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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현 - 보자기를 통한 작품세계

보자기를 통해 소중한 메시지를 전해오고 있는 김시현 작가

김시현 金始炫 Kim Si Hyun ​ 지극히 한국적이고 여성적인 이미지인 보자기를 통해 소중한 메시지를 전해오고 있는 김시현 작가! ​ 이데아와 메타포! 고귀한 메시지! 김시현의 보자기는 행복을 품은 아주 특별한 선물로 줄곧 묘사된다! ​ 그의 보자기는 매우 화려하고 예쁘다! 화려한 색채와 장식적인 문양으로 보자기의 표피 아래 감춰진 조형적 구조와 보자기의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김시현! ​ 오는 10월 인사동에서 열리는 그의 서른 여섯번째 개인전 ‘소중한 메시지 展’ 준비에 여념 없을 그의 작업실을 찾아본다. 이미지 The Precious Message 90.9x72.7cm Oil on Canvas 2020-3 시각적 즐거움과 회화의 본질을 넘나드는 김시현은 인천대학교 서양화과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하고 개인전 35회와 초대전과 단체전 350여 회를 가진 바 있다.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NIKON D90 F4 1/125s 김시현 ​ 비엔날레 2009 광주디자인비엔날레-더할나위없이展 (광주비엔날레전시장, 광주) 2010 방글라데시비엔날레-‘신사실주의, 그 새로운 공간’(방글라데시, 다카) 2010 부산비엔날레-한·중·일 극사실작가展(부산시청전시실, 부산) 2019 청주공예비엔날레<기획특별전 3> Flag Art - “바람과 흔적” (청주시정북동토성) 아트페어 KIAF, SOAF, 화랑미술제, 서울아트쇼, 아트부산, 대구, 광주, 경주, 홍콩, 싱가폴, 대만, 중국, 말레이시아, 독일 칼스르헤, 프랑스, 마이애미, LA, 밀라노, 함부르크, 암스테르담, 부르셀 등 ​ 주요 작품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양평군립미술관, 주일 한국대사관저, 중동 예멘대사관,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저, 한남더힐커뮤니티센터, 바레인대사관 외 다수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Canon EOS 5D F4.5 1/100s ​ 중학교 미술 교과서에 작품 속 의미 찾기란 주제로 실려있는 김시현의 보자기! ​ 색깔과 모양이 다른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한 장의 조각보가 만들어진다는, 이어령 선생님의 저서 보자기 인문학의 표지디자인으로 실려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왔던 김시현의 보자기! ​ 궁중보자기의 예와 멋!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보자기에 싸인 소중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 어디선가 본 듯한... 눈에 익은... 오래전부터 보았던... ​ 일상에서 만날 수 있지만 일상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보자기 김시현의 보자기 철학을 살펴보자 - 편집인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보자기의 상징적 이미지를 통한 소통 방법 ​ 예술 언어는 문자 언어나 음성 언어가 표현하기 힘든 심미적이고 미묘한 인간 내부의 감성이나 사고 등을 전달하고 소통하는 데 활용되어 왔다. 특별히 회화와 같은 시각 예술을 살펴보면 선이나 색, 혹은 명암과 같은 조형요소 뿐만 아니라 그러한 조형요소가 만들어내는 형태나 이미지가 상징하거나 지시하는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사회적 의미나 심리적 정서까지 환기시키는 작용을 하기도 하는 것을 많은 미술작품에서 발견하게 된다. ​ - 중략 - ​ 보자기는 본래 단순한 실용 도구에만 그치지 않고 종교적 염원과 바램을 위한 주술적 도구이자 예절과 격식을 갖추기 위한 의례용 도구이기도 하다. 보자기를 살펴보면 천위에 복(福)이나 수(壽)와 같은 글을 넣어 행복과 장수를 비는 주술적인 소망을 담기도 하고 십장생, 용, 봉황 등과 같은 품위와 격, 그리고 멋을 위한 소재로 여러 가지 색채와 문양을 넣기도 한다. ​ 그러므로 보자기 그 자체가 기호와 상징, 그리고 색채와 장식으로 구성된 예술품이자 주술적 도구이며 예를 갖춘 특 별한 커뮤니케이션의 도구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 살펴보면 선물을 보낼때 선물에는 보내는 사람의 마음까지 담아 보냈던 것처럼 보자기라는 물건은 운반을 위한 수단이자 동시에 마음의 소통 도구였던 것이다. ​ - 작가노트<본인석사논문국문초록발췌>2010 - ​ \ 이미지 The Precious Message 145.5x89.4cm Oil on Canvas 2020-9 ‘보자기’의 표피 아래 감춘 조형적 구조에 대하여 ​ 작가 김시현의 작업에서는 화려한 색채와 장식적인 문양이 특징적으로 보이는 ‘보자기’의 이미지와 그 ‘보자기’ 안으로 무엇인가 양감만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형체가 드러난 ‘보따리’ 모양의 형상이 발견된다. ​ 한국적 정서가 담겨있는 ‘보자기’의 이미지와 문양은 지속적으로 한국 고유의 정서를 드러내는 특정한 시각적 신호를 발생시키고 있는데, 이와 함께 단순하고 소박해 보이는 ‘보따리’라는 모양새는 가방이나 상자 등 물건을 나르는 다른 여타의 용기와는 달리 내용물의 형상이 어느 정도 드러나게 된다는 점에서 마치 한국인들의 정서적 태도처럼 직설적이지 않지만 강하게 내면의 정서를 연결시키는 방식의 시각적 구조로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이는 작가가 작품 명제로 제시하고 있는 ‘precious Message’가 암시하는 것처럼 내용물이 직접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무언가 소중한 물건이 담겨 있음직한 상황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인 방법으로 보인다. 그런데 작가가 그려내는 시각적 상황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가는 그의 작업 과정에서 몇 가지 독특한 조형적 시도를 하고 있음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먼저 3차원 현실 공간을 지시하는 일루젼적 재현 공간과 평면적 지지체 공간 사이의 긴장과 균형을 이루어내는 조형적 관계성에 대한 것이다. ​ 사실 회화의 역사에 있어서 사실적 재현의 문제와 지지체 구조에 대한 문제는 오랫동안 중요한 논의 주제가 되어 왔지만, 여기서 작가 김시현이 채택하는 재현의 방법은 붓 터치 하나 없는 극사실적 표현과 터치가 어느 정도 살아있는 표현적 재현의 중간지점에 있음을 보게 된다. ​ 전자가 환영에 의해 지시되는 원본적 실제에 종속되는 재현적 표현물이라는 점에서의 예술품의 위치를 말한다면 후자는 원본적 실제와 관계하면서도 예술품 자체의 또 하나의 창조적 실제로의 새로운 원본적 위치를 점유하는 예술가의 창조물로서의 예술품의 위치를 확인하는 지점일 것이다. ​ 작가는 보따리에 쌓여있는 귀중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실제적 상황을 지시하는 회화적 재현을 시도하면서도 동시에 이 회화적 표현 자체가 귀중한 메시지 자체가 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 김시현의 작업은 한 대상을 극대화하고 자세한 묘사를 한다는 점으로 인해 일견 극사실주의, 포토 리얼리즘의 방식을 취하고 있어 보이지만 가까이 근접해서 작업을 관찰해 보면 작가는 붓 터치를 어느 정도 남겨두고 있으며 어느 정도 드로잉적 선묘의 느낌을 남겨두고자 하였다. ​ 사진적 극사실성 그 자체보다는 작품 내의 대상과 배경 공간과의 관계, 혹은 작품의 화면과 작품이 설치될 공간과의 관계와 같은 상호 텍스트적 호응 방식에 따른 이미지의 적절한 표현법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며, 극사실적 일루젼이 연출해내는 3차원적 환영공간과 2차원적 평면일 수밖에 없는 회화적 한계 사이를 적절한 균형을 갖고 유지할 수 있는 절충지점을 찾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이미지 The Precious Message 80.3x100cm Oil on Canvas 2019-18 이러한 긴장과 균형을 모색하는 작가의 독특한 경향은 2차원적인 상태인 ‘보자기’와 3차원적 상태인 ‘보따 리’의 관계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캔버스 내의 대상물과 배경 공간, 심지어는 캔버스 자체와 캔버스가 설 치될 전시 공간 사이에서도 일어나게 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작가는 때로는 캔버스의 하드엣지(hard edge)가 드러나는 모서리를 모두 제거해 버리고 보따리와 같은 대상물의 형상 그대로가 캔버스 모양이 되도록 대상물의 실루엣을 그대로 도려낸 형태의 변형 캔버스를 만들어 쓰거나 기존의 캔버스를 이용하더라도 보따리가 놓여 있을 만한 투시법적 배경 공간을 그려내지 않고 오히려 평면적이거나 장식적인 형태의 심리적 메타포 공간으로서의 배경을 대상물과 구별하여 등장시키기도 한다. ​ 회화작업의 지지체를 윈도우적 시각 구조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조형 언어의 상응되는 구조의 다른 한 축으로 보고자 하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3차원적 일루젼적 눈속임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2차원의 평면적 한계에 고착되지 않기를 원한다. ​ 3차원의 공간에 있었을 법한 귀중한 물건에 대하여 그 물건은 가려두면서도 화려한 천조각과 수로 장식된 ‘보자’로 덮힌 표면을 보여줌으로써 그 귀중한 물건의 의미를 극대화 하듯이 2차원의 캔버스 평면을 장식적으로 표현해낸 작업 행위를 통한 물감의 표피층 안에 환영적으로 담아낸 아우라적 실체를 감추면서도 회화적 표현의 화려함으로 그 잠재된 현장의 상황을 극대화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 이러한 회화적 표현 방식을 진행하는 과정, 즉 김시현 작가의 의미를 물질적으로 시각화시키는 태도에서는 또 다른 조형적 시도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마치 보따리의 환영적 공간을 지지하고 있는 보따리 안에 담겨있는 물체와 그 표피를 이루고 있는 보자기의 상호 텍스트적 관계 가운데서 의미층을 읽어갈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 내도록 하는 방식과 유사하게 현실 공간과 재현 공간이 관계 맺기를 시도하고 있는 점이다. ​ 이미지 The Precious Message 80.3x80.3cm Oil on Canvas 2017 사실 이 ‘보따리’라는 것은 그 안에 무엇이 담겨있는가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보자기’의 연장 지점일 뿐, 본디 그 구체적 형상이 정해진 바가 없다. ​ 그럼에도 한국인들에게 있어서는 누구나 ‘보따리’라고 하면 얇은 천 조각에 무언가 물건을 담아 천의 네 귀퉁이를 단단히 묶어진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하나의 영상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일 것이다. ​ ‘보따리’가 ‘보자기’의 표피를 갖고 있기에 표면상 ‘보자기’일 수밖에 없음에도 ‘보따리’라는 특정한 명칭으로 불리게 되는 것은 그 안에 담겨있는 물체의 모양에 지배를 받는 형태의 종속성으로 인함이다. ‘보따리’ 자체는 독립적 형상을 특정화시키기 어렵다는 이야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자기’의 보편적 형상을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은 ‘보자기’와 그 ‘보자기’ 안에 감싸진 내용물 간의 긴장감 속에서 ‘보따리’라는 물체의 전형적 형상을 떠올리게 되는 습관적 기억 재생 방식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작가 김시현은 바로 이 지점에서 화려한 문양의 ‘보자기’로 현란하게 장식된 표피적 상황을 그 안에 감추어진 물체의 형태에 의존하여 형상화된 ‘보따리’라는 오브제적 상징물과 교차시키면서 ‘보따리’라는 선물이나 생필품을 전달하는 도구의 개념을 넘어 정성과 마음 담는 도구라는 의미를 환기하고 음미해 볼 수 있는, 다시 말해 가시적 세계 이면에 담긴 비언어적 체계에 대한 조형적 표현 가능성에 대해 탐색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이와 더불어 이러한 조형적 장치를 강화하기 위한 도구로 보따리의 묶여 있는 부분에 장식적 보자기의 문양보다 더 장식적이라 할 꽃이나 수술, 비녀나 노리개, 화관이나 댕기머리 장식 등을 중복적으로 개입시키는 것 역시 교차와 중복 혹은 상징과 복선과 같은 조형적 어법을 만들어내는 구체적 방식일 것이다. ​ 이미지 The Precious Message 45x45cm Oil on Canvas 2019-7 이미지 The Precious Message 100x100cm Oil on Canvas 2019-17 결국 작가 김시현은 회화적 재현의 문제에 있어서 재현 대상으로서의 원본이라는 실체적 상황과 작가의 창작물로서의 원본의 실체적 상황에 대하여 긴장과 균형 관계 아래 양자를 연결시키는 시도를 통해 원본성의 의미와 회화적 재현에 대한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 방식을 던져주고 있다. ​ 또한 회화적 표현, 특별히 사실적 표현에서 표피적으로 재생되는 환영으로서의 공간 이면에서 아우라적 실체로 다가오게 되는 의미의 체계에 대한 관심에서 비언어적 영역인 정서와 심상의 세계에 대한 조형적 표현의 가능성에 대해 실험해 오고 있으며 이를 시각언어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의 한 방식으로 ‘Precious Message’라는 특정한 주제의작업들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 사이미술연구소 이승훈

