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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크리스마스 씰

대한결핵협회, 크리스마스 씰의 역사

자료제공 대한결핵협회

기획취재 공공디자인저널 인턴기자 정가람솔

어린시절 성탄종소리가 울릴 때쯤이면

학교에서 샀던 알록달록 크리스마스 씰과

우체국에 달려가 크리스마스 씰시리즈와 씰첩을 사던 일이 떠오른다.

결핵 퇴치기금을 모으기 위해 크리스마스 전후에 발행하는

크리스마스 씰의 기원을 찾아 본다.

 

척박한 한국의 의료환경을 바꾼 푸른 눈의 의료선교사 셔우드 홀(Sherwood Hall)

100여 년 전 누구 하나 눈길 주지 않던 동방의 작은 나라에 찾아와 열악한 의료환경 개선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던진 푸른 눈의 선교사들에게 당시 우리나라가 해줄 수 있었던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기본적인 인격체 취급받지도 못하던 당시의 여성들을 위해 힘썼고 폐결핵을 악귀에게 받는 벌이라 생각하던 무지한 한국인을 위해 힘썼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게 힘썼던 것처럼 그들의 노력이 영원히 잊혀지지 않도록, 겹겹이 쌓이는 역사의 층속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그들을 기억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작은 마을 우체국장이었던 아이날 홀벨은 결핵으로 목숨을 잃어가는 아이들을 도울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연말이면 홍수처럼 쏟아지는 우편물에 붙여 기금을 모으는 씰(seal)에 착안하였고, 1904년 국왕의 허락을 받아 세계 최초의 크리 스마스 씰을 발행했습니다.

그 후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크리스마스 씰 모금 운동은 전 세계적인 결핵퇴치 운동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32년 캐나다인 선교사 셔우드 홀에 의해 최초의 씰이 발행되었고, 1953년 대한 결핵협회의 창립과 함께 결핵퇴치 기금을 모으는 모금 운동으로 정착되었습니다.

대한결핵협회는 매년 10월부터 2월까지 5개월간 크리스마스 씰 집중 모금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인 성금은 결핵퇴치사업을 위해 협회가 수행하는 각종 사업에 투입되어 소중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특히 노숙인 결핵지원사업, 학생 행복나눔지원사업, 결핵시설 지원사업 등 결핵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들의 결핵치료 및 생활지원을 위해 값지게 사용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결핵을 퇴치하기 위한 각종 홍보 사업, 결핵조기발견을 위한 검진사업, 결핵균 검사 및 연구사업 등의 주요 재원이 됩니다.

지난 해 메르스 사태를 통해 우리는 값진 경험을 얻었습니다. 전염병 관리의 중요성과 위기 상황 대처의 중요성을 보았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있어왔던 질병이기 때문에 사회적 관심에 서 멀어진 결핵, 지금이 위기라는 마음으로 철저하게 관리하고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결핵으로부터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대한결핵 협회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대한결핵협회장 경만호

 

크리스마스 씰의 유래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

 

세계 최초의 씰 발행자 아이날 홀벨

 

산업혁명 이후 결핵이 전 유럽에 만연했던 19세기 말, 덴마크도 예외가 아니었다. 천성이 착하고 어린이를 좋아했던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우체국 직원 아이날홀벨(Einar Hollbelle)은 당시 많은 어린이들이 결핵으로 죽어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

그러던 중 연말에 쌓이는 크리스마스 우편물과 소포를 정리하면서 동전 한 닢짜리‘씰’을 우편물에 붙여 보내도록 한다면 판매되는 동전을 모아 많은 결핵기금을 마련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국왕인 ‘크리스찬 9세’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마침내 1904년 12월 10일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게 되었다. 그의 소박한 발상이 많은 덴마크인들의 공감과 참여를 이끌어냄으로 써, 크리스마스 씰 운동은 빛을 발하게 되었다.

 

 

 

1953년

한국전쟁으로 결핵이 급격히 만연하자 1953년 11월 6일 뜻있는 선각자들에 의해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었다. 창립과 함께 대한결핵협회에서는 그 해 12월 보건부의 승인을 얻어 첫 씰을 발행 하였다. 소재는 색동저고리를 입은 소녀로, 우표 도안가였던 강춘환 씨가 도안했다.

색동저고리는 설빔으로 새해를 축하하는 뜻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의 남존여비, 남아선호 사상을 매우 싫어했던 셔우드 홀의 뜻에 따라 문창모 박사가 적극 추천하여 이 도안이 채택되었다고 한다.

씰 전지 구성은 특이하게 18×10(180매)이며, 유럽과 미주지역에서 실시하여 성과를 거두고 있던 우편모금 방법을 채택하여 학교와 교회를 중심으로 보건소, 의원, 단체 등에 크리스마스 씰 모금 취지문과 함께 발송하였는데 국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씰이 전혀 인식되지 않은 상태여서 상당수가 봉투를 개봉도 하지 않은 채 반송되었다.

