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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욱진 미술관

양주에서 감상하는 자연과 건축과 예술의 만남. 동심과 풍류,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는 시간

 글 사진 동양미래대학교 건축과 이정미 교수

양주에서 감상하는 자연과 건축과 예술의 만남

동심과 풍류,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는 시간

 

- 최-페레이라 Chae-Pereira Architects

 

 

2014년 탄생 100주년을 맞은 고독의 화가이자 자연과 가족을 주제로 작품을 그렸던 소년 같은 감성으로 살아간 화가 장욱진의 미술관을 다녀왔다. 나들이 하기에 좋은 계절이니 계곡의 정취를 느끼며 산바람과 함께 장욱진 화가의 소탈한 서정을 즐기는 호사를 누려보자. 경기도 양주로 떠난다.

 

 

화가 장욱진은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과 함께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2세대 서양화가다. 1917년 말띠 해 겨울, 충남 연기에서 태어나 1990년 겨울, 용인 마북리에서 74세로 생을 마감한 자연 같은 화가다. 그는 유영국 등과 함께 ‘신사실파’를 결성하고 ‘사실을 새롭게 보자’라는 주제 의식을 가지고 사물에 내재되어 있는 근원적, 정신적 본질을 추구하여 단순하면서도 대담한 작품활동을 하였다. “나는 심플하다.”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평생 자연 속에서 심플한 삶을 살면서 그림을 통해 동화적이고 이상적인 내면을 표현하였다. 양정고등학교와 무사시노 미술대학 서양학과를 졸업한 후 국립박물관 학예과에 근무하고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재직한 뒤 사직 후 작품 활동에 전념하였다. 그의 작품 세계는 작업실이 있던 곳을 기준으로 초기와 덕소 시기, 명륜동 시기, 수안보 시기, 용인 시기로 나뉜다.

 

장욱진은 4형제 중 차남으로 대지주의 손자로 충남 연기군에서 출생하여 6세 때 서울로 이사하였다. 중학교에서 미술부 활동을 시작하였지만, 고등학교 시절에는 일본인 역사 교사의 공정치 못한 처사에 항의하다 퇴학을 당하기도 하였다.

풍류가와 같은 면모는 이 시기, 즉 편입 전까지 학교의 틀에서 벗어나 생활한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체육특기생으로 편입한 양정고 시절에는 전국학생미전에서 ‘공기놀이’로 최고상을 받았다. 이때 상금 100원을 받아 고모에게 비단 옷감을 선물해 이후로는 가족들이 그림 그리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공기놀이’는 서울에서 함께 기거하던 화가 가족의 하인들을 그린 것이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구성은 화가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인 평면화하고 추상화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는데, 이후의 작품들에서도 이 구성 방법을 계속 사용하게 된다.

 

공기놀이, 1937

 

23세에 유학을 시작하여 이듬해 세 살 아래의 이순경 여사와 결혼하였다. 미대를 졸업하고 국립중앙박물관에 근무하면서 ‘신사실파’를 결성하였고, 1949년 33세때 ‘신사실파 동인전’에 유화를 출품하며 작가로서 최초의 전시회를 갖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6.25 시기에는 부산 용두동으로 피난하여 비극의 상황을 술에 의지하며 폭주를 시작하였다. 이 시기 작품에는 ‘자화상’이 있다. 서울대학교 교수직 이후에는 ‘2.9 동인회’를 조직하여 동인전에 ‘야조도’와 ‘산수’ 등 을 출품 전시하였다. 63년 47세의 장욱진은 가족을 뒤로 하고 남양주시 삼폐동에 슬라브 양옥을 짓고 혼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를 덕소 시기라 하며, 이 시기 48세에 ‘장욱진 개인전’을 열었다. 54세 정초에 명륜동 집에 머물던 중 불공을 드리는 부인의 모습에 감명받아 바로 덕소에 돌아가 일주일 간 식음을 전폐하며 아내의 첫 번째 초상화를 그리게 되는데, 이 그림의 제목이 아내의 법명을 딴 ‘진진묘’다. 진진묘는 불교를 소재로 한 최초의 작품이자 직접 제목을 붙인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다. 이 작품에 몰두한 뒤 두세 달을 앓아 작가를 염려한 아내가 작품을 판매하자 자신의 대표작이라 생각해 아까워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 작품은 30여 년간 한 명의 소장가에 의해 소장되다가 2014년 6억 2,500만 원에 경매되었다.