My Dear 피노키오展

상상력이 좋아서 자꾸 거짓말하고 싶어요

My Dear 피노키오 展 - 상상력이 좋아서 자꾸 거짓말하고 싶어요 전시일시: 2020년 6월 26일(금)~ 10월 04일(일) 10:00~19:00 / 매주 월요일 휴무 전시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3층 제5전시실, 제6전시실 ​ 안심하고 재미있게 떠날 수 있는 My Dear 피노키오전 ​ 과거와 현대, 어른과 아이, 세계적 일러스트레이션 거장과 한국작가의 다양한 시각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세 계적인 권위 있는 상들을 수상한 여러 나라의 작가들이 함께 참여한 글로벌 전시이다. ​ 앤서니브라운展(예술의전당 최다관객상 수상)을 비롯한 에르베튈레展, 알레산드로 맨디니展, 스팀펑크아트展, 세계팝업아트展 등 최고의 흥행전시를 성공적으로 진행해 온 국내 최고 수준의 기획력을 가진 아트센터이다는 2020년 새로 선보이는 전시 이 열렸다. ​ <피노키오의 모험>원작과 재해석된 다양한 작품의 만남 ​ 100년이 넘는 세월의 시간동안 끊임없이 사랑받아 재 탄생되어 온 이탈리아 고전 문학작품 <피노키오의 모험>은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책으로서 현재까지 300여개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전 세계에서 8천만 부 이상 팔린 최고의 베스트 셀러이다. ​ 과거와 현대의 감성이 만나 새로운 피노키오의 모험을 선사하는 My Dear 피노키오展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그래미 어워즈 등을 비롯한 권위있는 상을 수상한 세계 유수의 작가 약 20명의 다채로운 작품을 회화, 영상, 대형 조형물, 그림책, 페이퍼아트, 팝 아트 등 다양한 작품으로 구성된다. ​ 알고 있던 피노키오 이야기와 색다른 점, 같은 장면에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된 작품에 신기함, 피노키오를 통해 자기반성과 삶에 성찰, 배움의 중요성에 대한 깨달음 등은 이번 전시에 매력을 더한다. 평일에 도슨트, 구연동화, 주말에 그림자극장과 창의예술프로그램 등 풍부한 체험에 알찬 전시로 알려지고 있다. ​ 오픈 후 “기억 속에서 아주 흐려진, 어릴 때 읽었던 피노키오를 떠올리며 새로운 피노키오까지 만날 수 있었어요.”, “그림뿐 아니라 책과 볼거리 영상까지 멋진 작가들의 작품과 즐길수 있어 어른도 아이들도 시간 보내기 좋았다”, “도슨트 설명도 좋았고 그림자극장도 좋았어요. 그림도 다양해서 볼거리가 많았어요." 등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전시 입구 70년 넘은 팝업그림책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전시연계프로그램 ​ 어린 친구들이 다양하게 참여할 수 있는 창의예술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다. 청각과 시각을 통한 체험뿐 아니라 소리로 내면적인 자기를 예술로 표현하게 되는 <에르베 튈레의 사운드 워크숍: OH!>는 프랑스 창의예술가 에르베 튈레의 Ideal Exhibition을 바탕으로 프랑스, 미국 뉴욕의 교육, 심리 및 언어 등 전문가들이 함께 개발한 창의예술프로그램이다. ​ 전 세계 첫 공개된 <에르베 튈레의 사운드 워크숍: OH!>는 주말 오후 2시에 만날 수 있다. 그 외에 , 영어로 진행되는 <로봇 피노키오>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부모들과 아이들의 기대를 받고 있다. ​ 전시 입장 전 마스크 착용 및 손 소독을 당부하고 창의예술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모든 어린이에게 안면보호 마스크까지 증정하여 코로나19 예방 수칙까지 철저히 진행되어 있으니 안심하고 신나게 즐길 수 있다. ​ ​ 나는 억제할 수 없는 에너지를 표출하기 위해 이 책의 그림을 그렸다. Alessandro Sanna 알렉산드로 산나 Alessandro Sanna 이탈리아 Italy(1975~) ​ 저자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알레산드로 산나는 어린이는 물론 어른을 위한 많은 책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현대 일러스트레이터 중 하나로 평가 받는 그의 작품에서는 자유로운 영혼이 돋보이고, 마치 살아있는 듯이 컬러가 번져 가는 수채화 기법이 특징이다. ​ 그의 작품은 리졸리(Rizzoli), 에이나우디(Einaudi) 등 유럽 최고의 출판사들을 통해 발표되고 있으며 베니티 페어 (Vanity Fair) 프랑스 에디션, 뉴요커(The New Yorker) 등 유명한 매거진과도 협업했다. 볼로냐와 베로나 미술원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 드로잉 교육에도 매진하고 있다. ​ 이미지 © Alessandro Sanna 이미지 © Alessandro Sanna 드로잉은 모든 것을 눌러 담은 상자가 아닌 열린 창이 되어야 한다. Guido Scarabottolo 구이도 스카라보톨로 Guido Scarabottolo 이탈리아 Italy(1947~) ​ 이탈리아에서 가장 독보적인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는 그는 이탈리아 출판 명가의 책과 표지에 꾸준히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고 있으며 12년동안 가운다 출판사(Ugo Guanda Editore)의 예술 감독으로서 발표된 대부분의 책을 디자인하고 그림을 그렸다. ​ 일러스트레이션 작업 외에도 책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으며, 현재 작가는 밀라노에 거주하며 창작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이미지 © Guido Scarabottolo 이미지 © Guido Scarabottolo 이미지 © Guido Scarabottolo ​ 피노키오는 위대한 모험 이야기이다. 피노키오는 본능과 이성의 충돌이다. Luca Caimmi 루카 카이미 Luca Caimmi 이탈리아 Italy(1978~) ​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화가로 활동하고 있는 작가는 회화, 조각 전시를 열며 이탈리아의 공방들과 함께 세라믹 조각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2009년 <유럽과 지중해의 젊은 작가전>에 참가했으며 2011년 제54회 베니스 국제 비엔날레의 <아카데미 파빌리온>에서 전시했다. ​ 안드레아 판치엔차상(Andrea Pazienza prize)과 볼로냐 아동도서전에 1998년, 1999년 입상했다. 모데나의 D406갤러리, 밀라노의 누아게스 갤러리 등 이탈리아의 저명한 갤러리 및 여러 출판사들과 협업하고 있다. 이미지 © Luca Caimmi 이미지 © Luca Caimmi 피노키오는 내게 분명 재 탄생, 그리고 아버지와의 재회를 향한 재미있고 심오한 여정이었다. Manuela Adreani 마누엘라 아드레아니 Manuela Adreani 이탈리아 Italy(1973~) ​ 2011년부터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을 시작하여 우리에게 친숙한 고전 작품에 그림을 그렸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 포스터 공모전에 입상했고, 2013년 피노키오 탄생 130주년을 기념해 피렌체에서 개최된 일러스트레이션 콘테스트의 수상자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 일러스레이션으로 영국의 권위 있는 케이트 그린어웨이상의 후보에 올랐으며, 2018년 아프리카 아동 도서상(Children’s Africana Book Award)을 받았다. 2019년에는 유네스코에서 공동 주최해 아르메니아에서 개최된 ‘동양과 서양을 잇다: 호바네스 투마냐와 동화 번역의 예술’에 참가했다. 이미지 © Manuela Adreani 이미지 © Manuela Adreani 서명할 수 없는 신비함을 머금고 있는 이 아름답고 위대한 동화책은 계속해서 우리 모두를 매료시킨다. Maurizio Quarello 마우리치오 콰렐로 Maurizio Quarello 이탈리아 Italy(1974~) ​ 작가는 1923년부터 1943년까지 이어진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권 시대가 이 책의 배경으로 삼기에 가장 최적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자유와 인권의 탄압으로 상징되는 “Ventennio”라고 불렸던 파시스트 독재 정권 치하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국민들은 엄격한 규범, 도덕성을 강요하는 억압적인 명령과 제한사항을 따라야 했던 시기가 피노키오의 모험 원작의 이야기는 이 역사적인 시절을 상기시켰다고 한다. 이미지 © Maurizio Quarello ​ 나만의 피노키오를 그릴 때 단순히 바보 같고 버릇없는 꼭두각시가 아니라, 책의 마지막에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소년이 되는 것을 염두하고 그렸다. Victoria Fomina 빅토리야 포미나 Victoria Fomina 러시아 Russia(1963~) ​ 세계 유명 출판사와 작업하며 50여권의 책에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렸으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열린 전시에 참가했다. 2003년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 황금사과상, 2017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글로벌 일러스트레이션 어워드 금상, 2019년 대한민국 나미콩쿠르 퍼플아일랜드상 등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상을 여러 차례 받았다. ​ 2020년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일러스트레이션 부문 후보에 올랐다. 현재까지도 일러스트레이션, 회화, 그래픽 및 디자인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미지 © Victoria Fomina 예술을 숙고하지 않고는 예술을 행할 수 없다. Ugo Nespolo 우고 네스폴로 Ugo Nespolo 이탈리아 Italy(1941~) ​ 1970년대 실험 영화 제작자로 인정을 받아 세계 주요 도시의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했고,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이 참가한 수많은 아방가르드 영화를 제작했다. ​ 미래파의 영향을 받은 작가는 디자인, 응용 및 상업 미술, 일러스트레이션, 패션, 오페라 무대 등 다양한 분야의 실험적인 창작 활동에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목재, 금속, 석재, 도자 등 다채로운 재료와 기법을 활용한 작품을 제작한다. ​ 작가는 과거를 잊지 않고 다시 방문해 재해석하고 인용하여 현재의 것으로 만들어, 새로운 삶을 불어넣고 숙고(reflection)의 예술품으로 승화시킨다. 이미지 © Ugo Nespolo 이미지 © Ugo Nespolo 안토니오 사우라 Antonio Saura 스페인 Spain(1930~1998) ​ 벨라스케스, 고야 등 스페인 거장들의 영향을 받은 사우라는 1947년부터 미술과 글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파리에 정착한 작가는 뱅자맹페레(Benjamin Peret)등 초현실주의 미술작가들과 친분을 쌓았다. 또한 스페인 독재정권에 맞서 정치논쟁에 참여하고 예술가로서의 활동을 이어 나갔으며, 출판과 무대 디자인 등 활동의 범위를 넓혀갔다. ​ 여러 고전과 책에 삽화를 그린 작가의 작품 중 <새로운 피노키오>의 일러스트레이션은 그를 대표하는 초현실주의 미술 스타일로 피노키오의 이야기를 해석한 기념비적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 이미지 © Succession Antonio Saura www.antoniosaura.org A+V Agencia de Creadores Visuales 2020 ​ 이미지 © Succession Antonio Saura www.antoniosaura.org A+V Agencia de Creadores Visuales 2020 ​ 로렌조 마토티 Lorenzo Mattotti 이탈리아 Italy(1954~) ​ 작가는 코믹북과 일러스트레이션에 평생을 바쳤고, 오늘날 해당 분야에선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인정 받고 있으며 애니메이션 감독으로도 활발하게 활동 하고 있다. 1993년 작품인 를 통해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 대상을 수상하였다. ​ 2000년에는 칸 영화제 공식 포스터의 삽화를 그리기도 했으며 2014년 루이비통 트레블 북 베트남 편을 작업했다. 또한 2014년<피노키오 : 당나귀 섬의 비밀>의 예술감독을 담당했다. ​ 이미지 © Lorenzo Mattotti 이미지 © Lorenzo Mattotti

김일해(Kim il hae) - 색의 유혹

빛과 색채를 가장 잘 이해한 화가

이미지 기다림 5F 2009 구상화가인 김일해는 풍경, 누드, 꽃 인물 등을 유화를 통해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 그의 작품은 누구라도 쉽게 감상할 수 있도록 자연, 건축물, 사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세 련되게 캔버스에 옮겨 놓는다. ​ 따라서 그의 작품은 사회적 비판에 초점을 맞추는 오늘날의 많은 작품들과는 달리 자연적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춘 심 미학적 접근방식으로 그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김일해 Kim il hae (1954~ 대구 출생) 영남대학교 미술대학졸업,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졸업 ​ 수상 오늘의 작가상 수상 한국미술작가상 수상 아시아 미술대상 수상 대한민국 예술상 (미술부문)수상 마니프특별상 수상 ​ 약력 개인초대전 50회 (1984~2019 뉴욕, 파리, 동경, 북경, 서울 등) 단체전 및 국내외 부스 초대전 800여회 출품 국제아트페어 30여회 참가(2002~2019) 대한민국 청년비엔날레 운영위원장역임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장, 운영위원장 역임 현 한국미술문화포럼 대표, 동방의빛-한·중·일교류전 회장 한국현대미술가협회(kama) 회장 이미지 for you 40p 2008 김일해의 예술 세계는 여인의 누드나 베니스의 산마르코 광장과 같은 친숙한 대상들에 대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특정한 감정들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어떤 특정 대상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은 그 대상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증가시킨다. ​ 김일해는 잘 알려진 대상을 작품의 주제로 삼고 있지만, 20세기 초 야수파 화가들이 사용했던 색상을 떠올리게 할 만큼 일상적인 색과는 거리가 먼 뛰어난 색상을 사용하여 평범한 주제를 재해석해내기 때문에 그러한 친숙한 대상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찾아낸다고 할 수 있다. ​ 그의 강렬한 붉은색, 짙은 녹색, 그리고 광채를 띈 분홍색은 일반 구상화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인상을 보여준다. 색은 안료만을 사용해서도 강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술의 가장 큰 자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칸딘스키의 작품을 통해 비록 특정한 사물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순수한 색을 사용하여 얼마나 생생하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 그 반면, 김일해의 작품에서는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사물에 어울리게 사용된 색의 강렬함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사용된 색은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김일해의 강렬한 감정의 표현에 대한 열정을 잘 보여준다. 이미지 for you-사루비아 50p oil on canvas 2011 김일해가 그리는 구름은 실제 구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선홍빛에 가까운 주황색을 띄지만, 이러한 구름은 너무나 현실적으로 묘사되어 그것을 보는 이들은 실제로 그러한 구름이 세상에 존재할 거라고 믿게 된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꽃을 한아름 안고 있는 소녀가 라벤더 색의 모자를 쓰고 있는데, 소녀가 안고 있는 꽃들은 붉은색, 주황색, 흰색이 조화롭게 표현되었다. ​ 김일해는 이 소녀의 얼굴을 붉은색, 주황색, 그리고 분홍색으로 표현하여 그의 회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작품뿐 아니라 김일해의 다른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이러한 표현 방법은 그의 작품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그의 색에 대한 감각은 자연의 예술품인 꽃에도 믿기 어려울 정도의 강렬한 색조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 이미지 rose garden 315x190cm oil on canvas 2010 ​ 예술가로서의 김일해는 우아함과 에로틱한 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누드 작품을 통해 독특한 감성을 보여준다. 갈색과 황갈색을 배경으로 누드의 모습을 한 세 여인을 그린 작품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작품에서 한 여인은 등을 앞으로 하고 왼쪽에 서있다. ​ 그녀의 몸은 사실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완벽하게 아름답다. 또 다른 두 여인은 무언가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있는 듯 보인다. 그 중 한 여인은 옆으로 서서 자신의 팔과 손은 등을 보이고 있는 다른 여인의 어깨에 올려놓고 있다. 차분하고 우아한 분위기 때문에 이 작품을 보면서 마치 그리스의 여신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 김일해 화백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가 사용하는 작품의 언어는 서양의 예술과 동일하다. 여인들의 몸을 정확하게 그려낸 것을 보면 원래 서양의 예술 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여 아시아로 전파된 제도술과 해부학을 김일해가 잘 학습했음을 알 수 있다. ​ 또 다른 작품에서는 머리띠와 고리모양의 귀걸이를 하고 있는 묘한 매력을 풍기는 젊은 동양 여인의 갈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여인은 가슴과 엉덩이, 허벅지 바깥쪽을 드러내면서 팔로 머리카락을 들어올리고 있다. ​ 김일해의 작품에서 에로틱한 면을 표현하고 있는 선홍색의 풍성한 꽃은 여인의 갈망을 표현하고 있다. 여인의 몸은 일반적으로 선홍색과 주황색으로 표현되며 몸의 측면과 오른쪽 다리는 햇볕에 노출되도록 표현된다. 김일해 화백이 그리는 여인은 너무나 묘한 매력을 풍긴다. ​ 드가와 보나르의 누드 작품과 김일해의 작품과는 주제적인 연관성이 있지만 김일해 화백은 비유적 표현과 갈망이라는 주제를 자신만의 색깔로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다. 확 트인 들판의 나뭇가지에서 서로 바짝 다가 붙어있는 불그스름한 주황색을 띈 두 마리의 잉꼬를 그리고 있는 작품을 통해 감성이라는 주제를 잘 표현하고 있다. ​ 물론 사랑이 사람들뿐 아니라 자연에서도 존재한다는 주제는 분명하다. 감성이란 주제에 대해 좀 더 살펴보기 위해 아직 여인이라고 하기에는 어려 보이는 생각에 잠긴 소녀의 그림을 예로 들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소녀는 머리를 묶고 있으며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 소녀는 왼손으로 턱을 받치고 있는데 색상이 흥미롭게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흰색 셔츠와 회색 스카프는 중성적 색상의 영역을 형성하며 주황색 배경과 갈색, 주황색, 그리고 황갈색을 띈 소녀의 얼굴과 손은 대조되어 뚜렷하게 드러난다. 이미지 (大)-그해겨울162x228cm 2010 그의 작품에서 알 수 있듯이, 김일해는 감성적 진실이라는 주제를 표현할 때 최고의 작품을 그려낸다. 모노톤으로 풍경을 그린 작품들은 그의 뛰어난 색감은 절제되었지만 또다른 면에서 그의 기질에 가장 잘 맞는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색에 대한 놀라운 감각은 작품 속에서 표현될 수 밖에 없다. 꽃과 새를 그리는 것은 누드의 여인들을 그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생한 색조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에서 우리는 마치 어느 비오는 겨울날 산마르코 광장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왼쪽 앞부분에는 연인 두 쌍이 우산을 쓰고 서로 감싸 안은 채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다. ​ 왼쪽 끝으로는 흰색으로 표현된 물이 보이며, 멀리 보이는 건물들 앞에 곤돌라가 떠있다. 이 작품에서는 곤돌라 위 왼쪽 편에 떠 있는 구름을 제외하고는 흰색의 물이 유일하게 밝게 묘사된 부분이다. 그 외의 모든 것은 흐릿한 회색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어두운 회갈색이 우울한 감성을 더해준다. 이 작품은 김일해가 정교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그리고 싶은 충동을 억제했기 때문에 더욱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 유명한 건축물을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인 동시에 이 작품은 비오는 날을 신비하면서도 매력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여기에 그려진 건축물은 작품에 짜임새를 부여하며, 대부분의 회색 색상은 그의 다른 작품에서 자연과 여인들을 표현할 때 사용했던 회색에서 찾아볼 수 없는 좀 더 차분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 김일해는 구상화가로서의 자신의 재능과 감성을 유감없이 최고조로 발휘하여 뛰어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그것이 우리가 김일해의 작품에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 -조나단 굿맨(뉴욕 미술평론가) 이미지 for you 30F2010 oil on canvas (2) 오히려 나는 일찍이 피카소가 "마티스가 죽은 후, 진정으로 색채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화가가 샤갈이다. 르누아르 이래 샤갈처럼 빛을 잘 이해한 화가는 없다." 고 극찬 한 것처럼 김일해야 말로 우리나라에서 빛과 색채를 가장 장 이해한 유일한 화가가 아닌가 생각한다. ​ 모든 풍경을 서정적인 감성으로 풀어내는 화가 김일해, 그는 빛과 색채를 특유의 풍부한 시적 분위기와 감각으로 독자적인 화풍을 이룩하고 그 자신도 열광적으로 빛과 색채 속에서 놀아난, 우리 시대의 진정한 구상화가이다. -김종근(미술평론가) 이미지 봄날은간다 150p oil on canvas 2012 이미지 이스탄불의밤 50F 2008

