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감상하는 자연, 건축, 예술 -3편
존재의 근원, 마음의 심연으로 향하는 길
거기 길고 긴 길 한쪽 거친 벽에, 갑자기 나타나는 가로로 긴 프레임이 뚫려, 그 프레임너머에 유채꽃과 제주바다와 성산의 풍광이 놀랍게 펼쳐져 있다. 그 사각의 틈사이로 바람과 빛이 소통한다. 그리고 노란색 야생화의 들을 너머 바다 위에 떠있는 성산일출봉을 조망한다.
일본전통정원의 차경기법 요소 ‘너머보기’와 ‘사이보기’ 특징을 보여주는 곳이다. 심호흡을 하게 되는 것은 필자만의 감성일까. 관광객들의 카메라가 이 장면을 담기 위해 분주하다.
동양미래대학교 건축과
이정미 교수
안도의 건축공간에서는 빈번하게 일본전통정원의 차경기법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일본전통 차경기법은 자연그대로가 아닌 자기지배 아래 길들이는 특징을 갖는다. 원경을 담장 같은 인공구조물들 사이에 두고 원경하부가 담에 의해 편집되는 ‘너머보기’, 벽이나 개구부를 통해 원경을 보는 ‘사이보기’, 상부의 매개물에 겹쳐서 보는 ‘겹쳐보기’, 내부와 원경사이에 중간영역을 차단시켜 육감을 통하여 인지하는 ‘간접보기’, 원경을 축소하여 내부로 도입한 ‘축소하기’기법들이 그것이다. 지니어스 로사이에서 이러한 기법들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정사각의 균질한 구조로 이루어지는 프레임의 공간내부는 비워짐과 채워짐의 관계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크고 작은 볼륨의 덩어리에 건축공간의 깊숙한 곳까지 외부적인 요소가 유입된다. 비워진 그리드 프레임으로는 바람과 빛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지역의 특수한 자연환경을 건물에 유입시켜 나가는 과정을 통해 건축을 육체화시키고자하는 안도의 의도를 볼 수 있다.
높은 담장의 긴 경사로를 따라 이제 실내 명상공간으로 진입이다.
진입로를 제외한 지하의 명상전시공간의 내부는 모두 노출콘크리트로 이루어진다.
자연의 빛은 사라지고 어둠 속 길 하단에 인공조명이 하나씩 길을 비춘다.
존재의 근원, 마음의 심연으로 향하는 길이다.
그 길을 따라 빈 공간을 지나면 미디어아트 작가 문경원의 작품이
세 개의 공간에 설치되어 있다.
먼저 ‘다이어리Diary’, 미디어아트가 빈 공간 한 벽면 가득 흐르고 있다. 제목이 일상을 적어가는 일기장이다. 다시 자연 현상을 생각하게 하는 영상이다.
나무의 생장과 소멸, 재생을 영상으로 표현한 것으로 앙상한 가지로 시작하여, 잎과 꽃이 피고, 점점 번성하다, 다시 하나씩 떨어지고, 사그라지고, 다시 피는 생명순환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것은 자연의 유한과 무한이 섞인 존재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두번째 작품은 ‘어제의 하늘’이다. 육면체 안에 원통형 공간을 레이어링한 전시공간으로 하늘풍경 영상이 원형바닥에 떠있다.사각의 대지와 원형의 하늘 공간에서 내부와 원경사이에 중간영역을 차단시켜 육감을 통해 인지하는 ‘간접보기’의 공간이다. 우주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감싸고 있는 세계. 시간의 경과를 담고 있는 하늘 위에는 풍경들이 거품처럼 떠돌고 그 원형의 영상 안에 서있는 자신이 있다. 찰나의 덧없음을 상징한다.
세번째 ‘오늘의 풍경’, 전시공간은 벽돌벽으로서, 벽면 일부가 사각프레임으로 열려 영상이 흐르는 가부좌 공간이다.
바깥 카메라를 통해 지하에서 보는 지금 이 순간의 바깥세상을 벽의 일부를 뚫어 이어준다. 성산일출봉의 일출부터 일몰까지의 실시간 풍경이 화면에 투사된다. 그 간접의 풍경을 통해 밖에서 보던 제주자연과 암흑의 공간에서 보는 현실이 대비를 이루며 초현실적인 감각에 빠져들게 한다. 원경을 축소하여 내부로 도입한 ‘축소하기’ 기법의 공간이다. 지금 이순간 존재가 어떤 것인지 되돌아 보게 한다. 그런 작품 속에서 가부좌로 있다보면, 현실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는, 우주 저 끝의 신비한 공간 속에 육체가 부유하는 듯한 느낌이다. 그 감흥의 여운은 오래도록 이어져 건물 밖으로 나온 뒤에도 한동안 숙연해 지는, 내부로 침잠해 간 공간들이었다.
자연을 전시한 명상전시공간 지니어스 로사이를 뒤로하고, 인공자연이 아닌 자연 그대로를 다시 만나는 글라스하우스의 2층공간에서 자연 그대로의 확 트인 제주의 원경을 즐기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한다.
2월호에 계속됩니다.
* 작가의 느낌을 여과없이 전달하기 위하여 문장 표현과 어휘선택을 다듬지 않았습니다.
-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