현식 선생님, 일러스트레이터 이우만과의 대화가 기획되어 진행되고 있었다. ​ 밤에는 주점으로 변신하는 책 읽는 공간 3층과 4층에는 ‘보안 스테이’가 위치하고 스테이의 내부는 협업 작가들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집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보안 스테이에서는 경복궁 경회루와 영추문 누각, 북악산과 청와대를 전망할 수 있다. ​ 지하 1층 <보안 1942>는 <보안여관> 전시관으로 사용된다. 지하 2층 ‘보안 북스’에는 책과 화원이 묘한 분위기로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자유롭게 책 읽는 공간이면서 밤에는 주점으로 변신하는 공간인데 사전 정보 없이 들어간 방문객에게는 어리둥절한 곳이 될 수 있는 곳이다. 방문한다면 자유로움을 가져보기를 바란다. ​ 정면의 경복궁은 법궁으로 불리는 데, 법궁이란 궁궐 중 으뜸이 되는 곳으로 왕이 임하는 제1궁궐을 뜻한다. 법궁이 아닌 궁을 ‘이궁’이라고 하며, 법궁의 중심되는 전각을 ‘법전’이라 한다. 경복궁의 법전은 우리에게 익숙한 근정전으로 600여 년 전 조선왕조 1395년 태조 4년에 지어졌다. ​ 당시 내노라하는 권문세가들이 살았다는 경복궁 동쪽 북촌에 비해 서촌은 의관이나 역관 등의 전문직 중인들이 살았다고 한다. 경복궁 동쪽에 위치했지만 북촌으로 불리게 된 것은 청계천을 기준으로 북쪽에 위치한 까닭이라고 한다. ​ 지하 2층에 자연요소를 보여주는 '썬큰 가든' 서촌에는 세종대왕 생가 등이 있을 뿐 아니라 여전히 옛골목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경복궁 서쪽 영추문 앞 서촌 마을에 자신만의 장소의 기억 을 고스란히 한 몸에 간직한 채 궁궐이 아닌 여관이라는 이름으로 버티고서 문화콘텐츠로 자리한 현대미술 갤러리 <보안여관>과 <보안 1942>를 살펴보았다. 근대 문화유산의 가치에 대한 복잡한 생각이 함께한 공간이었다. ​ 경복궁의 중세와 전근대, 보안여관의 식민지와 근대, 청와대의 민주화와 현대가 공존하고 있는 공간인 청와대 앞 분수 광장에서 경복궁 쪽으로 걸어가는 길은 집회와 시위로 군데 군데 소란스럽다. 청와대를 지나서 경복궁 담장이 보이기 시작하고 경복궁 서문 영추문이 저만치 보일 때쯤 그 바로 건너편에 적색벽돌 건물인 <보안여관>이 보인다. ​ 목욕탕 표시가 그대로 그려진 빨간색 간판을 달고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는 갤러리 <보안여관>은 누군가에게는 과하게 보일 수 있겠으나, 또 누군가에게는 이곳에서 생성되는 숱한 이야기로 인해 삶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 예술과 디자인이 사람을 이해하고 인생을 보듬을 수 있는 매개체 역할을 온전히 해 낼 때 많은 사람들은 유쾌한 예술적 자극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소통하며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보안여관>이 온전히 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