김재현(金載鉉) 바다로 회귀하다

젤제된 선과 색채의 내면화

김재현(金載鉉) 바다로 회귀하다 나의 작업은 담양 귀촌으로부터 출발이다. 그 안에서 끊임없이 솟아오른 나의 삶의 여정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아름다운 메타세쿼이아 길을 걸으며 떠오른 수많은 영상들, 연꽃처럼 겹겹이 에워싼 산, 들, 숲을 언제나 포근하게 감싸주는 덕곡, 그리고 철 따라 속삭이는 선과 색의 면들... 늘 함께하는 자연은 나에게 감동이다. 멀리 노적봉이 보이고, 대숲향기, 소리, 거기에 서있는 메타세쿼이아의 그림자, 그리고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것들이 화폭으로 구성된다 김재현 Kim jea hyon 현 백제예술대학교 총장 작품소장 광주시립미술관 백제예술대학교 도서관 벽산블루밍(광주운암동) 안성아양지구 광신프로그레스 광주, 서울 개인소장 개인전 2018 insaart center(인사아트센터) 2006 제2회 공간과 물성 작품전(Nine Gallery) 2001 제1회 Space(Windmill of my mind) 절제된 선과 색채의 내면화 -고즈넉한 남도미학의 회귀적 어법 김 병 학 (조선이공대학교 외래교수 문학박사) 남도의 서정적에 세례 받다 김재현은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다. 백산면(白山面)은 조선시대에는 고부군 거마면으로 동학농민운동의 근거지이며, ‘흰 두루마리를 입고 있는 사람이 많아 흰 산(白山)’이라 명명되었다. 평야지대에서 전형적인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백산 중,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아름답게 펼쳐진 자연의 모습에 동화되며 성장했다. ​ 신작로에 기다랗게 늘어선 백지나무를 보고 원근법의 조화를 보았고, 시골 아낙네들이 농번기 철을 맞아 새참을이고 분주히 걸어가는 정다운 모습에 그는 관계를 알았다. ​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아버지는 나락창고에 손수 전깃불을 달아주고 석고상을 설치해 주어 창고 안에서 데생을 알아갔다. 그림에 대한 열망을 이어가고자 고교시절 대학입시를 앞두고 전주의 서양화가 박남재 선생의 화실에서, 그분의 권유로 디자인을 전공하게 되었다. ​ 디자인 전공과 치열한 삶 내가 김재현을 만나게 된 것은 1974년 대학새내기 때로 올해로 사십사 년이 된다. 대학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면서 캠퍼스에서 만나 정감이 두터워진 인연으로 2학년 때는 지산동 자취방에서 함께 생활하기도 하였다. 그 이후 오랜 교분을 통해 나는 그의 치열한 삶과 예술가적 기질을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 그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시골출신으로 언제 만나도 반갑게 대해주며 향토적 정감을 가진 온화한 성격과 점잖은 말투, 그리고 불의에 저항하는 동학인의 후예다운 기질도 지니고 있었다. ​ 대학 졸업 이후, 12년 동안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충장로를 중심으로 한 상업공간과 주거공간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일에 치중하면서 치열한 삶을 살아왔고, 현재 백제예술대학교 디자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절제된 선과 색채에 대한 갈망 예술은 인간의 직관으로 표출되는 미감을 표현하는 문화적 현상이다.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고 마음속에 잠재하는 예술적 소양을 개발하기 위해 때로는 미련할 정도의 외길을 고수하며 작품을 제작해야 한다. 그는 고교시절 그림에 대한 갈망을 잊고 디자인 전문가로서 명성과 후학에 대한 일만 충실히 하였건만, 세월은 내면에 잠재된 그림을 그리고 싶은 의식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 2007년부터 10여 년 동안 끊임없이 절제된 선과 색채에 대한 갈망으로 내면화 작업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김재현은 작가로 중량감 있는 작품을 만들어 고정관념을 깨는데 성공했다. 회화의 기초인 인체드로잉을 섭렵하여 탄탄한 기반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그림을 시작하면서 남도의 따뜻한 정을 표현하였다. ​ 남도의 산천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논밭에서 땀 흘리며 살아가는 농부들의 삶 속에서 강렬한 원시적 생명력의 건강함을 발견하였다. 고창, 부안 등 시골에서 붉은 황톳빛을 발견하고 원시적 생명성이 넘치는 남도의 색채를 화폭에 담아냈다. 이러한 그의 상상력은 농촌사회의 건강한 공동체 문화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소중한 전통적 가치가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과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황폐화되어감을 안타까워한 데서 출발한다. ​ 자연주의자로서 그가 즐겨 그린 전형적인 시골의 마을 풍경과 산, 골짜기, 숲 등 자연의 풍요로움과 황톳빛이 주는 강렬한 생명력은 자연 그대로의 존재 안에 들어있는 아름다움을 추구한 것들이다. 특히 그의 밝고 투명하며 빛나는 색채는 생명력이 넘치고 감각적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고 조화롭게 표현하는데 크게 작용하고 있다. ​ 고즈넉한 남도미학의 회귀적 어법 그의 학창시절 고향산천을 떠올리며 담양 덕곡에 귀촌하여 ‘방앗간’을 그의 작업 공간으로 꾸미고 주변에 있는 당산나무와 대나무밭을 가꾸고 텃밭을 일구며 아내와 함께 행복한 노후를 꿈꾸고 있다. 그러면서도 항상 그의 머릿속을 맴도는 주제는 담양의 상징인 ‘메타세쿼이아’에 천착해 있다. ​ 친환경 웰빙단지로 죽녹원과 함께 가장 가보고 싶은 담양 ‘메타세쿼이아’를 어떻게 회화적 이미지로 옮겨놓을까를 상상해 본다. 고즈넉한 남도미학의 회귀적 어법으로 삶의 자세와 철학이 고스란히 작품에 담겨 질박함과 잔잔함으로 새로운 희망을 부여하고자 한이와 같은 생각은 그의 화가로서의 삶의 태도와 일관된 작품세계를 명징하게 보여주고 있다. ​ 그에게 바람이 있다면 은퇴 이후에도 이와 같은 욕망이 실현되어 미래에 ‘김재현’하면 ‘메타세쿼이아 화가’로 자리매김 되길 소망한다. 40여 년의 기나긴 여정에서 회화에 대한 열정으로 오뚝이처럼 우뚝 서 ‘바다로 회귀한’ ‘김재현 개인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그를 사랑하는 감상자들과 함께 마음껏 영광과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 ​ ‘바다로 회귀하다’ 장 경 화 (전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문학박사) ​ 미술에 입문, 두 가지 길을 걷다. 전북 부안에서 출생한 김재현, 그는 지역의 고등학교를 거쳐 미술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후 디자이너(인테리어)로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현재는 대학의 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러한 그가 회화(페인팅) 전시를 한다. 크게 보면 같은 시각예술의 장르로 이해되지만 사실은 또 다른 길이다. ​ 그는 대학입시를 앞둔 고교시절 박남재 선생의 “그림을 그리면 배가 고프니 대학에서는 디자인을 전공하라”는 말씀에 디자인과에 입학하였다. 이후 45년이라는 시간을 디자인이라는 울타리 안에 외도하지 않고 후진양성과 함께 디자인 현장에서 치열한 시간을 보내었다. 그래서 한국디자인계에서는 그의 명성이 자자하다. 그러나 자신의 뇌리 한구석에 늘 잔재해있는 그림에 대한 열망을 감출 수 없었다. 그림은 마약과 같은 것일까? ​ 10년 전, 그림 그리고 싶은 열망을 더는 억제할 수 없어 회화의 기초(인체 드로잉)를 시작하였고 7년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유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동시에 시골집을 구해 그림을 그리는 즐거움에 날이 밝아오는 것을 모르고 캔버스에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리기를 반복하였다. 이제 그는 시골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자연을 스케치하고 조형과 재료의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 ​ 질박한 서정의 바다로 담양에서 고향의 정감을 느낀 김재현은 손님이 오면 뒷밭에 야채를 다듬어 쥐어주어야 편해지는 고즈넉한 정을 가지고 있는 시골사람으로 주변사람들과 나누는 삶이 편안하다. 각박한 도시에서 세련된 디자이너로 치열하고 화려한 삶을 살아왔어도 본성은 감출 수 없듯이 그의 정서는 언제나 고향 회귀였다. 고향으로 돌아가 텃밭을 일구면서 그림을 그린 것이다. 그에게는 시골이 고향이기 때문이다. ​ 그는 이제 적극적으로 현대사회와 인간의 관계 속에 갖추어야 하는 덕목과 가치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으로 누려야 할 따뜻한 삶과 천착하는 가치는 바로 향토적 정서로 생각하고 발언한다. 가난하지만 서로 참견하고 손잡아 주고, 살을 부대끼며 함께 살아왔던 시골고향의 삶이야말로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만이 가로놓여 있는 이 시대가 되새겨야 할 가치라는 사실을 예술로 담아내고자 한다. ​ 그의 기억에 남아있는 고향 시골의 고즈넉한 풍경, 그 속에서 어우러진 질박한 서정적 경험이 현대인의 삶의 보편 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람의 삶에 대한 희망과 따스함을 발견하는 것, 그의 예술의 출발점이자 목표지점이다. ​ 이렇듯 그는 자연과 함께 어울리는 삶,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지 않고 존중하며 상생의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그래서 그의 성품은 온화하고 정이 많으며, 따라서 작품 역시 투박한 남도의 멋과 소박한 인정이 넘치는 것이다. 예술은 작가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 그의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소재는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 마을 어귀의 ‘당산나무’, ‘마을 풍경’, ‘산, 계곡’ 등이다. 매일 접하는 담양의 평범한 마을로 온화하고 따뜻한 풍경이다. ‘메타세쿼이아’ 연작은 그의 기억 속에 잠재된 어린 시절 고향의 풍경, 늦은 오후 일을 마치고 플라타너스의 긴 그림자를 이끌고 걸어오시는 어머님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 그러한 기억의 하나하나는 미학의 아우라가 되고 감정이입 되어 캔버스에 투박한 미학적 어법으로 되살려 내고 있다. 그의 캔버스 화면에 조형미와 붓놀림, 사용되는 색채들이 예사롭지 않다. ​ 캔버스 평면에 마을과 메타세쿼이아 길, 산과 계곡, 당산나무와 마을 길 등 감각적으로 순발력 있게 작동되어 세련미가 돋보이는 것은 아마도 그의 오랜 시간 디자이너로서의 조형감각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 이와 함께 붓놀림과 색채를 만들어 내는 감각 역시 조형미와 어울려 남도미학의 세련미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가 고교 시절 그림을 그렸던 기억, 주변화가의 그림 읽기, 오랜 시간 동안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경력은 단 기간에 완성도 높은 작품을 생산하는 성과를 올리는데 부족함이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 예술에 있어 감동을 구현하는 도구는 서정성에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남도 풍경의 고즈넉하고 정스러움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마치 기억의 창고 속에서 울리듯 서정의 감동은 투박한 형식미학으로 드러내고 있다. 대담하고 세련된 붓놀림과 면 구성과 색채에서 남도의 투박한 시골 사투리 같은 잔잔한 정서에 세련된 색감의 만남은 절묘하다. ​ 진부함의 새로운 접근 김재현은 예술을 통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우리의 삶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도시에서 시골로 집을 옮겨 텃밭을 가꾸고 수확한 조그마한 정성을 이웃과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자연주의자이다. 그의 이러한 삶의 자세와 철학이 고스란히 작품에 담겨 질박함과 잔잔함으로 발언하고 있다. ​ 그의 작품은 투박한 남도적 서정의 형식으로 삶을 캔버스에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은 과거 1970년대 향토성으로 흔히 떠올리는 회고적이며 복고적이다. 그래서 흔히 진부하고 낡은 그림으로 치부하거나 소홀히 다루기가 쉽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또다른 층위를 지니고 있어 보인다. 그건 아마도 그가 디자이너로서 조형, 색채, 붓놀림 등의 감각이 작동되어진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 이렇듯 고향은 누구에게나 간직하고 있는 과거 기억에 존재해 있는 이미지에서 출발하나 김재현의 고향은 현재의 서사적 이미지들과 중첩되어 캔버스에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시골에서 텃밭을 가꾼 아낙네가 금방이라도 마을 어귀로 뚜벅뚜벅 걸어 나올 듯하다. ​ 늦깎이 화가로 첫 번째 회화전을 개최한 김재현은 7년 전, 캔버스를 처음으로 마주하였다. 40여 년간 미루었던 캔버스 앞에 다시 서는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예술의 고향으로 회귀의 도전을 시작하였다. 오늘도 담양의 시골집에서 텃밭을 일구며 고즈넉한 남도미학의 회귀적 어법으로 화폭에 담아내고 있을 그에게 한없는 존경과 부러움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 바라보면 그 안에 있다. 녹색은 자연을 내포한다. 나무 사이에 흰빛을 응시하여보면 메타세쿼이아 전체는 평면으로 보인다. ​ 이미지 파란 마음(Coração azul) 116x73cm, Acrylic on canvas, 2018 이미지 어느 가을날(Qual dia de outono) 53x65.2cm, Acrylic on canvas, 2018 이미지 붉은 삼봉산(Montanha Sambong Vermelha) 53x65.2cm, Acrylic on canvas, 2018 이미지 붉은산(Montanha vermelha) 53x65.2cm, Acrylic on canvas, 2018 이미지 메타세쿼이아 아래(Sob Metasequoia)72.7x60.6cm, Acrylic on canvas, 2018 예술에 있어 감동을 구현하는 도구는 바로 서정성에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남도 풍경의 고즈넉하고 정스러움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마치 기억의 창고 속에서 울리듯 서정의 감동은 투박한 형식미학으로 드 러내고 있다. 대담하고 세련된 붓놀림과 면 구성과 색채에서 남도의 투박한 시골 사투리 같은 잔잔한 정성에 세련된 색감의 만남은 절묘하다. ​ 고즈넉한 남도미학의 회귀적 어법으로 삶의 자세와 철학이 고스란히 작품에 담겨 질박함과 잔잔함으로 새로운 희망을 부여하고자 한 과정에 의의를 둔다. ​ 이미지 연날리는 날(Kite voando dia) 72.7x72.7cm, Acrylic on canvas, 2018 이미지 하얀 구름(O caminho da memória) 73x116cm, Acrylic on canvas, 2018 이미지 걸어가는 길(A maneira de andar) 73x116cm, Acrylic on canvas, 2018 이미지 가버린 메타세쿼이아(Metasequoia ido) 73x116cm, Acrylic on canvas, 2018 이미지기억의 길(O caminho da memória) 73x116cm, Acrylic on canvas, 2018 이미지 꽃다발 되어(Sendo um buquê) 72.7x72.7cm, Acrylic on canvas, 2018 회귀의 원동력은 그러한 것들 속에 선과 면과 색을 일상적이지도 않고 모호하지도 않으며 조형작업으로 끝없이 반복되는 나만의 절제된 평면으로 노닐게 된다. ​ 질박한 서정의 바다로 그 평면이 주는 에너지. 남도미학이 희망이고 나의 삶의 노래이다. ​ 고즈넉한 남도미학의 회귀적 어법으로 삶의 자세와 철학이 고스란히 작품에 담겨 질박함과 잔잔함으로 새로운 희망을 부여하고자 한 과정에 의의를 둔다.