진진묘, 1970

 

부인이 주말에는 버스를 타고 작업실인 덕소를 자녀들과 함께 방문했는데, 화가는 안주도 없이 술을 마시기 시작하여 끝없이 마시는 폭주 습관을 갖고 있어 가족들이 힘들어 했다고 한다. 경운박물관 관장인 장녀 장경수는 그토록 술에 집착했던 것은 친구가 없고 제자 몇 명을 빼고는 가족뿐인 화가의 삶의 테두리가 지극히 좁았던 성품에서 온 것 같다고 했다. 폭주 후 화가의 뒷모습이 고독하고 슬퍼보였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하니 술을 친구로 여겨 작품을 통해 근원적인 것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장녀와는 ‘서로 간이 잘 맞는다’ 라고 하며 소통하며 아꼈고, 이러한 성품의 영향으로 작품 주제 또한 가족이나 집, 나무, 새 등으로 그림에서는 단순하면서도 따뜻함이 베어 나온다. 딸은 결국 예술에 매진하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보답했다. 개발 바람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용인 시기 집을 등록문화재로 지정받아서 보존하여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장욱진 재단과 미술관을 설립해 작가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게 된 것이다. 장욱진 미술관이 양주군에 위치하게 된 것도 덕소 시기 12년의 인연에서라 하겠다. 유족들이 양주시에 작품을 기증하고 <양주시립 장욱진 미술관>으로 자리하게 된 것이다.

용인 시기의 장욱진 고택, 조선시대

 

59세되는 1975년, 덕소 생활을 청산하고 명륜동으로 옮겨와 양옥 옆에 한옥을 사서 화실을 꾸몄는데, 서양식 교육을 받았으나 향토색이 느껴지는 화풍에서 보이듯 집도 한옥과 양옥이 언제나 같이 있었다고 한다.

집 짓는 것을 좋아해 명륜동에도 양옥과 한옥이 있었고, 덕소에도 슬라브 건물 옆에 나중에 아내를 위해 한 칸짜리 한옥을 지었다. 명륜동 시기에는 기고하던 글들을 모아 산문집 ‘강가의 아틀리에’를 발간하기도 하였고, 1979년에는 ‘장욱진 화집 발간전’을 열었으며, 그 해 겨울 수안보 온천 동네 뒤 탑동 마을에 농가를 구입하였다.

1980년 64세 봄, 수안보 온천 농가를 화실로 리뉴얼하여 부인과 함께 생활하면서 수안보 시기를 시작한다. 이때 먹그림을 애칭 판화로 옮긴 그림전과 판화전을개인전으로 개최하였다.

1985년 여름, 다시 서울로 이주한 후 1986년 70세에 유화와 먹그림 개인전을 열었다. 그 해 봄, 자녀들이 가까이 있기를 희망하여 용인의 마북리에 낡은 한옥을 구입하여 리뉴얼하여 지내던 중 그해 가을 중앙일보가 제정한 예술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용인의 ‘장욱진 고택’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ㅁ자형 한옥과 정자, 그리고 나중에 장욱진이 설계해 지은 양옥 한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1987년 개인전을 마친 후 1989년 73세에 마북리 한옥 옆에 양옥을 지어 입주하면서 용인 시기 거주가 시작되었고, 그 해 가을에는 뉴저지 주 ‘버겐 예술 과학박물관’이 개최한 한국유화전에 유화 8점을 출품한다.

