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바늘 거꾸로... 역발상의 스토리가 담긴 명소 춘천 육림고개
시계바늘 거꾸로…
역발상의 스토리가 담긴 명소
춘천 육림고개
허름한 70~80년대풍 건물과 간판, 첨단의 젊음과 아이디어의 조화
수많은 관광객들 운집, 각자의 취향에 맞는 타임머신 즐겨
기획취재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춘천 육림고개는 낡음과 새로움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낡음 속에서 ‘낡게된 의미’를 발굴해낸 부조화스런 조화로 채색된 곳이다.
후미진 고갯길이 도심의 핫플레이스로 거듭난 도시재생의 프로토타입이라 할 만한 지점이다.
2020년 새해 벽두, 오래된 골목의 부활이라고 할 이곳의 겨울은 봄나들이처럼 계절답지 않은 흥겨움으로 가득하다.
육림고개는 춘천의 번화가 명동에서 멀지 않은 언덕빼기 동네다. 약 300여 미터의 오르막과 내리막 비탈길이 이어지며, 양쪽으로 허름한 70~80년대풍의 가게들이 오순도순 늘어서있다.
주름진 얼굴의 짙은 화장이 그렇듯, 억지로 꾸며진 흔적은 없다. 그저 방심한 듯, 수 십년 세월의 두께를 그냥 내밀고 있을 뿐이다. 그게 매력이다. 그 때문에 수많은 21세기 사람들이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이곳을 찾아 각자의 취향에 맞게 타임머신을 즐기곤 한다.
언뜻 보잘 것 없어보이지만, 본래 육림고개는 70~80년대 춘천 제일의 번화가였다. 명동에 그 자리를 내어주기까지 이곳은 각종 생활용품과 즐길 것 볼만한 것들이 흥청대던 곳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오면서 외곽에 신도시가 생기고, 인근 명동을 중심으로 좀더 있어보이는 모던풍의 상권이 발달하면서 쇠락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대형 마트들이 춘천에도 비집고 들어오면서 육림고개상권은 쓰러지고 말 운명이었다. 주민들도 대거 빠져나가면서 도심 속 스산한 빈민촌으로 추락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 이치란 새옹지마 아니던가.
육림고개는 춘천의 번화가 명동에서 멀지 않은 언덕빼기 동네다. 약 300여 미터의 오르막과 내리막 비탈길이 이어지며, 양쪽으로 허름한 70~80년대풍의 가게들이 오순도순 늘어서있다.
주름진 얼굴의 짙은 화장이 그렇듯, 억지로 꾸며진 흔적은 없다. 그저 방심한 듯, 수 십년 세월의 두께를 그냥 내밀고 있을 뿐이다. 그게 매력이다. 그 때문에 수많은 21세기 사람들이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이곳을 찾아 각자의 취향에 맞게 타임머신을 즐기곤 한다.
을씨년스럽던 이곳엔 2015년을 전후한 시기, 다시 봄바람이 스미기 시작했다. 옛것을 보고파하는 세태를 활용해 춘천시가 이곳에 ‘막걸리촌 특화거리’를 만든 것이다.
‘막걸리’가 풍기는 감격시대의 애잔함을 도시재생의 키워드로 이용한 것이라고 할까. 그 와중에 ‘서민주막’, ‘모친주막’ 등이 문을 열면서 사람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고, 나중엔 ‘청년 창업’을 기치로 내걸며 젊은이들을 유인하기 시작했다.
젊은 창업가들이 대거 발길을 들여놓으면서 이곳 언덕빼기 빈촌은 달라졌다. 시대를 거꾸로 돌려세운, 역발상의 스토리가 담긴 명소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개성과 위트, 발칙한 도발이 번뜩이는 상점들이 늘어섰고, 산뜻한 젊음과 아이디어, 설익은 희망과 벤처정신, 그리고 오래된 골목, 낡은 건물의 처마와 70년대풍 촌스런 간판이 마구 뒤섞이며, 그들만의 텍스트가 넘쳐나는 곳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런 특별한 변화가 점차 외부로 알려지면서 춘천은 물론, 수도권 등 외지에서도 관광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지금 와선 아예 명동을 뺨치는 춘천의 대표적인 아이콘 행세를 하고 있다. 그게 2020년 버전의 육림고개다.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이곳 가파른 고갯마루 초입엔 육림영화전시관, 육림다방 따위가 먼저 방문객을 반긴다. 그 곁엔 DJ룸, 뮤직박스 등등이 영화 소품처럼 늘어서있다. 맞은 편엔 작은 그림을 사거나, 원데이클래스에서 그림을 배울 수 있는 달고나 잡화점, 앙증맞은 꽃가게, 다양한 스콘과 수제 스프레드를 선보이는 점빵, 케이크점, 캔들샵 등 젊은 감성의 가게들이 저마다 다른 표정으로 언덕길을 채우고 있다.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강냉이 튀깁니다’