임남진(任男珍) Lim, Nam-jin

상식이 통하지 않고 전복되는 부조리한 현실 세계... 현실 세계의 논리와 힘!

이미지 오월감모여재도-義 141x71 한지채색 2009 우리는 현실을 통해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행동에서 불합리한 것을 본다. ​ 현실의 부조리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균형감각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며 그것은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과 ‘제정신’이라는 것을 반증한다. ​ 현실의 삶을 대상으로 인간 삶의 가치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랑, 혼돈과 갈등으로 뒤섞인 삶에 얽힌 희비 속에서 우리 시대의 따뜻하고 건강한 미감을 되찾고 싶다. 임남진 1970 광주출생 1995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졸업 ​ 작품소장 광주시립미술관 (주)골프존본사 (주)중흥건설, 나주혁신도시 직지사성보박물관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등. 개인전 ​2019 애연(僾然)_운우지정(雲雨之情) (예술공간 집,광주) 2018 ‘Still Life_Bleu’(양림 미술관, 광주) ‘스틸 라이프’展 (G&J광주전남갤러리, 서울)외 다수 이미지 삼불원-우리들의 정원 110x190 한지채색 2017 이미지 풍속도2 220x240 한지채색 2006 예술의 거리 - ‘뒷방’ ​ 철없어야 예술 한다는 선배들의 말에 철없던 20代 때부터 지금까지 드나드는 이곳은 광주 금남로 뒤편 예술의 거리 ‘영흥 식당’이다. ​ 해마다 ‘오월’이면, ‘희망과 약속의 힘’을, ‘사랑과 우정과 믿음’을 보여주고 말없이 묵묵히‘길’을 밝혀주던 “사람들의 공간”이다. ​ 스스로 져야 할 각자의 ‘짐’들을 안고 막걸리와 소주 몇 잔에 ‘꿈 꿀 자유’를 허락했던 곳이다. ​ 마치 공간과 시간이 폐쇄된 세계처럼 밤낮은 물론 과거와 현재가 혼재된 유일한 공간이 아닌가 싶다. ​ 그 주변의 막걸리 애호가들과 그림 그리는 화가들, 사회 활동가들, 잡다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 희비(喜悲)가 교차하고 술의 힘을 빌려 새로운 상황에 대한 불안과 살아야 할 이유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헤매고, 헤매던 사람들에게 ​ ‘불멸의 파라다이스’처럼 육체적, 정신적 피난처로 모두가 ‘하나’가 되었던 곳이 영흥식당이다. ​ 지금도 가끔 이곳을 찾는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에 머물고 싶거나 잊혀진 사람들과 희미해져 가는 꿈들을 기억하며 불멸의 ‘희망’을 꿈꾼다. - 임남진의 작업노트 중에서 이미지 든자리 난자리, 87x108cm, 한지에 채색, 2019 이미지 Holidays 100x100 한지채색 2018 상식이 통하지 않고 전복되는 부조리한 현실 세계... 현실 세계의 논리와 힘! ​ 권위라는 것. 긍정의 외피를 쓴 여러 현상(진실, 정의, 민주, 신뢰, 희망…)으로 작동하는 말들은 나에게 설득력이 없다. ​ 말로는 민주주의, 불의에 대한 저항을 외치면서 실제 삶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고 바르지 않은 모순들을 보면서 번지르르한 말들이 실은 가상이자 허상의 세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이렇듯 나에게 그림은 허황된 것이 아니라 현실과 삶을 해석하는 다른 버전의 설명이다. ​ 현실을 묘사하고 보여주는 방식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과 삶을 해석하는 데 있어 단 하나의 정답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미지 낮술 35x44 쪽물염색비단채색 2009 지난날 나의 작업은 어둡고 관조적이며 비관적이었다. 내 안에 있는 어두운 감정과 싸우기 위해서 토해내듯 작업을 하였다. ​ 썩은 세상에 일조하는 일 말고 살아갈 세상을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만들기 위해서 뭔가 다른 표현방식으로 그려야 한다. ​ 돈이 최고의 잣대가 된 기성 사회에 대한 나의 저항이자 복수이다. ​ 각박하고 잔인한 현대사회 안에서 우리가 인간답게 존재하기 위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인간에 대한 예의 혹은 정신성을 담아내는 일이다. ​ 이미지 달 속의 달 100x100 한지채색 2017

이이남 LEE LEE NAM 뉴미디어 아티스트 - 2편

살아있는 그림 (les peintures vivantes)