이듬 해인 1990년 12월 27일 오후 4시, 향년 74세로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작가의 생애를 살피다 보니 대한민국의 근대를 살아낸 느낌이다. 유학, 전쟁, 교수, 화가로서의 치열했을 1인 주거의 삶이 생생하다.

<장욱진 미술관> 건축에 대해 알아보자. 양주시 장흥면에 위치하고 지명설계공모를 통해 내노라하는 건축가들 사이에서 최-페레이라 건축사무소의 설계안이 당선되었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건축물로, 중정과 각각의 방들로 구성된, 집이 확장된 듯한 아담해 보이는 백색의 미술관이다. 크고 작은 각각의 방들로 계획된 점은 화가의 작품들이 비교적 작은 사이즈의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그러나 미술관 전체 실제 면적은 그리 작지만은 않다.

대지 6,204제곱미터로 1,900평, 건축면적 671제곱미터, 연면적1,852제곱미터 규모이다. 2014년 4월 개관하여 2015년 김수근 건축상을 수상한 건축물로, 4월이라는 개관 시기와 자연을 좋아했던 화가에 걸맞게 개관전에는 청보릿길이 전시관 내부에 길게 조성되어 있었다.

<장욱진 미술관> 을 설계한 최-페레이라Chae-Pereira Architects 건축사무소는 건축가 최성희와 로랑 페레이라Raurent Pereira 두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다. 2005년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계획으로 알려졌던 서울공연예술센터를 위한 국제아이디어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최-페레이라 건축사무소는 시작되었다.

이후 다수의 건축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고 있는 건축가들이다. 최성희는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실내디자인과와 파리 라빌레뜨 건축대학을 졸업한 프랑스 건축사이다. 로랑 페레이라는 벨기에 브뤼셀 출생으로 생 뤽 건축대학을 졸업하고 <리움미술관>을 공동설계했던 빛의 건축가로 알려진 세계적 건축가 장누벨 사무소에서 실무를 하였다. 한양대, 숭실대, 고려대 건축학과에서 교수로 재직한 바 있다.

 

사진 이정미

 

건물 외관의 첫인상은 장욱진 화가의 그림 안에서 포근하고 아늑하게 느껴지던 집이 현대화되어 나타난 듯하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소박하고 친근한 느낌의 내외부는 모두 백색으로 마감되었다. 2층 높이 스케일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삼각지붕의 각도가 완만하고 낮기 때문에 친근감과 소박함으로 다가온다.

반면 내부 공간의 형태와 크기는 다양한 각도와 폭과 높이로 연결되는 구성으로, 각각 다른 크기로 설정된 방의 모서리에서 열림과 닫힘의 방법을 통해 내부 공간에서 보는 시각적 관통과 신비스러운 빛을 연출시켜 형태와 규모의 다양성을 느끼게 한다.

<장욱진 미술관>의 대지는 산과 강이 있는 위치에서 북측 능선 끝자락에 깊게 자리하여 남서측으로는 공릉천 계류가 합해져 흐르고, 그 천 남측에는 야외 조각공원이 위치하고 있다.

미술관 진입은 몇 가지 장치들로 드라마틱한 효과를 만들고 있는데, 경사지의 특성에서 온 주차장 경계를 이루는 노출 콘크리트 흙막이 벽과 넓게 비운 잔디정원, 그리고 직선으로 뻗은 길이 그것이다. 미술관이 부지 전체에서 안으로 깊게 자리하고 경사지 위에 있기 때문에 주차장 경계벽을 콘크리트 흙막이 벽으로 높게 세워서 단차를 두고 시선을 우선 한번 차단하는 형식을 취했다.

관람객은 낮은 곳에서부터 우측의 콘크리트 흙막이벽을 끼고 돌아 완만한 경사로를 빠르게 걸어 직선로로 접어들게 되는데, 건물은 넓게 비운 잔디정원 너머 멀리에 서 있는 상태로 나타난다.