미국의 크리스마스 씰 운동

 

 

미국에서 최초로 씰을 발행한 에밀리 비셀

 

덴마크에서 발행된 크리스마스 씰이 붙은 편지가 대서양을 넘어 미국 신대륙으로 건너갔다. 덴마크계 미국인 작가 자콥 리이스(Jacob Riis)는 고향에서 보내온 편지에 크리스마스 씰이 붙여진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그는 누구보다도 결핵의 비극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형제 중 6명이 결핵으로 죽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핵 기금 마련을 위해 씰 운동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던 활동적이고 인정이 많은 델라웨어(Delaware) 의 에밀리 비셀(Emily bissel)과 함께 결핵환자를 입원 치료하던 한 병원의 운영비를 마련하고자 씰 모금운동에 나서기로 결심하였다. 씰 도안은 자신이 하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1907년 윌밍톤(Wilmington) 우체국에서부터 씰 판매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씰 운동에 대한 호응도가 낮아 잘 판매되지 않자 필라델피아(Philadelphia)의 신문사를 찾아가 간곡히 설명하였고 열의에 찬 그녀의 의지에 감동한 편집장은 마침내 크리스마스 씰에 관한 이야기를 기사화하였다.

지역사회 언론의 역할로 메시지가 전달되면서 미국의 대 통령, 대법원장, 국회의장이 모두 씰 모금에 앞장섰으며 시민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크리스마스 씰 운동의 확산

1904년 발행된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

 

덴마크와 미국으로 크리스마스 씰 운동이 성공적으로 추진되자 곧 스웨덴, 독일 및 노르웨이 등 주변국이 뒤따르고 1915년엔 루마니아에까지 전파되었다. 동양권에서는 1910년 필리핀에서 처음으로 씰이 발행되었으며 이어 일본에서는 1925년 12월에 자연요 양사(自然療養社)라는 민간 잡지사가 처음으로 씰을 발행하였고 1926년부터 결핵예방회에서 본격적으로 씰을 발행하기 시작했다.

세계 여러 곳에서 씰 운동이 성공을 거두자 1925년 이후로는 프랑스, 벨기에, 폴란드, 이태리 등 유럽국가와 칠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 중남미국가 및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등 중동지역으로 확산되었고 많은 나라에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함으 로써 사랑과 나눔의 실천운동은 세계로 퍼져나갔다

 

한국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 운동

 

셔우드 홀 박사

 

우리나라에서는 1932년 12월 일제 치하에서 캐나다의 선교의사인 셔우드 홀(Sherwood Hall)이 처음으로 씰 운동을 시작하였다. 셔우드 홀은 감리교 부부 선교의사 윌리엄 제임스 홀 (William James Hall)과 로제타 셔우드 홀(Rosetta Sherwood Hall) 사이에서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가난한 결핵환자들과 일반 서민들을 돌보고 깨우치려는 숭고한 사명감으로 캐나다에서 의학공부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1926년부터 해주구세병원에서 일하다가 1928년 해주구세요양원을 설립하였다.

 

문창모 박사

 

셔우드 홀은 1932년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면서 발행동기를 “첫째, 한국사람들에게 결핵을 올바르게 인식시키고, 둘째, 만인을 항결핵 운동에 참여시키는 것, 즉 씰 값을 싸게 하여 부자 나 가난한 사람이 모두 사도록 하고, 셋째는 재정적 뒷받침을 필요로 하는 결핵퇴치사업의 기금을 모으기 위해서였다” 라고 회상하였다. 당시 셔우드 홀과 함께 일하던 문창모 박사와 크리스마스 씰 위원회 집행위원이던 김병서 선생도 씰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32년 이후 1940년까지 9차례에 걸쳐 씰이 발행되었지만 태평양전쟁 발발 직전 셔우드 홀이 스파이의 누명을 쓰고 일본 헌병대에 의하여 강제로 추방, 정든 한국 땅을 떠나게 됨으로써 씰 발행도 중단되었다. 그의 헌신적인 노 력에도 불구하고 씰에 대한 당시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당시 씰 운동이 얼마나 어려웠던가에 대한 한 가지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있다.

결핵을 앓던 어떤 여인이 씰을 가슴에 붙이고 셔우드 홀을 찾아와 “선생님, 저는 씰을 이렇게 가슴에 붙였는데도 낫지 않습니다”라고 호소하였던 이야기는 씰 초창기의 일화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셔우드 홀은 1991년 4월 5일 캐나다 밴쿠버에서 98세로 타계하였으며, 유언에 따라 부모가 묻혀 있는 서울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해 9월 19일 부인 메리안홀(Marian Hall)도 같은 장소에 안장되었다.