살아있는 그림(les peintures vivantes) ​ 광주 토박이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 그의 작품은 여타의 미디어 아티스트 작품과 달리 대중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 와이? 왜 그의 미디어 아트가 대중으로부터 주목을 받는 것일까? 왜냐하면 그는 대중의 코드와 동양·서양의 코드를 읽어내는 ‘눈’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미디어아트는 현실과 가상인 두 현실이 공존한다. ​ "그러나 나는 시뮬라크르(가상) 작품을 통해 진리를 드러내고자 한다." ​ 왜 사람들은 진리를 추구하는가? 에 대한 물음은 ‘진리의 사유’에 대한 지평을 열었다. ​ 진리를 깨우칠 때 우리는 두려움·욕망·불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 “내가 발견한 진리는 예술작품으로 변형된다. ​ 나의 작품은 감성을 자극하는 것을 넘어서 내게 다가온 숭고함을 구현하고 있다." 류병학(미술평론가) 이미지 다시 태어나는 빛 - 2019 (Reborn Light - 2019) 12min 30sec Beam Project 2019 ​ 이이남 2019 세계수영선수권 대회 개회식 피날레 미디어 아트 감독 ISEA 국제전자예술심포지움 개막식 미디어 감독 ​ 개인전 (52회) 2019 ‘다시 태어나는 빛 – 뿌리들의 일어섬’ IESA대학, 파리, 프랑스 ‘이이남, 빛의 조우’ 서울식물원, 서울, 한국 ​ 주요전시 2019 ‘Flim & Arts’, 뿌리들의 일어섬 전, 스타시네마, 테이트 모던, 런던. Artificial Intelligence ‘Hyper-Intelligence’ Mr. Media Lab 콜라보전 서울, 한국 ​ ‘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시간의 이미지 장치’ 전, 국립현대 미술관, 한국 ​ 작품소장처 ​토마 파운데이션(미국), 지브라스트라트 미술관(벨기에), UN본부(미국), UN사무국(미국), 아시아 미술관(샌프란시스코), 수닝예술관(중국), 예일대학교(미국), 워싱턴 주미한국대사관(워싱턴), 후진타오 영부인(중국),국립중앙도서관(서울,한국), 인천국제공항(인천,한국), 리움미술관(서울, 한국), 한미미술관(서울,한국), 컬렉션 솔로(마드리드,스페인), 아랍에미리트 전 자이드 대통령 영부인(아부다비,아랍에미리트) 여기서 말하는 대중의 코드와 동양/서양의 코드란 대중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동〮서양의 명화를 차용한다는 것에 국한 되기보다 그 동〮서양의 명화에 대한 현실인식을 관통한 탁월한 분석력을 뜻한다. 필자는 이 점에 대해서 구체적인 작품을 사례로 들어 언급하도록 하겠다. 그러나 필자가 그의 일명 ‘디지털-명화’를 언급하기 위해서라도 그의 디지털-명화가 태동하게 된 초기 작업을 살펴보아야만 할 것 같다. ​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은 광주 조선대와 동 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그는 졸업 후 조각 작품으로 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과 전국조각가협회 특별상도 받았다. 그런 조각가 이이남을 미디어 아티스트로 전이시킨 ‘사건’은 무엇일까? ​ 그가 1997년 순천대 애니메이션 학과에서 미술해부학 강의를 맡았을 때, 학생들이 찰흙으로 스톱 애니메이션을 작업하는 것을 보고 ‘움직이는 조각’에 삘이 꽂힌다. 그는 곧 17인치짜리 작은 모니터를 구입해, 그의 전공인 조각을 살려 클레이스톱 애니메이션, 즉 ‘움직이는 조각’ 영상을 만든다. ​ 1998년 제작된 이이남의 클레이아트 애니메이션 <4학년>은 플라스틱에 담겨있던 찰흙 덩어리로 당시 순천대 애니메이션학과 4학년 학생들을 모델로 삼아 제작된 작업이다. 찰흙 덩어리로 만들어진 남학생은 다시 찰흙 덩어리로 돌아가 곧 여학생으로 변신한다. 물론 이이남은 찰흙 덩어리로 학생들 이외에 다양한 동물들(개, 고양이, 호랑이)도 만들었다. ​ 특히 호랑이가 자신의 꼬리를 잘라 먹는 장면을 보면 폭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찰흙 스톱 애니메이션은 이이남의 작업에 큰 변화를 주었다. 이를테면 이이남은 찰흙 스톱 애니메이션을 통해(이전의 ‘무거운’ 조각에서 해방되어) ‘가볍게’ 작업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이다. ​ 여기서 말하는 ‘가벼움’은 우리 상식을 뒤집는 ‘유머감각’을 뜻한다. 그 ‘가벼움’은 그의 디지털-명화에서 대중적 호응을 얻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 1990년대 말 다양한 클레이아트 애니메이션을 작업했던 이이남은 2000년대 접어들면서 그래픽 애니메이션 작업에 몰두한다. ​ 그는 2002년 SK텔레콤 애니메이션 공모전에 <자살>을 출품하여 대상을 받는다. <자살>은 선비와 물고기의 자살법을 그린 것인데, 선비가 돌에 매달려 물속으로 들어가는 반면, 물고기는 풍선에 매달려 하늘로 올라간다. 너무나도 참을 수 없는 자살의 가벼움이 아닌가? <선악과>는 사과를 사이에 두고 하와와 뱀의 이야기를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던 ‘선악과’와 달리 이이남의<선악과>는 황당하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하와는 사과가 아닌 뱀을 잡아 먹으면서 관객에게 윙크하기 때문이다. <복수>는 나무를 자르는 남자에 대한 나무의 복수를 다룬 애니메이션이다. 나무를 자르던 남자가 나무의 그늘에서 누워 잠잔다. 그런데 나무는 자신의 그림자를 이용하여 나무를 자른 남자에게 복수한다. ​ 은 사격표지판에 대한 엉뚱한 발상을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총알에 맞은 표지판들은 모두 울상이다. 그런데 총알을 맞지 않은 표지판은 낄낄거린다. 왜냐하면 그 웃는 표지판은 날라오는 총알들을 모두 피했기 때문이다. 총알을 피할 수 없는 표지판이 총알을 피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발상은 이후 ‘그림의 떡’으로 알려진 명화를 움직이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하게 한다. 이미지 박연폭포(Parkyeon Waterfall) 5 x LED TV 2017 이이남은 2004년에 오브제에 모니터를 접목시킨 다양한 작품을 제작한다. <밥 먹고 잠자라>는 옛 교실 의자 위에 놓인 도시락의 뚫린 구멍으로 하늘의 구름이 떠가는 영상이 나오는 작품이다. <호주머니 속 풍경>은 옷걸이에 걸린 자킷 호주머니 속에 모니터를 장착해 마치 호주머니 속에 동전들이 떨어지는 모습을 그리고 <생명으로부터>는 고목에 모니터를 장착해 초록 꽃잎들이 흐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브제와 모니터의 접목 작업은 2005년까지 이어진다. 이이남의 <아이 러브 골프>는 골프장 영상과 (홀컵의 위치를 알려주는) 실제 깃발로 접목된 일종의 영상설치작업이다. ​ 전시장 벽면에 골프를 치고 있는 골프장 영상이 투사된다. 그리고 그 골프장 영상 앞에 실제 깃발이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라이트로 인해 그 깃발의 그림자가 영상에 겹쳐진다. 따라서 골프를 치는 사람들이 마치 그 그림자-깃발을 향해 스윙하는 것으로 착각을 일으킨다. ​ 이이남은 2005년 <실상과 허상>시리즈 작품을 제작한다. 이이남은 ‘에스파냐의 카라바조’로 불리는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Francisco de Zurbaran)의 <정물화(Bodegon)>(1636)에서 가운데 화병 2개 대신에 장미꽃과 유리잔을 교체시켜 놓았다. ​ 그런데 유리잔을 보면 영상이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그 영상은 어느 전시장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들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이미지 박연폭포(Parkyeon Waterfall) 5 x LED TV 2017 ​ 그렇다면 이이남의 <실상과 허상>을 보고 있는 관객은 유리잔 속에 담겨있는 관객과 다르지 않단 말인가? 그 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대부분의 관객은 작품 앞에서 단 5초도 서있지 않는다. 관객들은 전시장의 작품을 마치 지나가면서 보듯이 지나친다. ​ 그렇다면 이이남의 <실상과 허상>은 마치 금욕적인 수르바란의 정물화처럼 관객에게 조용히 자신을 성찰하라고 속삭이는 것은 아닐까? ​ 전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이이남은 ​ “제 작품을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 때 가슴이 쓰립니다” ​ 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보자면 알 수 없는 작품 앞에서 시간을 할애할 이유도 없는 셈이다. 우리가 축구경기를 즐기려면 최소한 축구 룰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관객이 미술 작품을 즐기고자 한다면 미술의 룰(미술사의 문맥)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 까닭일까? ​ 미술사학자 다니엘 아라스가 “관객이 한 그림 앞에 최소한 5분만 서있었으면 좋겠다” ​ 고 원했다. 그러나 관객은 작품 앞에서 5분은 고사하고 5초도 서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이남은 관객이 자신의 작품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다니엘 아라스가 기대한 5분 동안 서있도록 하기위해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지나가는 관객의 발길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이이남은 관객의 발길을 멈추게 하기 위해 우리들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주는 디지털 기술에 주목한다. ​ 이이남의 ‘명화는 살아있다!’ ​ 이이남은 2004년 이이남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명화의 재매개(remediation) 작품을 제작한다. <김홍도, 신-묵죽도>가 그것이다. 김홍도의 <묵죽도>는 왼쪽 대각선 방향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를 그린 것이다. 김홍도는 대나무 줄기를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으로 쳤다. 조선시대 대부분 ‘묵죽도’가 오른쪽으로 쳤다는 점을 참조한다면, 김홍도의 <묵죽도>가 특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조민환은 어디선가 김정희의 난초 화법을 빌려 대나무를 오른쪽으로 치는 것보다 왼쪽으로 치는 것이 몇 배 어려운 기술이라고 말하면서 왼쪽으로 순식간에 처내려간 김홍도의 <묵죽도>를 놀라운 기교를 과시한 것으로 보았다. ​ 따라서 단원에게 대나무는 흔히 말하는 ‘군자’의 상징으로서의 고결한 대나무가 아니라 필치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소재일 뿐이라고 간주된다. 그런데 대나무 줄기의 필치를 보면 밑에서 위로 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먹의 농담은 줄기 하단보다 상단이 진하다. 그렇다면 대나무는 바람에 대응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 자, 이제 이이남의 <신-묵죽도>를 보자. 오잉? 이이남의 <신-묵죽도> 대나무는 마치 ‘절개’를 비웃듯 가볍게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신기하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당연히 움직일 수 없다고 확신한 그림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객을 더 놀라게 하는 것은 흔들리는 대나무 위로 눈이 내리는 것이다. 눈은 대나무 위에 서서히 쌓인다. 그리고 대나무 위의 쌓인 눈은 차츰 녹아 원래의 모습으로 컴백하는 것이 아닌가? ​ 이이남의 <신-묵죽도>는 김홍도의 <묵죽도>를 디지털 아트로 재매개한 것이다. 여기서 재매개는 기존 미디어(회화)를 디지털로 미디어화 시킨 것을 뜻한다. 이를테면 이이남의 디지털 아트는 회화(명화)를 디지털로 재구현(Refashion)시킨 것이라고 말이다. 마치 절개를 지키듯 움직이지 않는 김홍도의 <묵죽도>는 디지털을 통해 마치 절개를 버린 듯 바람에 흔들린다. 이이남의 <신-묵죽도>를 보는 관객은 사색에 잠기기는커녕 오히려 놀란다. ​ 그렇다! 관객은 이이남의 <신-묵죽도> 앞에서 4분을 즐긴다. ​ 이이남의 재매개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6년이다. 이이남의 대표작들 중 하나인 <8폭 병풍>도 2006년에 제작된다. 잔잔한 가야금 소리와 함께 소치 허련의 <홍매도>의 텍스트(제발)이 바람에 날리듯 의제 허백련의 <묵죽도> 화폭으로 날아간다. 그리고 나비를 전문적으로 그렸다고 하여 ‘남나비’로 불렸던 남계우의 <화접도>에 그려진 나비가 갑자기 날개 짓을 하더니 의제의 <산수화> 화폭으로 사뿐사뿐 날아간다. 도대체 ‘그림의 떡’인 나비가 어떻게 날개 짓을 하면서 날아다닐 수 있단 말인가? 왜냐하면 8폭 병풍의 화폭이 화선지가 아니라 LCD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기 스위치를 켜면 병풍에서 가야금 소리가 나오고 나비가 날아다니고, 꽃잎과 나뭇가지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린다. 일반 관객은 21세기 미디어 병풍 앞에서 신기한 표정으로 런닝타임 5분 30초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즐긴다. ​ 이미지 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Gogh-The Starry Night, Arles 75 inch LED TV 2019)_17min ​ 하지만 박물관이 모든 유물들을 예술작품으로 전이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란 점에 앙드레 말로는 주목한다. 박물관은 박물관의 물리적 한계(크기) 때문이 아니라 건축물과 한 몸인 벽화나 모자이크 그리고 스테인드글라스 등을 박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유물들은 박물관으로 운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세계 각국에 있는 모든 박물관을 방문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세계 각지에 있는 모든 작품을 볼 수 없다. ​ 이미지 다시 태어나는 빛-2019 (Reborn Light-2019) 12min 30sec Beam Project 2019 앙드레 말로 왈, ​ “오늘날 대학생은 대부분 컬러 사진 복제품인 훌륭한 작품들을 가질 수 있다. 그는 또 사진 복제품을 통해 인류의 많은 그림들, 오래된 고대의 예술들, 먼 옛날 콜럼버스 발견 이전의 인도와 중국의 조각 작품들, 일부 비잔틴 미술품, 로마의 벽화들, 원시적이고 대중적인 예술들을 만날 수 있다.” ​ 앙드레 말로는 사진 복제품을 통해 세계 각지에 있는 모든 작품을 볼 수 있음을 간파한다. 따라서 그에게 도록은 일종의 ‘벽 없는 박물관(Museum without Walls)’이되는 셈이다. 앙드레 말로는 ‘벽 없는 미술관’을 ‘상상의 박물관’으로 명명했다. 왜냐하면 상상의 박물관은 죽은 유물에 생명력(상상력)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숀 레비 감독의 <박물관이 살아있다!>는 앙드레 말로의 ‘상상의 박물관’을 영화로 재매개한 것이 아닌가? ​ 그와 같은 관점에서 보자면 이이남의 디지털-명화는 명화 복제품을 통해 명화를 디지털 아트로 재매개 한 것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이남의 디지털-명화는 앙드레 말로의 ‘상상의 박물관’을 디지털 아트로 재매개한 것이 아닌가? 숀 레비 감독의 <박물관이 살아있다!>와 마찬가지로 이이남의 디지털-명화 역시 디지털 기술로 상상을 현실로 만든 것이다. 그렇다! 이이남의 디지털-명화는 ‘명화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이이남의 탁월한 분석력은 동양과 서양의 명화 선정에도 나타난다. 이이남의 <모네와 소치의 대화>가 그것이다. ​ 이이남은 모네의 <해돋이, 인상>과 소치의 <추경산수화>를 옆으로 나란히 배치해 놓았다. 모네의 <해돋이, 인상>에서 해와 배가 소치의 <추경산수화>로 서서히 흘러가고, 소치의 <추경산수화> 전경에 있는 배와 섬이 모네의 <해돋이, 인상>으로 천천히 흘러간다. ​ 모네의 <해돋이, 인상>해가 소치의 <추경산수화> 산 뒤로 은폐되자 모두 밤으로 바뀐다. 밤이되자 건물들에 불빛이 밝혀진다. 흥미롭게도 소치의 <추경산수화> 전경에 있는 섬의 집에도 불빛이 밝혀진다. 소치의 <추경산수화>에 쓰여진 텍스트(화제)가 마치 바람에 날리듯 모네의 <해돋이, 인상>으로 날라간다. ​ 이이남은 <모네와 소치의 대화>는 서로 다른 공간·시간에 제작된 모네와 소치의 그림들을 마치 서로 선물을 주고받듯이 디지털로 ‘이동’시켜 자연스럽게 교감한다. 마르셀 뒤샹 이후 급진적인 작품을 하고자 하는 작가라면 ‘빌려쓰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이남은 명화를 일종의 ‘레디-메이드’로 사용한다. 물론 그는 명화를 그대로 제시하지 않는다. 만약 그가 명화를 그대로 제시한 것으로 만족했다면, 그는 뒤샹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명화를 ‘되돌려-먹이기’ 한다, 어떻게?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가 그것이다. ​ 차도살인지계? 유하는「武歷 18년에서 20년 사이―무림일기1」 밑에 ‘차도살인지계’를 “남의 칼로 적을 침”이라고 언급해 놓았다. 그렇다면 이이남의 <신-금강전도>는 이이남 자신의 손이 아니라 ‘남의 손을 빌려 상대방을 치는 작품’이란 말인가? 남의 손을 빌린다? ‘남의 손 빌려쓰기’의 최초 사례는 뒤샹의 ‘레디-메이드’가 될 것이다. ​ 하지만 뒤샹의 <샘>은 남의 손을 빌려 제작한 작품이지만 ‘적’을 치는 작품은 아니다. ‘적’을 치는 작품? 혹 그것인 기존 작품에 똥침을 놓는 작품이 아닐까? 우리는 흔히 그것을 ‘패러디(parody)’로 부른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패러디는 미술작품에서부터 시나 문학, 그리고 음악이나 영화 또한 광고에 이르기까지 주로 명작을 모방(인용 혹은 차용)하여 그것을 풍자 또는 조롱하는 작품으로 이해하곤 한다. ​ -중략- ​ 이이남이 차용한 명화들은 대부분 자연을 그린 그림들이다. 왜일까? 왜 그는 자연을 그린 명화를 즐겨 차용한 것일까? ​ 그는 농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대학시절까지 집안의 농사일을 도왔다. 물론 그는 당시 “농삿일이 죽도록 싫었다”고 한다. 그는 “왜 시골에서 태어나서 이런 고생을 할까”를 입에 달고 살았단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의 “시골 경험이 예술적 감수성을 키우는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 그는 특히 의제 허백련의 그림을 적잖이 차용했는데, 허백련 그림에 그려진 풍경이 이이남의 어린 시절 고향의 풍경이다. 따라서 그는 자연을 그린 그림들을 자연스럽게 즐겨했던 것이다. 