직선으로 곧게 뻗은 보도 우측에 넓게 비워 둔 잔디정원은 허공에 서 있는 느낌을 갖게 한다. 직선으로 쭉 뻗은채 살짝 우측으로 자리하고 서 있는 미술관을 향해 평평한 잔디정원을 가로지르는 직선의 진입로는 미술관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로 연결되는 전이 공간이 된다. 진입로는 정면을 향하지만 시선은 잔디광장 너머 우측 미술관 쪽을 향하고 있다. 장욱진 미술관에는 전이 공간이 매표소 다음 또 한번 나타난다.

 

사진 이정미

 

건물 진입은 평지에 난 긴 직선로를 걷다 보면 우측부터 건물 한 채가 마치 초가처럼 서 있고, 그 왼쪽에 실루엣으로 또 한 채가 보이는 형식으로 마치 화가의 삶에서 양옥과 한옥 거주가 공존했던 것처럼 살아온 다양한 거주를 은유하는 듯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마치 장욱진 그림에서 보이는 길을 걸어 가는 느낌이기도 한데, 비워진 평지에 조성된 잔디정원이 허공을 횡단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으로 보인다.

건물이 아담하게 느껴져 화가의 작업실에라도 방문하는 듯한 느낌이다. 일반적인 미술관에서 보여주는 무게감과 중압감으로 인한 접근의 부담감을 덜기 위해 건물은 밝고 경쾌한 이미지의 흰색 폴리카보네이트를 외장재로 사용하고 있다.

흰색의 현대화된 초가집처럼 보이는 미술관은 녹색의 신록과 조화로운 대조를 이룬다. 미술관을 흡족히 즐긴 뒤 걸어나오는 길에 뒤돌아 보면 장욱진의 그림이 바로 거기에 한 점 있는 듯하다.

 

사진 이정미

 

사진 이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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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정미

 

미술관 전체는 두 줄기 공간이 다양한 각도와 폭과 높이로 겹치는 구성을 이루면서 마당과 중정을 형성하고, 방과 관람객의 움직임을 개념으로 각각 다른 크기로 설정된 방을 마주하는 방향을 달리해 배치하고, 이들을 이어주는 동선을 확장해 전시 공간을 형성했다.

자연을 향해 제각기 뻗어나간 동선의 끝을 창으로 처리해 풍경을 건물로 끌어들이고 있다. 각각의 모서리에서 열림과 닫힘의 방법을 통해 내부 공간에서 보는 시각적 관통과 신비스러운 빛을 연출시켜 형태와 규모의 다양성을 느끼게 한다.

 

사진 이정미

 

사진 이정미

 

주출입구는 진입로에서 보이던 건물로 진입하고, 들어가는 입구 맞은편에 넓은 벽창문이 있다. 창문 밖으로 마당이 배치되어 아담한 규모의 홀을 외부로 확장시키며 자연의 빛이 환하게 유입된다.

주출입구를 통해 실내로 들어서면 매표소와 카페, 숍이 있는 별개의 공간이 있다. 각기 다른 방을 연결하는 콘셉트의 건축물인만큼 공간들은 출입문들을 통해 띠처럼 연결된다.

매표소 공간 또한 일반적인 미술관 규모에서 보이는 모뉴멘탈한 스케일의 공간과는 거리가 먼 아담한 부정형의 다각형 공간이다. 작은 카페 같은 규모이지만 반투명 폴리카보네이트 패널의 은은한 수직패턴과 백색도장 공간에 목재가구로 이루어진 공간은 심플하고 다채롭다.

 

 

전시 공간으로의 여정은 매표소에서 폭이 좁아지는 방향에 난 문을 통과한 다음 나타나는좌우가 벽창으로 된 통로와도 같은 전이 공간을 지나면서 이어진다. 이 통로 공간은 공간폭은 동일한 가운데 진입부 벽과 맞은편 벽 그리고 천장면이 이루는 각도가 독특하게 구성되어 있다.