 

 

 

8.15 이후의 크리스마스 씰 운동

 

김병서 선생

 

8·15 해방 후에는 1949년 과거 해주에서 셔우드 홀을 도왔던 문창모 박사가 주도하여 한국복십자회에서 씰을 발행하였고 1952년에 한국기독의사회에서 씰을 발행하였으나 크리스마스 씰 운동이 범국민적인 성금 운동으로 착수된 것은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면서부터였다. 그 후 대한결핵협회는 매년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였으며, 이승만 초대 대통령 때부터 매년 대통령을 비롯한 삼부요인은 물론 각계각층 인사와 학생 등 온 국민이 씰 모금운동에 기꺼이 참여함으로써 점차 결핵퇴치기금 모금운동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초창기에는 미8군 장병도 씰 운동에 동참하였다. 이와 같이 사회적인 씰의 인식도가 제고되면서 크리스마스 씰 이외에 1963 년에는 극장모금이, 1964년에는 고궁 입장료 첨가모금이 시행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고궁모금은 1971년, 극장모금은 1973년에 각각 중단되었다.

 

남해바다의 신비 1995년 씰 20종

 

1974년에는 행정개혁위원회의 건의로 크리스마스 씰 모금 허가 액수가 대폭 감액되고, 대신 체신부 주관으로 우표 첨가모금이 실시되었으나 한 번으로 끝났다.

1980년부터 씰 모금허가액이 다시 증가되면서 이에 따른 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씰 운동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게 되었다.

 

임금님 행차하셨네 2000년 씰 20종

 

1983년 대한결핵협회 창립 30주년을 맞이하여 ‘크리스마스 씰첩’을 발행하여 비매품으로 공급하는 한편 씰 수집에 열의를 가졌던 분들을 위해서 씰 수집 경진대회도 개최하였다.

1984년에는 우리나라 우표 100주년을 맞아 체신부가 10월 22일부터 10월 31 일까지 개최하는 국제 우표전시회에서도 과년도 씰을 일반에게 판매하여 씰 수집가의 수입열에 부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1988년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11월 3일부터 11월 8일까지 세계 크리스마스 씰 전시회를 개최하였으며 과년도 씰을 수집가에게 판매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한국 조폐공사에서는 화폐박물관 개관 때 크리스마스 씰 상설 전시대를 마련하여 한국 씰 역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대한민국 최초 우주인과 우주과학기술 2008년 씰

 

뽀로로 친구들이 함께하는 겨울 스포츠 2011년 씰

 

1989년에는 크리스마스 씰 모금의 주 대상인 학생들이 친근하게 부를 수 있도록 크리스마스 씰의 노래를 시인 구상 씨가 작사하고 길옥윤 씨가 작곡하여 1993년 창립 40주년 기념행사장에서 조선일보 소년소녀 합창단이 노래를 불러 갈채를 받기도 하였다. 1990년에는 지난해에 발행된 세계의 크리스마스 씰 영문판을 발간하여 IUATLD(국제항결핵 및 폐질환연맹) 회원국에 배포하였으며 일부는 IUATLD에 기금 확보를 위하여 기증하였다.

1993년에는「한국의 크리스마스 씰」도감을 발행하여 국내외 수집가 들의 수집욕구와 씰 수집에 대한 관심을 높였으며, 1999년에는 그동안 누락된 자료와 새로운 씰들을 보완하여 2판을 발행하였다. 또한 2003년에는 창립 50주년을 맞아「한국의 크리스마스 씰」3판을 발행 하였으며, 2010년에는 씰 도감을 구하고자 하는 수집가들의 요청이 이어져 네 번째로「한국의 크리스마스 씰」을 발행하게 되었다.

매년 IUATLD 연차회의 때 실시하는

크리스마스 씰 콘테스트에서 우리나라는

1988년, 1989년, 1990년, 1992년, 1993년,

1995년, 1996년 총 7회에 걸쳐 1위 입상을 하였고,

1987년과 2000년도에는 2위 입상, 1985년도에는

3위에 입상하여 다른 회원국들로부터 한국은

씰 콘테스트에 참가하지 말라는 권유를 받을 정도로

디자인과 인쇄기술의 우수성을 보여주었다.

 

출처

발행인

회장 : 경 만 호

발행일 : 2016. 3.

발행처 : 대한결핵협회

주소 : 서울시 서초구 바우뫼로 6길 57

전화 : 02-2633-9461

홈페이지 : www.knta.or.kr / loveseal.knta.or.kr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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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 blog.naver.com/knta_pr

이 책은 협회 역사 자료를 비롯해 여러 씰 수집가 분들의 원고, 자료들을

참조하여 제작되었습니다. 도움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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