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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문명의 빛 - 이집트<Egypt>문명을 통해 본 공공디자인 - 3편 영생불멸의 꿈!

정희정교수의 공공디자인 세계기행 16

서경대학교 교수

정 희 정 디자인학 박사

 

파피루스에 그린 이집트의 역사

 

파피루스에 그린 이집트의 역사

 

죽은 뒤 또다시 죽지 않으려는 염원!

죽음을 정복하고자 애썼던 이집트인들!

고대 이집트인들의 모든 삶은 내세적인 종교에 깊게 뿌리 박혀있었습니다.

죽음을 전환점으로 다시 한번 영생을 누린다는 초 낙관적 견해는

사후의 삶 역시 지금 삶의 연장선이라는 영혼 불멸의 내세관을 보여줍니다.

 

파피루스에 그린 이집트의 역사

 

Canon EOS 5D Mark II F10 1/400s

 

기행문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낡고 비좁은 도시의 골목과 골목의 초입마다 궁핍한 좌판을 깔고 앉은 상인들 사이를 헤집고 마차는 덜컹거리며 움직였다.

 

Canon EOS 5D Mark II F9 1/320s

 

 

파피루스에 새겨진 이집트 고대문자[HIEROGLYPHIC ALPHABET]

 

마부는 마치 스티븐 서머즈 감독의 영화 미이라의 주인공인 승정원 이모탭[Imhotep]을 꼭 빼닮았다.

송글송글 맺혀 흐르는 땀방울과 텁텁한 땀 냄새가 카이로의 구시가지와 잘 어울렸다.

목적지에 도착될 무렵 마부의 등을 두드려 약간의 달러를 건냈다!

그는 여러 차례 고개를 돌려 뭐라고 말을 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흙먼지가 일어 히잡처럼 스카프로 얼굴을 둘둘 말고 선글라스를 착용했는데도 입안이 서걱거렸다.

 

 

 

(좌)Canon EOS 5D Mark II F4 1/60s I (우)Canon EOS 5D Mark II F4 1/160s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카이로의 시가지는 과거 이집트문명의 영광과 영화는 찾아볼 수 없고 낡은 도시는 관리되는 듯 관리되지 않은 듯 슬럼화된 거리를 늙은 말과 늙은 마부가 느릿느릿 길을 가로지른다!

 

Canon EOS 5D Mark II F5.6 1/400s

거리를 맨발로 내 달리는 아이들은 우리 일행들을 따라다니며 원 달러! 원 달러!를 외쳤다.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한동안 귀에서 아이들의 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과거의 찬란하고 유구한 문화자원을 통한 관광자원의 수입에 의존하며 오랜 식민지 생활로 만연된 사고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여 살아가길 기대해 본다.

저자의 기행문중에서 -중략-

 


* 그렇게 다녀온 이집트 기행 수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이집트는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는 역사상 최악의 비극이라고 명명되며 유혈사태로까지 이어지는 반정부시위가 일어났다.

Canon EOS 5D Mark II F6.3 1/200s

 

이집트를 찾는 방문객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죽은 자들을 위해 세워진 유적들로 피라미드와 장례 의식용 사원들이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인들이 주로 영생을 얻기 위해 일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죽음을 정복하고자 애썼던 이집트인들은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웠고 깊은 무덤을 팠으며 시신이 부패하는 것을 막고 살아있을 때의 이름이 잊혀지지 않게 하려고 미이라를 만들고 일정한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제5왕조와 제6왕조, 제1중간기에 세워진 피라미드 내부에 관이 놓였던 방에는 ‘피라미드 텍스트’ 라고 불리는 긴 주문이 새겨져 있는데 장례를 주도한 사제들이 집대성한 이 글은 가장 오래된 종교적 장례용 주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글은 왕이 죽은 뒤 내세에 대한 개념을 구체적으로 전해 주고 있으며 왕은 죽은 뒤 주극성(主極星)들 중 하나와 일체가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피라미드로 들어가는 입구는 북쪽을 향해 나있으며 왕은 하늘을 지나가는 여행길에 태양신 라(Ra)와 합류하게 되며 죽음의 신 오시리스(Osiris)와 동화된다고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사후의 주된 의식이었던 ‘입 벌리기’에 대한 내용도 기록되어 있는데 망자가 입을 열어 다시 의식을 얻고 살아나기를 호소하며 기도문들을 암송하는 것이었습니다.

무덤에 함께 부장하는 부적의 힘을 빌어 죽은 왕은 내세에서 새로운 영토를 획득하기 위해 연꽃 매 메뚜기 등 스스로 원하는 모습을 취할 수 있다고 여겼으며 마술적인 주문을 외움으로써 왕에게 적대적인 존재를 막아주거나 최후의 안식처인 무덤 또는 내세에서 왕을 공격할 수도 있는 뱀 전갈 악어들로부터 왕을 보호할 수 있다고 합니다.