통로 공간과도 같은 이 매개 공간은 매표소 쪽에서 문을 열고 들어서면 관람객을 중심으로 실제적으로 정면벽이 벽창으로 구성된 상태로 외부를 보여준다. 관람객을 기준으로 거의 평각에 가까운 좌우벽 그리고 정면의 개방된 유리벽과 맞닥뜨리게 된 가운데 전진을 위해 좌측으로 방향을 진행하면 막상 좌우가 전면창으로 된 벽이 되는 것이다. 뒤

돌아보면 우측 모서리가 저 멀리 멀어져 있는 독특함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경사진 천장과 예각의 맞은편 투명한 창으로 된 벽 내부 공간은 좌측과 우측이 외부로 확장된다. 우측 유리벽 멀리 산까지 경치가 펼쳐지고, 좌측 벽면 또한 투명한 유리벽으로 개방되어 마당을 너머 낮아지는 자연경관이 저 멀리까지 드러난다.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사라지고 앞뜰과 뒷뜰이 한눈에 보이며 실내 공간은 외부로 확장되며 연결된다.

 

 

 

사진 이정미

 

사다리꼴 평면 모서리에서 이 공간에 진입하면 사실상 정면에 해당되는 벽 전체가 개방된다. 직진 방향으로는 상대적으로 폭이 좁아져 깊은 공간감을 느낄 수 있고 뒤쪽으로도 사선으로 깊어지며 연장된다. 좌우를 넓게 외부로 확장시키고 전후방으로 좁고 긴 깊이감으로 방향의 대비가 있는 공간에 천장은 좌측으로 낮아지는 지형을 따라 낮아지는 경사를 이루고 있다.

양 벽의 개방감을 극대화시켜 산능선과 공릉천을 시각적으로 연계시키며 투명성과 깊이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공간에 서면 우측 산과 좌측 마당을 지나 멀리 공릉천까지 공간이 연결되어, 외부와 외부 사이에 서 있는 듯하다.

 

사진 이정미

 

사진 이정미

 

지붕만 있는 공간에 서 있는 듯한 공간감이다. 인간은 경험의 반복으로부터 익숙해진다. 그 익숙한 것들과 다른 어떤 것에서 일상적인 것이 아닌 새로움을 느끼게 된다. 이 공간은 그 차이의 공간이다. 최-페레이라 팀은 전시실과 일상의 공간을 경계짓는 전이공간으로서의 역할 이상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1층에 위치한 ‘전시실 1’은 안내데스크가 있는 계단실을 지나 진입하여 두 줄기 공간이 중정을 감싸는 위치에 있다. 그 내부는 다양한 규모와 형태의 공간들이 높이와 폭이 다른 구조를 따라 중정을 중심으로 회전한다. 계단실과 전시실을 포함한 모든 실내 공간은 백색도장으로 마감되어 형태만으로 공간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사진 이정미

 

사진 이정미

 

 

 

말년의 작품들

 

계단실은 두 줄기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시작되고, 뻗어나간 막다른 동선 끝에는 창을 배치하여 풍경을 건물로 끌어들인다. 계단실은 공간의 폭과 각도의 변화 그리고 삼각 천장의 형태가 실내에 또 다른 집이 있는 형상을 보여준다. 계단실 사이 마당 한쪽 벽은 각도를 열어 안내데스크가 위치하게 하였다.

1층 ‘전시실 1’ 내부는 목재를 이용하여 주제를 구분하여 ‘사람, 집, 나무, 하늘’ 등의 테마로 공간을 나눠 전시가 진행된다. 장욱진 화가의 작품 속에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아이들, 둥근 지붕 집, 처마를 높게 휜 지붕의 집, 둥글둥글한 나무들이 주제가 되어 모두 평면화되고 추상화된 화풍을 확인할 수 있는데, 친근하고 편안한 느낌의 그림들이다.