그의 작품들이 온화하고 서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 혹자는 이이남의 작품들을 보고 ‘착하고’ ‘예쁘고’ ‘범생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그런 비아냥에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그는 힘겨운 일상을 살아가는 대중에게 ‘아트’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무거움’을 ‘어깨’에 짊어지게 하기보다 오히려 웃음(가벼움)을 선사하는 ‘행복전도사’를 자처한다. 바로 그 점 때문에 그가 대중으로부터 지지를 받는 것이 아닐까? ​ 그런 점에서 이이남은 대중에게 사랑받는 디지털 팝 아티스트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디지털 팝 아티스트인 이이남은 좀 더 대중에게 가깝게 접근하기 위해 새로운 ‘유통문화’를 만들고 있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저렴한 가격으로 작품을 구입해서 벌 수 있는 유통구조 말이다. ​ 앙드레 말로는 “상상의 미술관이 자신의 변모를 계속 추구한다”고 진술했다. 백남준은 미술관을 방문했던 관객들이 TV 앞에 모여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차렸다. 그는 1984년 서울과 뉴욕, 파리, 베를린의 TV를 통해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을 방영했다. 그는 미래의 미술관을 대중매체로 보았다고 말이다. 하지만 백남준은 그것을 실현시키지는 못했다. ​ 제2의 백남준으로 불리는 이이남은 서두에서 중얼거렸듯이 스마트 TV뿐만 아니라 모바일과 아이패드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물론 당신은 이이남의 디지털-명화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하여 소장할 수도 있다. 아이폰 어플에 있는 10작품은 단 1.99달러에 구입할 수 있고, 아이패드 어플에서는 12점의 작품을 3.99달러에 소장할 수 있다. 만약 아날로그 아트가 희소성을 지향했다면, 디지털 아트는 대중성 확보가 무엇보다 필요하지 않을까? 이미지 고흐 별이 빛나는 밤에 Gogh-The Starry Night, Arles 75 inch LED TV 2019)_17min 현대미술연구소 김옥렬 대표 Kim, Ok-real 빛의 재탄생, ‘세례 받는 TV’ ​ 이이남의 전시의 주제는 <빛이 되다 Becomes Light>이다. 이번 전시<빛이 되다> 중에서 특히 주목하게 되는 것은 ‘빛의 재생 Reborn Light’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작가가 시도하고자 하는 ‘빛’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현대사회에서 느끼는 불안감을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관차가 레일 위를 달리는 것에 비유한다. 그리고 그러한 불안을 해소하고 허상에 갇혀 방황하는 인간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 본다. ​ 그 의미를 찾아가는 작가의 사유방식은 ‘세례 받는 TV’로 인간의 은유 혹은 환유를 보여준다. 작가는 그것은 TV모니터가 물속으로 들어가 잠기는 것을 죽음으로 다시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을 부활로 설정하고 있다. ​ 작가의 이러한 시도에는 ‘TV는 인간을 닮았다’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 또한 작가는 인간의 신체와 정신의 구분처럼, TV를 콘텐츠와 프레임의 관계로도 해석한다. 이처럼 작가는 그간에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자연과 도시, 진품성과 복제성 등 미디어 콘텐츠가 가진 기술로 시〮공간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그리고 이번 전시작은 날개짓을 하는 비둘기의 영상이 담긴 모니터를 물속으로 잠기게 하고, 다시 그것을 밖으로 나오게 하는 설치물을 통해 ‘세례 받는 TV’를 탄생시켰다. ​ 그렇다면 세례 받기 전과 세례를 받고 난 TV는 어떠한 차이점이 있을까? ​ 이점은 애초의 의도를 떠나서 소통의 과정과 결과에서 다양한 시각의 차이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작가에게 있어 ‘죽음을 넘어 빛’이 되는 TV에 대한 은유는 그 자신의 표현에서처럼, ‘인간의 나약함과 사회적 시스템에서 받게 되는 불안, 그러한 불안에 직면하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일 것이다. ​ 그것은 마치 견고한 시스템 속에서 억압을 뚫어내고자 하는 잠재된 욕망처럼, 무의식에 내재된 충동 역시 사회적 효용성을 떠나 규칙의 위반을 통해 희열을 추구한다. 이러한 추구는 라캉(J. Lacan)이 말한 일종의 과잉욕망이 죽음을 향한 욕망이듯 충동 역시 현실너머의 실재와 관련되고 있음이다. ​ ‘세례 받는 TV’는 금지된 욕망과 충동의 대리만족, 그것의 전략인 승화(sublimation)의 허구성으로 살아 있으나 살아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새로운 탄생을 위해 물속으로 들어가 죽음을 맞이한다. ‘TV모니터’가 물속에 들어가는 것을 죽음으로 상징하는 이유다. 이를테면 부활에는 죽음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전기의 힘에 전적으로 몸을 맡긴 TV는 죽음을 향해 담담하게 마주하며 하강한다. 이는 상흔(trauma)을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용기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이 순간이야 말로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고통과 직면하는 역설의 순간에 대한 상징이기도 하다. ​ 저항과 전복이 내제된 라캉의 ‘희열’(Jouissance)에는 결핍의 충족을 위해 전복을 시도하는 과잉욕망이 내재되어 있다. 만족 보다는 고통을 수반한다는 과잉욕망은 충동에 사로잡혀 금기를 넘어선다. 그 너머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래서 대부분은 그 죽음과의 대면을 피할 수 있을 만큼 피해 주어진 체계 안에서 안주할 수 있는 대체물에 상상이 투영된다. ​ 이렇게 볼 때, 인간의 모습이 투영된 TV, 어쩌면 인간 그 자체인 TV는 오늘날 순종과 포기를 통해 소외와 박탈을 경험해야만 하는 상실감을 화려한 ‘빛’으로 삶을 담아내는 것이리라. 삶을 둘러싸고 있는 허상들, 그 속에서 우리는 그 어떤 선택을 하던지 간에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이동하는 과정, 그 과정이 왜곡과 변질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유이 기도 하다. ​ 이러한 사회화 과정을 통해 작가가 인식하고 있는 ‘빛’의 의미는 마치 거울 없이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처럼, 타인 없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것과 같다. 앞서 얘기한 ‘빛’의 의미란, 타인 속에서 비로소 발견하게 되는 나, 그것이 바로 ‘세례 받는 TV’에 투영된 생명의 빛일 것이다. 이렇게 ‘빛’의 부활은 죽음을 넘어야 비로소 빛이 되는 이유일 것이다. 현대미술연구소 대표 김옥렬 Kim, Ok-real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9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전시일시: 2020년 02월 06일~ 4월 23일 매주 월요일 휴관 전시장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예술의전당(사장 유인택)과 (주)씨씨오씨(대표 강욱)은 2020년 2월 06일(목)부터 4월 23일(목)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에서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9>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9년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수상자 76명의 작품 300여점 등 어른들을 위한 일러스트 원화 작품들과 그림책 전시를 만나볼 수 있다. ​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1967년부터 시작하여 2019년 53회째를 맞은 오랜 역사를 지닌 전시로 매년 세계 80여 개국에서 3천여명이 넘는 아티스트가 이 전시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최고의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을 통해 최종 70여 명의 작가들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하고 작품 전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선정된 작품들의 전시는 실험적이고 감각적일 뿐만 아니라 세계 일러스트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전시로도 유명하다. ​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등용문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볼로냐아동도서전BCBF’의 핵심 프로그램으로 권위 있는 전문가들에게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재능을 평가받을 수 있는 장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으며 아동도서를 넘어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컨텐츠로 성장하고 있다. 이로 인해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세계 각지의 젊고 재능 있는 아티스트들에게 성공과 성장의 발판을 제공하고 있으며, 명실 공히 세계 최고의 일러스트 전시로 인정받고 있다. ​ 알탄Altan, 무나리Munari, 이노첸티Innocenti, 퀀틴 블레이크Quentin Blake, 루자티Luzzati, 숀탠Shaun Tan 까지 오랜 시간 수많은 유명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엄격한 심사를 통해서 전시에 참여했다. 전시는 이야기와 문화, 비전을 공유하는 특별한 장소가 되고 있다. 지금도 미래를 이어갈 수많은 차세대 아티스트들이 이 전시에 참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CHITOSE_CHITOSE ⓒ Noemi_Vola 다양한 볼거리를 만족시키는 풍성한 전시 컨텐츠 ​ 1) 메인전시: 올해의 작가 76명의 일러스트 원화 300여점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9>의 최종 선정 작가 76명의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작품들의 전시 ​ 2) Vendi Vernić 특별전: 2018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우승자<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SM재단과 함께 심사를 통해 매년 1명에게 최고상 2018 International Award for Illustration–BC BF/Fundación SM을 수여하는데 선정된 작가에게는 상금과 출판 그리고 다음해 특별전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8>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작가는 벤디 베르니치Vendi Vernić(Croatia)으로 그녀의 책과 원화작품을 만날 수 있는 특별전시도 만나볼 수 있다. ​ ⓒ Jan_Bajtlik 3) Masha Titova 특별전: <볼로냐아동도서전2019> 비주얼 아이덴티티 선정작가 ​ 볼로냐아동도서전에서는 매년 신진 일러스트 작가 한 명을 선정해 볼로냐아동도서전(BCBF)의 아이덴티티 이미지를 제작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 이미지들은 BCBF의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전시장 인테리어와 포스터 등 홍보물을 위한 메인 이미지를 창작하게 되는데 그 원화 작품도 함께 전시된다. ​ 4) 어린이책의 노벨상 ‘라가치상’ ​ ‘어린이책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볼로냐아동도서전의 ‘라가치상’. 2019년 수상도서 16권을 전시한다. 창작성, 교육적 가치, 예술적인 디자인을 기준으로 픽션, 논픽션, 뉴호라이즌, 오페라 프리마 등 4개 분야 별로 대상 1권과 우수상(mention) 2~3권을 선정해 수여한다. ⓒ MARIKA_MAIJALA 5) 보림출판사, 책을 품은 벽 ​ 보림출판사는 그림책 전문 출판사로 2017년 ‘볼로냐아동도서전 BCBF_최고의 출판사상’을 수상했다. 도서 편집 혁신분야에서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 출판사들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해 제정한 상으로, 한국 출판사로는 최초의 수상이라 그 의미가 더 특별하다. 1976년 창업 이래 40여 년간 새로운 그림책을 만들어 오고 있는 보림출판사의 세계적인 그림책들을 직접 만나보자. ⓒ Liuna_Virardi ​ 6) 작은 볼로냐를 만나다! ​ ‘빨간 도시’, ‘뚱보들의 도시’, ‘현자들의 도시’, ‘포르티코의 도시’, ‘부자 도시’ 등 볼로냐처럼 많은 별명을 가진 도시도 없을 것이다. 그만큼 다양한 매력을 지닌 도시라는 의미인데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9>에서는 전시와 더불어 젊은 층을 위해 전시장 속에서 숨은 그림을 찾듯 다양한 요소를 찾는 미션도 함께 진행된다. ⓒ Olga Shtonda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세계를 만나다. ​ 이처럼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는 이번 전시는 많은 젊은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모두가 만나고 싶은 전시로 자리 잡았다. 2019년 4월 볼로냐 전시를 시작으로 일본의 5개 도시와 한국의 서울을 거쳐 중국까지 월드투어로 전시될 예정이다.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의 인기가 얼마나 높은지 보여주는 한 예이기도 하다. ​ ⓒ Antoine_Corbineau 과거 이 전시가 한국에서 개최된 이력은 있으나, 이 처럼 수십 년을 내다보는 월드투어에 정식으로 포함되 서울에서 전시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2020년 2월 6일부터 4월 23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되는 위 전시를 통해, 세계 권위있는 심사위원들이 선정한 2019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76명의 순수하고 창의적인 작품들을 만나보시기 바란다. ​ ⓒ KIM_SEULKEE(김슬기)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 귀국전 괴(怪)의 미학(美學)과 동아시아서의 현대성(現代性)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귀국전 괴(怪)의 미학(美學)과 동아시아서의 현대성(現代性) ​ 예술의전당(사장 유인택)은 1월 18일(토)부터 3월 15일(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展>을 개최합니다. 이번 <추사귀국전>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학예(學藝)의 특질인 ‘괴(怪)의 미학(美學)과 동아시아 서(書)의 현대성(現代性)’을 주제로, 간송미술문화재단, 과천시추사박물관, 제주추사관, 영남대박물관, 김종영미술관, 수원광교박물관, 이천시립월전 미술관, 선문대박물관, 일암관, 청관재, 일중문화재단, 개인 등 30여 곳이 전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이 전시를 통해 현판, 대련, 두루마리, 서첩, 병풍 등 추사의 일생에 걸친 대표작은 물론, 추사의 글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20세기 서화미술 작가의 작품 120여 점을 볼 수 있습니다. ​ 예술의전당(사장 유인택)은 과천시, 예산군, 제주 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와 공동으로 2020년 1월 18일(토)부터 3월 15일(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에서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이하 <추사귀국전>) 전시를 개최한다. ​ 이 전시는 2019년 6월 18일부터 8월 23일까지 개최된 동명(同名)의 전시를 한국에서 다시 개최하는 것이며, 예술의전당에서 전시를 마치면 제주, 예산, 과천에서 1년 동안 순회 개최된다. ​ 이 전시는 <같고도 다른(사이불사 似與不似) : 치바이스와 대화(대화제백석 對話齊白石)>(2018.12.05 ~ 2019.2.17 /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 이은 두 번째 한(韓)·중(中) 국가예술교류 프로젝트다. ​ 지난 중국 전시에서는 30여만 명이 관람하는 등 중국 대중과 학계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다. 이 파장은 국내 공공기관의 호응으로 이어져 지난해 9월 예술의전당, 과천시(김종천 시장), 예산군(황선봉군수),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고길림 본부장)는 ‘글로벌 추사 콘텐츠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이 <추사귀국전>은 그 양해각서에 따른 첫 번째 결실이라 할 수 있다. ​ 2020년도 한해를 서울-제주-예산-과천으로 전국순회하는 <추사귀국전> ​ 이번 <추사귀국전>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 학예(學藝)의 특질인 ‘괴(怪)의 미학(美學)과 동아시아 서(書)의 현대성(現代性)’을 주제로, 간송미술문화재단, 과천시추사박물관, 제주추사관, 영남대박물관, 김종영미술관, 수원광교박물관, 이천시립월전미술관, 선문대박물관, 일암관, 청관재, 일중문화재단, 개인 등 30여 곳이 전시에 참여하고 있다. ​ 이 전시를 통해 현판, 대련, 두루마리, 서첩, 병풍 등 추사의 일생에 걸친 대표작은 물론, 추사의 글씨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20세기 서화미술 작가의 작품 120여 점을 볼 수 있다. ​ <추사귀국전>을 개최하는 예술의전당 유인택 사장은 ​ “21세기 중국에서 확인된 19세기 동아시아 세계인(世界人) 추사 선생의 학예성과를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대중들이 새롭게 이해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라는 다짐을 밝혔다. ​ 한편 2월 13일(목)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추사국제학술포럼이 예술의전당 주관으로 개최된다. 