시골장터 풍경이나 다름없는 60년대식 기름집과 강냉이집이 퇴락한 슬라브 지붕을 머리에 올린채 아직도 살아있다. 그리곤 어설프지만 정성스레 써붙인 유리가라스(글래스) 글귀가 새삼스럽다. ‘결명자, 우엉, 뚱딴지, 둥글레, 여주…’
나이가 육림고개 희로애락의 세월과 얼추 비슷해 보이는 일미기름집. 헐벗은 듯 낡디낡은 벽체나 문설주 앞엔 너절한 물품이 내동댕이라도 쳐진 듯, 그야말로 너절하게 널려있다.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그 옛날 신작로변 시골구멍가게의 데자뷰라고 할까. 그 곁의 ‘올챙이국수’집은 그런 희미한 흑백의 기억을 새삼스레 소환하고 있다.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개고기와 ‘(사)인문학정원’의 기묘한 동거? 일미기름집 옆, 퇴락한 건물 간판의 ‘보신탕’ 간판이 인문학의 고품격과 아무렇게나 섞인 것도 육림고개 다운 풍경이다. 굳이 꾸미지 않은 산다는 것의 본능에 충실한 모습 그대로다. 수 십 년을 거스른, 금방 허물어질 것 같은 건물 외벽 앞엔 21세기의 세련된 자동차들이 빼곡히 주차되어 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그 두 갈래가 갈라지는 비탈길 첫머리에 ‘오늘도 달콤-마쿠아롱’을 내건, 다쿠아즈가 있고, 약간 시선을 돌리면 세련된 외관의 ‘노이’ 공방이 눈에 잡힌다. 독일풍의 건물인가 싶지만, 아니다. 그 옛날 곡물 창고나 방앗간인 듯한 건물에 기발한 디자인을 입혀 ‘소품’ 가게로 돌변케 한 것이다.
육림고개 ‘중앙통’은 바닥이 주름살처럼 갈라진 시멘트길이다. 그 좌우의 점포들은 또 한 번 세월의 간극을 곱씹게 한다. ‘경양식 1988’엔 어설프게 포크 나이프질하던 촌스런 기억이 담겨있고, 그 곁엔 꽤 세련된 악세사리 가게도 있다. 내리막을 조금 더 따라가면 ‘조선커피-로스팅 하우스’가 ‘조선’스런 풍경으로 서있다. 특별할 것 없는 소박한 가게 풍경과는 달리 간판 문구는 위풍당당하다. ‘Since 1977’-.
고갯길 사이사이엔 좁디좁은 골목길이 실핏줄처럼 엿보인다. 대부분은 성인 한 사람이 겨우 어깨를 펴고 지나갈 만한 좁고 구불구불한 낡은 골목길이다. 가파른 골목길 계단 층층은 때로 광고판으로 변한다. 한계단 한계단마다 흰색 페인트로 대충 휘갈긴 문구들로 가득하다. ‘육림미용실’, ‘철든식탁’, ‘육림객잔’….
모두 골목 안에 알박기처럼 박혀있는 조그만 가게들이다. 애초 춘천시가 만든 ‘막걸리촌 특화거리’의 원조집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육림포차, 서민주막 등이 그렇다. 서민주막 10여 미터 처마는 형형색색의 막걸리병을 주렁주렁 이고있다. 실외 장식치곤 꽤 기발하다싶다. 그 곁엔 다시 ‘새마을운동’ 시절의 동신고무신, 메밀전집, 서민슈퍼가 나란히 문을 열고 있다. 맞은 편엔 ‘경상도 미용실’이 보인다. ‘헤어살롱’은커녕 동네 미장원보다 초라해보이는 모양새다. 주인장딴엔 간판 유리문이나 벽체 페인트칠한 모양이 깔끔을 떨긴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수더분한 외관이 차라리 정겹다.
사진 공공디자인저널 편집부
춘천시는 매년 한 차례씩 육림고개에 입주할 청년 창업자들을 공모한다. 정식 명칭은 ‘청년몰 조성사업’이다. 이들 청년상인들에게 대해선 창업에 관한 기본교육과 컨설팅을 거쳐, 임차료, 홍보 마케팅 등을 지원해주기도 한다.
“이는 지역사회를 활성화하는 사업으로서, 육림고개 상점내, 빈 점포 등 유휴공간에 청년상인 점포를 입점시켜 쇼핑·문화·체험 등 창의적 테마를 융합한 공간”이라는게 춘천시의 설명이다.
청년몰을 조성함으로써 젊은층을 새로운 고객으로 유입하고, 육림고개 상점가에 활력을 제고한다는 목표다. 그렇게 보면 춘천시의 도시재생 전략이 나름대로 성공한 편이다.
육림고개를 찬찬히 둘러보자면 대략 한 시간 남짓이면 족하다. 물론 아이쇼핑 수준이 그렇다는 얘기다. 주마간산식의 투어 끝에 되돌아온 고갯길. 그 초입엔 해가 바뀌었음에도 ‘2019육림데이’ 현수막이 나그네를 배웅한다.
그 아래 옷가게에선 1만원, 5천원 떨이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선사하고 있다. 얼마나 쓸만하고, 입을 만한 옷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핑크색 노을로 물든 육림고개 언저리는 그렇게 슬로우비디오로 하루가 저물어간다.