1층 ‘전시실 1’ 끝자락 뻗어나간 막다른 곳에는 장욱진 화가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청보릿길이 길게 조성되어 있다. 2층의 ‘전시장 2~5’는여전히 백색 공간으로 1층 ‘전시장 1’의 소규모로 구획한 공간들과 다르게 넓은 전시홀로 계획되어있다. 전시실은 어둡게 명암의 변화로 계획되었고 먹을 재료로 한 먹그림들과 말년 작들이 이어진다.

이 비교적 넓은 ‘전시장 2, 3’을 지나 순환 동선 중간 지점에는 1층까지 수직으로 개방된 공간이 위치한다. 수평으로 연결되던 전시 동선에 공간의 변화를 제공하여 관람객들은 천천히 다음 공간에 도달한다. 이 전이 공간 다음 뻗어나간 막다른 곳에 오디오룸이 집속의 집처럼 위치하고 있다.

 

사진 이정미

 

콤펙트한 오디오룸은 계단형 좌석의 경사가 급격한데 맨위 계단석 천장의 높이는 사람의 키보다 낮다. 수평으로만 연결되는 콘셉트의 전시관을 거쳐온 관람객에게 수직적 공간 경험을 부여했다. 뿐만 아니라 공간볼륨의 대조를 느끼게 하는 밀도있는 공간이다. 삼각의 맞배천장은 집 안에 들어온 분위기를 만든다.

천장이 만나는 사이에 간접조명을 설치하여 지붕의 형태를 강조하고 공간의 폐쇄감을 상쇄시킨다. 이 오디오룸은 어둡고 넓은 2층 전시홀을 관람하는 동선 중간지점에 배치되어 비교적 작고 밝은 공간의 폐쇄성에서 또 다른 아늑함과 반전을 경험하게 한다.

 

사진 이정미

 

사진 이정미

 

이 오디오룸의 계단식 상승과 삼각의 맞배천장에 위치한 빛은 장욱진 화가의 연대별 작품 내용과 관계되는데, 1층에서부터 초기작을 시작으로 2층 전시관에는 화가가 세상을 뜨기전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오디오룸은 아마도 생을 마감하고 천상을 향해 가는 의미를 담고 있는 공간으로 해석된다.

그런 시각으로 다시 전시관 외부 계단의 형태를 되돌아보면 장욱진 화가의 다채로웠던 삶의 길을 다양한 은유로 스토리텔링한 공간인 듯 보인다. 백색은 동심 같았던 화가의 심성을, 삶에 대한 다양한 은유가 베어 있는 공간인 듯도하다. 사랑받았던 딸이 아버지를 향한 존경심의 오마주로 보이는 부분이다.

전시장을 나서면 환하게 밝은 공용 공간에 아래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이 조형미를 보이며 나타난다. 유일하게 색채가 쓰인 화장실 공간도 연결된다.부정형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지각되는 넓이와 각도의 변화, 천장면의 뒤틀림, 빛의 교차, 그리고 창을 통한 외부 풍경의 변화 등 다시각, 다시점의 4차원적 왜곡된 원근화법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공간의 프로그램들은 기획전과 상설전, 교육프로그램, 미술 창작스튜디오로 구성되었다. 신진 및 중견 작가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양주시립미술 창작스튜디오를 운영하고 회화, 사진, 복합매체 작가들을 위한 ‘777 레지던스’와 조각가들을 위한 ‘장흥 조각 레지던스’를 운영하고 있다. 집의 형상을 닮은 단순하지만 힘이 있는 백색의 비정형 미술관은 장욱진의 호랑이 그림 ‘호작도’와 집의 개념을 모티브로 설계되었다. 주변 풍경을 충분히 끌어들인 공간이면서 넓이와 높이 그리고 형태에 있어서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된 미술관에서 즐거운 문화적 호사를 누리는 탐색의 시간이었다.

한국의 전통성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의미있고 아름다운 건축공간이다. <장욱진 미술관>에서의 시간은 공간으로 인한 다양한 조형미와 작품에서 오는 온화함에 감사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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