이 행사에서는 이동국 예술의전당 시각예술부 큐레이터가 모더레이터로 나선 가운데 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실장의 기조 강연을 시작으로 중국 측에서는 예신(叶欣), 푸치앙(傅强), 우구오바오(吴国宝)가 발표를 할 예정이다. 한국 측에서는 이완우, 허홍범, 정병규가 추사학예의 세계성과 현대성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 추사학예의 세계성과 현대성을 확인한 지난 중국 전시 ​ 그간 우리는 추사를 한국 안에서만 최고라고 해왔다. 이번 전시를 기획해나가는 과정에서 솔직히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추사를 중국에서 알아줄까’하고 걱정을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기우였다. 한국보다 중국에서 100여 년의 간극을 일시에 허물며 추사가 살아 돌아와서 중국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 매일 5천여 명을 헤아리는 관람객들이 추사를 만났다. 문화예술계 지도자와 전문연구자, 서법가, 정치지도자와 관료는 물론 일반관람객 모두가 추사를 더 정확하고 진지하게 감상하고 토론하였다. 이런 광경은 좀처럼 한국의 서예 박물관 전시장에서는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 또 한국에서 추사학예를 ‘기괴고졸(奇怪古拙)’한 조형 미학을 특징으로 평가하였다. 하지만 괴(怪)의 본질인 현대성(現代性)을 간파해내기보다 추사체(秋史體)의 성취를 모화주의(慕華主意)의 산물이나 개인의 천재성이 강조된 나머지 신화처럼 여기기도 했다. 진위논쟁에 빠져 정작 추사체(秋史體)의 미학(美學)을 세계사적인 관점과 현대적인 미로 연결시켜 바라보지 못하였다. ​ <추사중국전>에서 추사의 <계산무진谿山無盡>을 본 우웨이산吳爲山 중국국가미술관장은 “글씨를 넘어서서 그림이다. 허실(虛實)의 미학을 극대화하면서 심미적으로나 조형적으로 현대적이고 추상적이다.” 라고 평가했다. ​ ‘아시아 문명과의 대화’ 일환으로 열린 <추사중국전>국제학술포럼에서 중국국가미술관 장칭[張晴] 부관장은 “추사는 글씨의 성인(서성, 書聖)이다. 이번 전시가 실증하듯 ‘경전(經典)’을 남김으로써 역사에 기여하고 있다. 왜 이제야 우리는 서성(書聖) 추사를 알게 되었는가.” 라고 만시지탄(晩時之歎)을 하였다. ​ 북방민족인 김정희는 성인(聖人)이다. 경전(經典) 창출을 통해 서법역사(書法歷史) 발전에 심대한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서법(書法)의 모국(母國)이라하는 중국으로부터 추사체(秋史體)가 비롯되었지만 추사는 당시 서법을 혁신(革新)하였다. 하지만 추사의 한계도 분명한데, 갑골문 금문의 연구실천은 오늘날 우리작가들의 몫이다. 우구오바오 吳國寶 중국미술관 소장작품부 서법분야전문 학예사/서예가 <추사중국전>의 가장 큰 성과는 중국 관람객과 대화함으로써 ‘추사는 세계이고 현대’라는 생각을 실증하였다는 점이다. 이와 상응하여 이번 <추사귀국전>은 오늘날 한국 관람객들이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추사 서예와 대화를 할 수 있도록 시도하고자 한다. 19세기 동아시아의 급변하는 시공간의 지평에서 추사 글씨의 세계성과 현대적 미를 이번 전시를 통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 19세기 동아시아 서(書)의 패러다임을 뒤바꾼 추사체(秋史體) ​ “괴(怪)하지 않으면 역시 서(書)가 될 수도 없다.” ​ 청나라 금석고증학이 19세기 발흥하여 동아시아 서(書)의 역사학은 첩학(帖學)에서 비학(碑學)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이러한 때 추사와 청나라 문인인 옹방강, 완원의 한·중간의 교류는 학문과 예술의 일치를 뜻하는 학예일치(學藝一致)와 비학(碑學)와 첩학(帖學)의 융합을 뜻하는 비첩혼융(帖混融)의 결정체인 ‘추사체(秋史體)’를 창출할 수 있게 하였다. ​ 이런 추사체의 조형미학과 정신경계를 요약하면 기괴고졸(奇怪古拙)과 유희(遊戱)다. 하지만 추사 생존 당대에도 추사체의 괴의 미학에 대해서 비난과 조롱이 비등하였다. 추사는 이에 대해 “괴(怪)하지 않으면 역시 서(書)가 될 수도 없다.”라고 응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글씨를 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기교가 좋고 나쁨(공졸, 工拙)을 또 따지지 마라[非以書爲也. 工拙又不計也.]”라고 하고 있다. ​ 이러한 추사의 학예성취에 대해서 《청조문화(淸朝文化) 동전연구(東傳硏究)》 저자인 후지스카 치카시(藤塚鄰, 1879~1948)는 “(이처럼) 청조문화(淸朝文化)에 정통하고 새롭게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문을 조선에 수립 선포한 위대한 공적을 이룬 사람은 전에도 없었고, 고금독보(古今獨步)라는 느낌이 든다.”라고 말한다. ​ ‘반역적’ 성격과 큐비즘 성격이 있는 고금독보적(古今獨步的) 추사체(秋史體) ​ 전 중국서법가협회 주석이자 현존 중국최고의 서법가로 추앙받는 션펑(沈鵬, 1931~현재)은 “변혁의 중심에 있었던 김정희의 서법(書法) 작품은 강렬한 반역적(反逆的) 성격이 있다. ​ 특히 비(碑)가 첩(帖)으로 들어가는 모종의 ‘불협과 부조화(不協調)’의 성격 때문에 일반인들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김정희의 서법에서 조선민족의 강렬한 독립과 자주(自主)와 자강(自强)의 모습을 느낄 수 있어, 사람의 마음을 뒤흔든다.”고 말했다. ​ 20세기 한국현대 서화미술의 토대인 추사체 ​ 이런 맥락에서 김종영의 추상조각, 윤형근의 획면추상, 손재형, 김충현의 비첩혼융(碑帖混融)은 추사체의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선구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가 그간 20세기 한국의 문예를 식민지, 서구화라는 관점에서 전통과 현대가 단절되었다는 기존 시각을 탈피하는 것이다. ​ 다른 한편으로 이번 <추사귀국전>은 추사의 전통적·한국적 미학이 중국이라는 다른 공간과, 또 현대라는 다른 시대와 대화함으로써, 동아시아와 현대를 아우르는 공유자산의 관점에서 보고자 한다. ​ ‘학예일치’ ‘해동통유’ ‘유희삼매’ 3가지 키워드로 조명하는 추사의 ‘괴(怪)’의 미학 ​ 이번 전시는 ‘괴(怪)의 미학을 키워드로 ‘추사체’의 성격 전모를 ▲연행(燕行)과 학예일치(學藝一致) ▲해동통유(海東通儒)와 선다일미(禪茶一味) ▲유희삼매(遊戱三昧)와 추사서의 현대성 등 총 3부로 구성하였다. ​ <연행과 학예일치>에서는 해석 1) 옹방강, 완원으로부터 실사구시(實事求是) 관점의 경학(經學)과 금석고증학(金石考證學)을 수용하여 고예(古隷)로부터 역사와 서법이 녹아든 추사체를 완성해내는 것, 해석 2) 추사가 옹방강, 완원을 만나 실사구시(實事求是) 관점에서 해석한 경학(經學)과 금석고증학(金石考證學)을 수용하고, 고예(古隷)로부터 역사와 서법이 녹아든 추사체를 완성해내는 것을 보여준다. ​ <옹방강이 추사에게 보낸 제3편지>, <실사구시잠(實事求是箴)>, <복초재시집(復初齋詩集)>, <소영은(小靈隱)>, <상량·상견(商量·想見)>, <문복도(捫腹圖)> 등 추사와 청조 문인과의 교유관계 핵심작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임군거효렴경명(臨君擧孝廉鏡銘)>, <예학명임(瘞鶴銘臨)>, <배잠기공비제발(裵岑紀功碑 鉤勒本 題跋)>, <진흥북수고경(眞興北狩古鏡)> 등 추사체(秋史體)의 궁극인 고예(古隷)를 재해석한 작품과 <양한금석기>, <해동금석원>, <해동금석영기> 등 조·청(朝淸) 문인들의 금석학 연구 자료들을 통해서 서(書)가 학문의 전제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살펴본다. ​ <해동통유와 선다일미>에서는 제주 유배라는 극한의 실존에 서 유마거사(維摩居士)를 자처하면서 유불선(儒佛仙)을 아우르는 통유(通儒)이면서,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와 만나 선(禪)과 차(茶)를 하나로 승화시키는 추사의 정신세계를 보는 것이 관건이다. ​ <문자반야(文字般若)>, <칠불설게 도득문지(七佛說偈 都得聞之) 등게송(偈頌) 모음, <직심도량(直心道場)>, <영모암편배제지발(永慕庵扁背題識跋)>, <명선(茗禪)>, <단연죽로시옥(端硏竹爐詩屋)> 그리고 <부기심란(不欺心蘭)>, <향조암란(香祖庵蘭)>, <추사 소치 합작시화 ‘산수국’> 등을 전시하는데, 이들은 통유(通儒)와 서화일체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걸작들이다. ​ <유희삼매와 추사서의 현대성>에서는 비첩혼융(碑帖混融)의 ‘추사체’가 발산하는 불계공졸(不計工拙)과 천진(天眞)의 정수를 볼 수 있다. <계산무진(谿山無盡)>, <도덕신선(道德神僊)>, <순로향(蓴鱸鄕)>, <사서루(賜書樓)>, <판전(板殿)>, <완당집고첩(阮堂執古帖)>, <무쌍·채필(無雙·彩筆)>, <인고·폐거(人苦·弊去)> 등의 작품을 통해 추사체의 유희삼매 경지를 만나볼 수 있다. ​ 이와 동시에 김종영 윤형근 손재형 김충현 등 20세기 한국의 현대서화미술 대표작가들이 추사서를 통해 자신의 예술을 여하히 성취해냈는가를 보는 것도 중요하다. <계산무진(谿山無盡)> 김정희金正喜(1786~1856) 19세기 종이에 먹 165.5x62.5cm 간송미술관 소장 <도덕신선(道德神僊)> 김정희金正喜(1786~1856) 19세기 종이에 먹 32.2×117.4cm 개인 소장 <판전(板殿)> 김정희金正喜(1786~1856) 1856 종이에 탁본 22.8×85.0cm 개인 소장 <유희삼매(游戏三昧)> 등 「완당집고첩(阮堂执告帖)」 김정희金正喜(1786~1856) 19세기 종이에 먹 18.0×414.0cm 김종영미술관 소장 칠불설게 도득문지’ 등 선시문 모음 ‘七佛说偈 都得闻之’等 禅诗文集 김정희金正喜(1786~1856) 19세기 종이에 먹 33.9×22.8cm 개인 소장 <향조암란(香祖庵蘭) 「난묵합벽첩(蘭墨合壁帖)」> 김정희金正喜(1786~1856) 19세기 종이에 먹 26.7×16.8cm 개인 소장 <무쌍·채필(無雙彩筆)> 김정희金正喜(1786~1856) 19세기 종이에 먹 각 128.5x32.0cm 일암관 소장 <명선(茗禅)> 김정희金正喜(1786~1856) 19세기 종이에 먹 115.2x57.8cm 간송미술관 소장 <문복도扪腹图> 정조경程祖庆(1785~1855) 1853 비단에 수묵 94.5×26.2cm 개인 소장 <임군거효렴경명(臨君擧孝廉鏡銘)> 김정희金正喜(1786~1856) 19세기 종이에 먹 86.0x46.0cm 개인 소장 <옹방강이 추사에게 보낸 제3편지> 옹방강翁方纲(1733~1818) 1817 종이에 먹 23.6×304.0cm 개인 소장 추사국제 학술포럼 ​ 시간 : 2020년 2월 13일(목) 13:00-18:00 장소 :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챔프홀 ​ 학술포럼 주최 예술의전당, 과천시, 예산군,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 书法博物馆首席学艺士李东拲 학술포럼 모더레이터: 예술의전당 시각예술부 큐레이터 이동국 ​ 한국 발표자 ​최완수 간송미술관 학예실장 이완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서예사) 허홍범 과천시 추사박물관 학예연구사 정병규 글와사대표, 북디자이너 ​ 중국 발표자 예 신 중국국가화원서법전각원 해외서법연구소 부소장 叶 欣 中国国家画院书法篆刻院海外书法研究所副所长 푸치앙 중국국가미술관 소장작품부 학예사/서법학박사/서예가 傅 强 中国美术馆藏品征集部书法家 우구오바오 중국국가미술관 소장작품부 학예사/서법학박사/서예가 吴国宝 中国美术馆藏品征集部书法家 ​ <추사귀국전> 전시구성 [제1부] 연행(燕行)과 학예일치(學藝一致) ​ 여기서는 추사가 북학(北學)의 핵심인 청대(淸代)의 경학(經學) 금석고증학(金石考證學)을 조선에 도입하여 역사(歷史)와 서법(書法) 두 방면으로 어떻게 연구/실천해서 학예일치(學藝一致)의 경지로 완성해내는지를 대표작품으로 보여준다. ​ 추사는 24세 연행(燕行)때 청조 학예계 거장인 78세 옹방강과 47세 완원으로 부터 ‘경술문장(經術文章) 해동제일(海東第一)’로 격찬을 받으며 두 분을 평생 스승으로 모신다. 그 후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모토로 편지지도와 문집(文集)· 금석문(金石文)학습을 통해 경학(經學)과 금석고증학(金石考證學), 서법(書法)을 연마하여 학예일치(學藝一致)의 경지를 일생에 걸쳐 구축하였다. ​ 추사의 경학은 “마융(馬融)과 정현(鄭玄, 한 대의 훈고학)을 두루 망라하고, 정자(程子) 주자(朱子, 송대 성리학)를 등지지 말라[博綜馬鄭, 勿畔程朱]”가 말해주듯 옹방강의 ‘한송불분론(漢宋不分論)’의 입장에 서있다. 금석고증학자로서 추사는 청조 학예방법론을 우리 역사현장에 적용시켜 일생동안 조선화에 선구적인 업적을 남겼다. ​ 31세(1816)에 <북한산진흥왕순수비>조사를 시작으로 <경주무장비(慶州藏寺碑)>발굴은 물론「예당금석과안록(禮堂金石過眼錄)」과 『해동비고(海東碑攷)』저술하였고, 67세(1852) 북청(北靑) 유배(流配)시에는「석노시(石砮詩)」「진흥북수고경(眞興北狩古竟)」을 제작하였다. 또 이런 성과는 중국에서 유희해의 <해동금석존고>과 <해동금석원>, 옹수곤의 <해동금석영기>와 같은 조선 금석고증학 열풍을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 추사는 왕법(王法)에 정통성을 둔 기존 서사(書史)를 뒤집은 완원의 <남북서파론(南北書派論)>과 <북비남첩론(北碑南帖論)>을 지남으로 왕법(王法)은 물론 그 이전으로 돌아가 서(書)의 근원인 북비와 한예를 하나로 녹여내면서 독자적인 비첩혼융의 추사체(秋史體)를 창출해내고 있다. ​ 얼마나 한예를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한예(漢隸) 한 글자는 해서와 행서 열 글자와 맞먹는다.漢隸一字, 可抵楷行十字.”고 할 정도다. 특히 “예서(隷書)는 바로 서법의 조가(祖家)이고, 한예(漢隷)의 묘는 오로지 졸(拙)한 곳에 있음[隷書是書法祖家。漢隷之妙。專在拙處]”을 간파하고, 한예 중에서도 서한(西漢)시대 정(鼎) 감(鑑) 로(爐) 등(鐙)의 글자로 거슬러 올라가 추사체(秋史體)를 창출해내고 있다. ​ 요컨대 이러한 추사와 옹방강 완원의 일생에 걸친 학연과 묵연의 성과로 인해 한중교유 역사상 19세기는 가장 찬란한 황금기로 자리매김 되었다. ​ 주요작품은 <심중니·이명도(尋仲尼·以明道)> <추사·담계필담서(秋史·覃溪筆談書)> <옹방강이 추사에게 보낸 제3편지> <박종마정 물반정주(博綜馬鄭 勿畔程朱)> <실사구시잠(實事求是箴)> <복초재시집(復初斋詩集)> <소영은(小靈隱)> <죽재·화서(竹斋·花屿)> <상량·상견(商量·想見)> <완원‘남북서파론’(阮元‘南北書派論)> <임군거효렴경명(臨君擧孝廉鏡銘)> <임원수원년경명(臨元壽元年鏡銘)> <예학명임(瘞鶴銘臨)> <진흥북수고경(眞興北狩古鏡)> <배잠기공비제발(裵岑紀功碑 鉤勒本 題跋)> <유득공시의도(柳得恭詩意圖)> <문복도> <송자하선생입연시(送紫霞先生入燕詩)> 등이다. ​ [제2부] 해동통유(海東通儒)와 선다일미(禪茶一味) ​ 정통 유학자(儒學者)인 추사는 유교(儒敎)는 물론 불교(佛敎)와 도교(道敎)를 아우르는 통유(通儒)로서 학문과 사상을 서예술(書藝術) 하나에 모두 녹여내고 있다. 특히 제주 유배 시기의 처절한 실존을 소동파(蘇東坡)를 사숙하여 학예(學藝)로 극복해내면서 해동통유(海東通儒)의 면모를 완성해내고 있다. ​ 추사는 55세(1840.6.22)때 동지겸사은부사(冬至兼謝恩副使)로 임명(任命)되었으나 윤상도옥사(尹尙度獄事)가 재론(再論)되면서 이미 망자가 된 부친 김노경이 탄핵(彈劾)되고, 자신은 제주도(濟州道)에 유배(流配)되었다. 제주유배시절 추사는 소동파가 그랬듯이 유마거사(維摩居士) 병거사를 자처하면서 자제소조(自題小照)에 “담계(覃溪)는‘고경(古經)을 즐긴다’라 일렀고, 운대(雲臺)는 ‘남이 일렀다 해서 저 역시 이르지를 않는다’라 하였으니, 두 분의 말씀이 나의 평생을 다한 것이다. ​ 어찌하여 해천(海天)의 입립자가 원우(元祐)의 죄인과 같은 고. 覃溪云嗜古經。芸臺云不肯人云亦云。兩公之言。盡吾平生。胡爲乎海天一笠。忽似元祐罪人”라고 할 정도다. 또 ‘문자반야(文字般若)’를 비첩혼융(碑帖混融)으로 실천해내면서 추사체(秋史體)를 왕성하게 실험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초의선사(艸衣禪師)와 유(儒)불(佛)을 넘나드는 교유를 통해 다선일미(茶禪一味)와 전다삼매(煎茶三昧)의 경지를 구축하였다. ​ 주요전시작품은 <문자반야(文字般若)> <무량수각(无量壽閣)> <‘칠불설게 도덕문지(七佛說偈 都得聞之)’등 게송(偈頌) 모음> <직심도량(直心道場)> <제해붕대사영(題海鵬大師影)> <관음경·팔중송(觀音經·八重頌)> <영모암편배제지발(永慕庵扁背題識跋)> <명선(茗禪)> <단연죽로시옥(端硏竹爐詩屋)> <일로향각(一爐香閣)> <전다삼매(煎茶三昧)> <합병신천지(合丙辛天地) 우향각(芋香閣)> <부기심란(不欺心蘭)> <향조암란(香祖庵蘭)> <추사 소치 합작 시화‘산수국’> 등이다. ​ [제3부] 유희삼매(遊戱三昧)와 추사서의 현대성(現代性) ​ 추사는 해배 이후 강상생활·북청유배·과천시기에 비첩혼융의 굴신지의屈伸之義의 필획(筆劃)이 창출해내는‘괴(怪)’의 미학을 골자로 하는 추사체(秋史體)를 자유자재로 구사해내고 있다. 심지어 “글씨를 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공졸(工拙)을 또 따지지 마라[非以書爲也. 工拙又不計也.]”라고 하고 있다. ​ 추사체의 비난과 조롱에 대해서마저도 “괴(怪)하지 않으면 역시 서(書)가 될 수도 없다.[不怪。亦無以爲書耳]”고 응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추사체(秋史體)의‘괴(怪)’의 미학경계는 방정(方正)의 끝이자 기괴(奇怪)의 궁극지점이다. “구서(歐書)도 역시 괴목(怪目)을 면치 못했으니 구와 더불어 함께 돌아간다면 다시 사람의 말을 두려워할 게 있으리까. ​ 절차고(折釵股)·탁벽흔(坼壁痕) 같은 것은 다 괴의 지극이며 안서(顔書) 역시 괴이하니 왜 옛날의 괴는 이와 같이 많기도 한지요. 歐書亦未免怪目。與歐同歸。復何恤於人耶。如折釵股圻壁痕。皆怪之至。顔書亦怪。何古之怪。如是多乎哉。라고 추사는 말한다. ​ 추사체(秋史體)는 왕법(王法) 중심의 첩학(帖學)과 그 이전의 비학(碑學)이 시기별 혼융(混融)궤적을 그리며 다음과 같이 완성·창출되고 있다. ​ Ⅰ. 시체습용기(時體習用期)[24세 연행(燕行) 전후] Ⅱ. 옹방강/팔분예(八分隸)학습기(學習期)[3,40대] Ⅲ. 구양순(歐陽詢)/고예(古隸)재해석기(再解析期)[50세 전후] Ⅳ. 비첩혼융기(碑帖混融期)[55~63세 제주 유배(流配)] Ⅴ. 추사체(秋史體)완성기(完成期)[63~71세 해배(解配)이후] ​ 주요전시 작품은 <계산무진(谿山無盡)> <도덕신선(道德神僊)> <순로향(蓴鱸鄕)> <사서루(賜書樓)> <판전(板殿)> <완당집고첩(阮堂執古帖)> <칠언시사구 행서팔곡병(七言詩四句 行書八曲屛)> <청관산옥만음(靑冠山屋漫吟)> <무쌍·채필(無雙·彩筆)> <인고·폐거(人苦·弊去)> <왕사정 제중삼영(王士禎 齋中三詠)> 등이다. ​ 위의 작품을 보노라면 그야말로 천진(天眞)이자 유희삼매(遊戱三昧)의 정신경계에 노니는 것이 추사체(秋史體)이다. 일체의 구속(拘束)에서 벗어난 대자유(大自由) 절대자유(絶對自由)의 경지인 것이다. 예술의 기원이 인간의 유희본능(遊戱本能)이라고 할 때 예술의 본령인 시서화(詩書畵)를 일체(一體)로, 융복합(融複合)으로 하나 되게 ‘유희삼매(遊戱三昧)’로 살아간 추사는 문자영상(文字映像)시대 인공지능(人工知能,AI)시대 오늘날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주고 있다. ​ 이런 맥락에서 김종영 윤형근 손재형 김충현 등 20세기 한국의 현대서화미술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서예는 물론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추사서의 조형과 미학 전통이 현대와 호흡하며 한국예술의 미래를 제시하고 있음도 볼 수 있다.