 

Canon EOS 5D Mark II F8 1/320s

 

제1중간기에 오면 피라미드 텍스트의 일부는 왕족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도 사용되는데 주문들에 곁들여 제물과 도구들을 그린 다채로운 색의 삽화가 그려지기 시작합니다.

내세로 여행하는 동안 죽은 이가 사용할 수 있도록 식기 모형들도 마련되는데, 이것들은 내구력 있는 돌이나 나무로 조각되었습니다.

죽은 이가 배고픔이나 목마름 때문에 또다시 죽음을 당하지 않게 하려고 했습니다.

이집트는 건조하고 온난한 날씨로 간단하고 개방적인 의복을 즐겨 입었기 때문에 피부가 많이 노출되어 자연스럽게 몸에 걸치는 장신구가 정교하고 화려하게 발달했다고 합니다. 장신구는 그들의 종교 감정과 풍부한 보석 자원에 바탕을 두고 더욱 발달했습니다.

투탕카멘의 유품에서 수많은 장신구가 발견되었으며 이들은 독수리 태양 풍뎅이 연꽃 파피루스 등을 조형화한 것입니다. 장신구에 사용된 금은 청동 마노 에메랄드 자수정 터키석 석류석 유리 등의 독특한 색채는 다른 시대나 국가에서는 보기 힘든 예술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장신구는 단순한 흰색 린넨(linen/아마(亞麻)의 실로 짠 얇은 직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옷에 색을 더 함으로써 이집트인의 삶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죽음을 둘러싼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많은 장신구가 보존되고 있습니다. 이집트는 자국뿐만 아니라 남쪽 국경선 근처의 나라들(고대의 주요한 금산출지)까지 섭렵하여 왕의 미라를 장엄하게 꾸몄습니다.

사자(死者)는 화려하게 치장되었고 생전의 모습처럼 의복을 갖추었으며 관(棺)에도 금을 입히거나 금선을 둘렀고, 가난한 자라 해도 간단한 목걸이 정도는 치장하여 매장했다고 하니 수 세기 동안 엄청난 양의 부장품이 무덤 속에 묻힌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모든 삶은 내세적인 종교에 깊게 뿌리 박혀있었습니다. 죽음을 전환점으로 다시 한번 영생을 누린다는 초 낙관적 견해는 사후의 삶 역시 지금 삶의 연장선이라는 영혼 불멸 내세관을 보여줍니다.

현세와 죽음 뒤의 세계가 분리되지 않는다고 인식했기 때문에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사후를 준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Canon EOS 5D Mark II F5 1/100s

 

이집트에서는 왕이 죽으면 ‘죽은 후 영생으로 가는 길’에 접어든다고 믿었습니다. 그 길을 따라가다 보면 강에 이르고 강의 건너편이 영생의 장소입니다.

사자의 서란 죽은 사람이 내세에서 위험을 극복하여 영생을 살도록 하기 위해 기도문과 마술적 주문을 적어 놓은 것으로 주로 두루마리로 말린 긴 파피루스에 화려한 삽화와 함께 적혀 있는 것을 말합니다. 죽은 사람의 무덤 안에 이 사자의 서를 넣어 둠으로써 죽은 자는 지하세계에서 닥치게 될 어려움을 이겨낼 힘을 얻게 되며 신의 보호를 받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장례 의식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죽은 사람 자신이 큰 소리로 암송해야 하는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1842년 독일의 이집트학자 리하르트 랩시우스[Richard Lepsius]에 의해 처음으로 [사자의 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예술품에 그려진 여자들은 종종 남편보다 아주 작게 표현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열등했다는 의미는 아니며 실제로 고대 이집트 여성은 왕족이든 평민이든 독자적인 재산을 소유하고 보호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누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집트 여인은 계층을 막론하고 모두 다 화려한 보석으로 치장하였는데 서민들은 유리 계통의 반짝거리는 재료로 만들어진 장신구를 사용했고 부유층에서는 금과 은 색깔이 아름다운 돌들을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Canon EOS 5D Mark II F5 1/160s

군청색의 라피스 라줄리, 파란 터키석, 붉은 카넬리안, 보라색 자수정 등이 주로 사용되어 아름다운 색의 조화를 이루었는데, 이들 준보석들은 주로 멀리 누비아, 시리아, 소아시아 등지에서 수입되었는데 보석은 순순히 장식의 목적뿐 아니라 상징물로도 많이 사용되어 남자들도 일상에서 착용하였으며 계급의 징표이며 군사적 업적의 과시물이 되기도 하고 주술적 힘이 담긴 수호물로서 착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보석들은 죽은 뒤에 그대로 미이라와 함께 부장되어 죽은 사람이 내세에서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장례 때에는 사후의 세계에서 편안하기를 비는 장례용 보석을 만들어 함께 부장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죽은 뒤 또다시 죽지 않으려는 염원과 죽음을 정복하고자 애썼던 이집트인들의 영생불멸의 꿈을 살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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