도원에 핀 꽃 - 왕열

Flower in Utopia

도원에 핀 꽃 Flower in Utopia ​ 전시일시: 2020년 2월 8일~ 2월 16일 전시장소: 한전아트센타[서울시 서초구 서초동1355] 1층 1,2전시실 ​ 왕열 ​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학 박사 개인전 62회 (중국,일본,독일,스위스,미국,프랑스 등)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 역임 한국미술작가대상 (한국미술작가대상 운영위원회) 단체전 520여회 ​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 경기도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미술은행, 성남아트센터, 성곡미술관, 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고려대학교 박물관, 워커힐 미술관, 갤러리 상, 한국해외홍보처 한국은행, 동양그룹, 경기도 박물관, 한국종합예술학교 단국대학교, 카톨릭대학교, 채석강 유스호스텔, 호텔프리마, 천안시청, 천안세무서, 한남더힐 커뮤니센터 ​ 이미지 왕열 봄날의 명상,캠바스에 아크릴,90.9x72.7cm ,2019 작가 왕열은 <겨울나기> 연작과 같은 초기의 작업에서부터 최근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새’를 중심적인 소재로 등장시킨다. 이때 작품 속에 등장하는 새들은 복잡한 인간사(人間事)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의인화된 존재라고 한다. 그로인해 작품은 ‘새’들을 통해 우리네 삶의 다양한 형태를 거울처럼 들여다보도록 만들고 있다. 그런데 작가는 이러한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유토피아’로 일컬으며 작품에서 중층적인 장소로의 변화를 시도하였다. ​ 주지하였듯이 그의 근작들은 꾸준히 <유토피아>를 주제로 나타내는데 그 의미에 대한 이해는 어원을 통해 극명히 드러난다. ​ 이처럼 작품은 우리의 현실에서 볼 수 있는 희노애락의 에피소드를 ‘새’를 통해 제시하였다. 그리고 고뇌와 즐거움이 교차하는 모습 속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이해하려는 자세를 통해 초월적 의미의 유토피아를 일깨운다. 실상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힐링(healing)’의 문화가 열풍이다. 너도나도 마음의 안식과 유토피아를 갈구하는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작가는 진정한 전통적 태도를 기반으로 현대적 공감을 얻어내고 있다. ​ 이미지 왕열 116.5x91.0cm 2019 그것으로 작품은 평범한 현실 속에서 마음의 자유를 찾을 수 있는 휴식의 공간 자체로 기능하며, 동양미학 특유의 상승적 의미들을 되새기도록 만들고 있다. ​ 그리고 여기에서 왕열의 작품들은 소소한 이야기, 화면의 구성, 표현, 기교 등 모든 관점에서 전통화단의 고유한 가치를 현시대적으로 풀어내려는 고민이 도원에 핀 꽃을 통하여 얼마나 깊이 있게 응축되었는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

툴루즈 로트렉 展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 - Henri de Toulouse-Lautrec

Henri de Toulouse-Lautrec ​툴루즈 로트렉 展 물랭 루즈의 작은 거인 ​ 후기인상주의 화가이자 현대 그래픽 아트의 선구자로 손꼽히는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전시회가 2020년 1월 14일부터 5월 3일까지(96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 이번 툴루즈 로트렉 전은 국내에서 선보이는 로트렉 의 첫번째 단독전으로, 그리스 아테네에 위치한 헤라클레이 돈 미술관(Heraklei don Museum)이 소장하고 있는 15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되며, 전시작품 모두가 국내에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이다.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툴루즈 로트렉은 19세기 후 반, 예술의 거리 몽마르트와 밤 문화의 상징 물랭 루즈 등을 무대로 파리 보헤미안의 라이프 스타일을 날카롭게 그려낸 프랑스 화가이다. 이번 전시회에 선보이는 포스터, 석판화, 드로잉, 스케치, 일러스트 및 수채화들과 로트렉의 사진 및 영상, 이 시대의 생활용품 등은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들을 19세기말 생동감 넘치는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과 물랭 루즈로 안내해 줄 것이다. ​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 중, ‹제인 아브릴 Jane Avril, 1893›, ‹아리스티드 브뤼앙 Aristide Bruant in his Cabaret, 1893› 등 포스터 작품들과 ‹배에서 만난 여인 The Passanger from Cabin 54, 1895› 등 석판화 작품들, 연필과 펜으로 그린 스케치 작품들, ‹르 리르(Le Rire)›, ‹라 레뷰 블랑슈(La Revue Blanche in 1895)› 등 잡지에 게재된 그래픽과 풍자 일러스트 등은 화가 툴루즈 로트렉을 대표하는 이미지이자, 19세기 말 파리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 La Belle Épo que)의 상징들이기도 하다. ​ 특히 이번 전시회에는 로트렉의 미술작품 뿐만 아니라 로트렉의 드라마틱한 일생을 소개하는 영상과 미디어아트, 당시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그의 일러스트 등을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으며,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전시회이다. 이번 전시회는 2007년부터 그리스와 미국, 이탈리아 등지에서 순회 전시 중이며, 이번 서울 전시회는 14번째 전시이다. ​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툴루즈 로트렉은 19세기 후 반, 예술의 거리 몽마르트와 밤 문화의 상징 물랭 루즈 등을 무대로 파리 보헤미안의 라이프 스타일을 날카롭게 그려낸 프랑스 화가이다. 이번 전시회에 선보이는 포스터, 석판화, 드로잉, 스케치, 일러스트 및 수채화들과 로트렉의 사진 및 영상, 이 시대의 생활용품 등은 전시장을 찾는 관람객들을 19세기말 생동감 넘치는 파리의 몽마르트 언덕과 물랭 루즈로 안내해 줄 것이다. ​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작품들 중, ‹제인 아브릴 Jane Avril, 1893›, ‹아리스티드 브뤼앙 Aristide Bruant in his Cabaret, 1893› 등 포스터 작품들과 ‹배에서 만난 여인 The Passanger from Cabin 54, 1895› 등 석판화 작품들, 연필과 펜으로 그린 스케치 작품들, ‹르 리르(Le Rire)›, ‹라 레뷰 블랑슈(La Revue Blanche in 1895)› 등 잡지에 게재된 그래픽과 풍자 일러스트 등은 화가 툴루즈 로트렉을 대표하는 이미지이자, 19세기 말 파리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 La Belle Épo que)의 상징들이기도 하다. ​ 특히 이번 전시회에는 로트렉의 미술작품 뿐만 아니라 로트렉의 드라마틱한 일생을 소개하는 영상과 미디어아트, 당시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그의 일러스트 등을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으며,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함께 즐길 수 있는 전시회이다. 이번 전시회는 2007년부터 그리스와 미국, 이탈리아 등지에서 순회 전시 중이며, 이번 서울 전시회는 14번째 전시이다. 툴루즈 로트렉은 그가 주로 활동했던 프랑스 파리나 19세기말의 시대를 넘어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가다. 37년의 짧은 생애동안 5,000여점의 작품을 남긴 로트렉은 몽마르트의 작은 거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가이기도 하다. I don't belong to any school. I work in my corner. I admire Degas. ​ 나는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다. 나는 내 멋대로 그림을 그릴 뿐이다. 하지만 나는 에드가 드가를 존경한다. -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툴루즈 로트렉의 삶과 작품 세계 1864. 11. 24 ~ 1901. 9. 9 ​ 벨 에포크 La belle époque (1871 ~ 1914) ​ 1871년, 보불전쟁(Franco-Preussen War)이 끝나고 프랑스에는 모처럼의 평화와 풍요가 찾아온다. 프랑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시대로 불리는 ‘벨 에포크’가 활짝 열리는 순간이었다. 파리에는 산업과 예술과 문화가 번창했다. 파리의 상징 에펠탑(Eiffel Tower)이 세워지고, 최초의 파리 지하철이 개통됐다. 무엇보다 벨 에포크를 대표하는 예술 분야는 미술이었다. ​ 피카소, 샤갈, 모딜리아니, 칸딘스키 등 유럽 각국의 화가들이 파리로 모여들었고, 예술 표현이 굉장히 자유로워졌다. 다양한 서양미술 사조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탄생했고, 활짝 꽃을 피웠다. 그들 중에서도 인상주의 화가들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졌다. ​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누아르, 카미유 피사로, 에드가 드가, 폴 세잔, 반 고흐, 폴 고갱, 오귀스트 로댕 등 서양미술사에 가장 큰 족적을 남긴 화가들이 모두 이 시기에 활동한 작가들이다 ​ 20세기 그래픽 아트, 포스터의 탄생 ​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이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고 그들의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건, 18세가 되던 1882년 파리로 이주하면서부터다. 아카데미 화가인 레옹 보나(Leon Bonnat)의 화실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학문적인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 그러나, 얼마후 보나가 화실을 닫자, 역시 아카데미 화가인 페르낭 코르몽(Fernand Cormon)의 화실로 옮겼다. 이곳에 몇 년간 적을 두고 미술공부에 전념했지만, 로트렉은 에드가 드가나 화실에서 사귄 친구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세계를 동경했고, 진정으로 그들을 스승으로 생각했다. ​ 1884년, 로트렉은 몽마르트(Montmartre) 언덕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몽마르트는 1880년경에 이르러 보헤미아니즘(Bohemianism), 아방가르드(Avant-garde) 예술의 중심지로 부상한 지역이다. 로트렉은 이곳을 근거지 삼아 화랑과 미술관을 돌아다니고, 친구들과 카페에 모여 토론하고, 작업실과 모델을 함께 쓰는 등 세기말 파리의 분위기를 받아들이고 즐겼다. ​ 이 시기 로트렉은 나비(Nabi)파 화가인 피에르 보나르나 에두아르 뷔야르, 후기인상주의 화가인 반 고흐 등과 자주 어울렸지만, 어떤 예술 유파에도 휩쓸리지 않았다. 그는 이론이나 운동보다 천부적인 감각과 재능으로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근본적으로 로트렉은 야외의 자연 빛을 화폭에 담으려 했던 인상주의와는 달리, 실내의 인공 조명을 선호했다. 이런 로트렉의 화풍은 물랭 루즈의 실내 조명 아래서 그린 모델들의 그림에 잘 나타나 있다. ​ 1889년, 몽마르트에 댄스홀 물랭 루즈(Moulin Rouge)가 오픈했다. 물랭 루즈는 열자 마자 바로 파리의 명소가 되었고, 유명 인사들이 드나드는 최고의 사교장이었다. 물랭 루즈의 개업은 로트렉의 작품세계가 큰 변혁을 맞는 계기가 된다. 로트렉에게 이 물랭 루즈는 새로운 삶의 터전이자 아뜰리에였고 그곳에서 펼쳐진 공연들과 사람들은 그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 로트렉은 지정석을 두고 매일 밤 이 물랭 루즈를 드나들면서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을 그림에 담았다. 로트렉에게 그림은 매일매일의 삶을 기록하는 일기장과도 같았다. 로트렉은 사람의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눈과 빠른 손놀림으로 그가 만난 사람들을 그림으로 그렸다. ​ 1891년 가을, 로트렉이 제작한 포스터 ‘물랭 루즈, 라 굴뤼(Moulin Rouge, La Goulue)’는 로트렉을 일약 파리의 유명인사로 만들어 준 작품이었다. ​ 로트렉은 지금까지의 18세기적 포스터를 개념이 전혀 다른 대담한 표현과 기법으로 20세기적 그래픽으로 바꿔 놓았다. 이 포스터를 계기로 석판화(Lithography)기법을 이용한 걸작 포스터와 판화들이 탄생하게 되었고, 로트렉 은 벨 에포크를 대표하는 화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 ​It is fair to say that without Lautrec, there would be no Andy Warhol. ​ 로트렉이 없었다면 앤디 워홀은 없었을 것이다. - 미국,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천재화가 로트렉의 고독한 생애 ​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이 인상주의 화가들과 교류하고 그들의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건, 18세가 되던 1882년 파리로 이주하면서부터다. 아카데미 화가인 레옹 보나(Leon Bonnat)의 화실에 들어가서 처음으로 학문적인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 그러나, 얼마후 보나가 화실을 닫자, 역시 아카데미 화가인 페르낭 코르몽(Fernand Cormon)의 화실로 옮겼다. 이곳에 몇 년간 적을 두고 미술공부에 전념했지만, 로트렉은 에드가 드가나 화실에서 사귄 친구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세계를 동경했고, 진정으로 그들을 스승으로 생각했다. ​ 1884년, 로트렉은 몽마르트(Montmartre) 언덕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몽마르트는 1880년경에 이르러 보헤미아니즘(Bohemianism), 아방가르드(Avant-garde) 예술의 중심지로 부상한 지역이다. 로트렉은 이곳을 근거지 삼아 화랑과 미술관을 돌아다니고, 친구들과 카페에 모여 토론하고, 작업실과 모델을 함께 쓰는 등 세기말 파리의 분위기를 받아들이고 즐겼다. ​ 이 시기 로트렉은 나비(Nabi)파 화가인 피에르 보나르나 에두아르 뷔야르, 후기인상주의 화가인 반 고흐 등과 자주 어울렸지만, 어떤 예술 유파에도 휩쓸리지 않았다. 그는 이론이나 운동보다 천부적인 감각과 재능으로 자기 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 나갔다. ​ 근본적으로 로트렉은 야외의 자연 빛을 화폭에 담으려 했던 인상주의와는 달리, 실내의 인공 조명을 선호했다. 이런 로트렉의 화풍은 물랭 루즈의 실내 조명 아래서 그린 모델들의 그림에 잘 나타나 있다. ​ 아리스티드 브리앙/ Aristide Bruant Dans Son Cabaret /1893 | Lithography | 138×99cm 제인 아브릴 / Jane Avril / 1893 | Color Lithography | 129×93.5cm 물랭 루즈, 라 굴뤼 / Moulin Rouge, La Goulue / 1891 | Color Lithography | 170×118.7cm 앰배서더 카바레의 아리스티드 브뤼앙 / Ambassadeurs. Aristide Bruant Dans Son Cabaret / 1892 | Color Lithography | 138×96 cm Au Pied Du Sinaï(표지) / 1897 | 조르주 클레망소의 책 시나이 산기슭에서 Elles / 1896 | (석판화 연작 中) | Color Lithography Cavalier / 1879 - 1881 | Ink Drawing Le Jockeye / 1899 | Color Lithography | 51.1 x 35.5 ㎝ Polaire (Le Rire 잡지) / 1895 | Color Lithography | 26.2 x 12.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